포퍼가 입증(confirmation, verification) 개념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살펴보자.

 

Once your eyes were thus opened you saw confirming instances everywhere: the world was full of verifications of the theory. Whatever happened always confirmed it.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5)

 

그래서 일단 눈을 뜨게 되면, 어디에서든지 그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세계는 이론의 검증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은 항상 그 이론을 입증하였다.

(『추측과 논박 1, 78)

 

 

 

The most characteristic element in this situation seemed to me the incessant stream of confirmations, of observations which ‘verified’ the theories in question; and this point was constantly emphasize by their adherents. A Marxist could not open a newspaper without finding on every page confirming evidence for his interpretation of history; not only in the news, but also in its presentation—which revealed the class bias of the paper—and especially of course in what the paper did not say. The Freudian analysts emphasized that their theories were constantly verified by their ‘clinical observation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6)

 

내가 보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문제의 이론들을 <검증>하는 관찰 결과인 끊임없는 입증 사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그 이론의 지지자들에 의해 항상 강조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신문의 지면을 넘길 때마다 그의 역사 해석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발견했다. 뉴스에서뿐만 아니라, 그 신문의 계급적 편향을 드러내는 보도자료에서도, 그리고 특히 그 신문이 말하지 않은 것에도. 또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봉하는 정신분석학자는 <임상 실험>에 의해 그들의 이론이 항상 검증되었다는 것을 역설했다.

(『추측과 논박 1, 78~79)

 

 

 

It was precisely this fact—that they always fitted, that they were always confirmed—which in the eyes of their admirers constituted the strongest argument in favor of these theories. It began to dawn on me that this apparent strength was in fact their weaknes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6-47)

 

이것은 그들의 이론이 항상 적합하며 항상 입증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사실이 그 이론들의 신봉자들의 눈에는 그 이론들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외견상 강력해 보이는 이 점이 사실은 그들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추측과 논박 1, 80)

 

 

 

This is quite different from the situation I have previously described, when it turned out that the theories in question were compatible with the most divergent human behaviour, so that it was practically impossible to describe any human behaviour that might not be claimed to be a verification of these theorie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7)

 

이것은 내가 앞서 기술했던 상황, 즉 문제되는 이론이 거의 모든 인간 행위와 양립 가능하고, 따라서 그 이론들을 검증하지 않는 어떠한 인간 행위도 사실상 기술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추측과 논박 1, 81)

 

 

 

It is easy to obtain confirmations, or verifications, for nearly every theoryif we look for confirmation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7)

 

만약 우리가 입증을 구한다면, 거의 모든 이론들은 쉽게 입증되거나 검증될 수 있다.

(『추측과 논박 1, 81)

 

 

 

“when it turned out that the theories in question were compatible with the most divergent human behaviour”라는 구절을 볼 때 포퍼는 “compatibility(양립 가능성, 상호 모순 없음)”와 “입증”을 동일시하고 “incompatibility(양립 불가능성, 상호 모순)”와 “반증(falsification)”을 동일시하는 듯하다.

 

나는 “incompatibility”와 “반증을 동일시하는 데에는 별로 불만이 없다. 하지만 “compatibility”와 “입증”을 동일시하는 것은 입증 개념의 통상적이 사용과 거리가 매우 멀다. 물론 개념이야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퍼를 읽을 때에는 포퍼가 어떤 식으로 개념을 사용하는지 알아야 혼동에 빠지지 않는다.

 

compatibility”와 “입증”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든지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덕하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100% 정확히 예언할 수 있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이덕하가 3이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3이 나왔다고 하자. 이것은 위 명제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포퍼의 입증 개념에 따르면 이 실험은 위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다.

 

이덕하가 4가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6이 나왔다고 하자. 이것은 위 명제와 상호 모순된다. 따라서 포퍼의 입증 개념에 따르면 이 실험은 위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위 명제에 대한 반증이다.

 

이런 식의 입증이라면 위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를 수도 없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예언을 하면서 주사위를 6만 번 던지면 이덕하에게 예언 능력이 없더라도 약 1만 번 정도는 예언과 결과가 일치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입증하는 증거를 1만 개 정도나 수집할 수 있다.

 

포퍼 말고 누가 이런 증거를 제대로 된 증거로 인정할까? 이것은 포퍼의 입증 개념이 매우 특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이덕하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90% 정도 확률로 정확히 예언할 수 있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이덕하가 3이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3이 나왔다고 하자. 이것은 위 명제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포퍼의 입증 개념에 따르면 이 실험은 위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다.

 

이덕하가 4가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6이 나왔다고 하자. 이것은 위 명제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 명제에 따르면 틀릴 확률도 10%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퍼의 입증 개념에 따르면 이 실험은 위 명제를 입증하는 증거다.

 

“이덕하가 4가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6이 나왔다”라는 실험 결과를 들고 가서 “이덕하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90% 정도 확률로 정확히 예언할 수 있다”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이야기해 보자.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대단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장난 하냐?”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 뻔하다.

 

개념을 자기 맘대로 정의하는 것이야 포퍼의 권리다. 하지만 입증 개념을 그런 식으로 정의하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뿐 아니라 쓸모도 없어 보인다.

 

 

 

포퍼가 입증 개념을 일관성 없게 쓰는 것 같기도 하다.

 

What I had in mind was that his previous observations may not have been much sounder than this new one; that each in its turn had been interpreted in the light of ‘previous experience’, and at the same time counted as additional confirmation. What, I asked myself, did it confirm? No more than that a case could be interpreted in the light of a theory. But this meant very little, I reflected, since every conceivable case could be interpreted in the light Adler’s theory, or equally of Freud’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6)

 

그 말을 하면서 내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그의 이전의 관찰들이 이 새로운 관찰보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매번의 경험은 그때마다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되었으며, 동시에 추가적인 입증 사례로 간주되었다. 나는 관찰이 무엇을 입증해주는가 자문해 보았다. 결론은 하나의 사례가 그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있을 법한 모든 사례가 아들러의 이론이나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측과 논박 1, 79)

 

위 인용문에서는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는 입증 사례들이 사실은 입증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포퍼가 입증 개념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지,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사용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로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포퍼를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다음 구절을 보자.

 

Confirmations should count only if they are the result of risky predictions; that is to say, if, unenlightened by the theory in question, we should have expected an event which was incompatible with the theoryan event which would have refuted the theor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47~48)

 

입증은 위험한 예측들의 결과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문제되는 이론에 의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이론과 양립 불가능하여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건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입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추측과 논박 1, 81)

 

포퍼는 입증이 “risky prediction(빗나갈 위험이 있는 예측)”을 동반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포퍼는 세상을 참 힘들게 산다. 그는 먼저 입증 개념을 매우 느슨하게(?) 정의한다. 그렇게 정의한 입증 개념은 별로 쓸모가 없다. 그래서 “risky prediction”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과학자들이 입증 개념을 쓸 때에는 보통 명시적으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흔히 쓰는 입증 개념에는 “risky prediction”이 암묵적으로 동반되는 것 같다. “이덕하가 4가 나온다고 예언했는데 주사위를 던져 보니 6이 나왔다”라는 실험 결과가 “이덕하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90% 정도 확률로 정확히 예언할 수 있다”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사실상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덕하

201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