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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조들께서 엉터리로 지도를 제작해 독도를 울릉도 바로 옆에 붙여 표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아무리 자기 주장을 억지로 관철하려고 하고, 그리고 인지부조화에 빠졌더라도 선조들을 욕 보이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요?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역사왜곡은 훗날 우리의 자식, 손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아직까지도 고지도에 나타난 우산도가 독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산도가 독도라고 증명하시는 분께 저는 이미 100만원의 포상금을 걸었습니다.
이 약속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나라 고지도에 나타난 울릉도와 우산도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dokdo&no=7093&page=1&bbs
우산도가 독도라고 주장하는 글 : http://blog.naver.com/dmzlzl111?Redirect=Log&logNo=140158969510
고지도를 그렸던 선조들의 노고 : http://blog.daum.net/gijuzzang/631204
김정호가 그린 울릉도와 우산도가 나오는 청구도입니다.
http://www.dokdo.go.kr/Board.do?command=detail&langType=KR&oMenuCode=MENU_CODE200811091&oBIdx=7094&start=12&mode=&oSearchColumn=&oText=&oCategoryCode=&age=
김정호가 청구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음 링크한 글을 읽어 보세요. 이렇게 과학적으로 제작된 청구도를 여기 아크로에서는 폄하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어린이들의 위인전에도 나오는 김정호가 독도문제 때문에 졸지에 엉터리 지도를 만든 멍청이로 전락하게 생겼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3426&mobile&categoryId=1588
청구도를 보면 우산도가 울릉도의 부속 바위섬들보다도 울릉도에 가깝게 그려져 있습니다. 청구도에 나오는 우산도는 죽도일까요? 독도일까요?
http://www.dokdo.go.kr/Board.do?command=detail&langType=KR&oMenuCode=MENU_CODE200811091&oBIdx=7087&start=24&mode=&oSearchColumn=&oText=&oCategoryCode=&age=
대한전도(1899년)
조선전도(18세기 후반)
조선팔도지도(19세기 전반)
동국도(18세기 후반)
팔도총도(1751년) : 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잘못 그려져 있다.
조선여지전도(18세기, 일본에서 제작)
""" 김정호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그나마 전설처럼 전해오는 일화는 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세 차례나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등정했으며, 「대동여지도」가 완성된 뒤에는 당시 실권자였던 흥선 대원군에게 탄압을 받아 옥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연구에 의해 대부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실제로 김정호를 아는 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다는 기록은 어디도 없고, 단지 기존의 지도를 두루 모아 좋은 점만을 취해서 완성했다고 한다.""" http://newdle.noonnoppi.com/xmlView.aspx?xmldid=29822
전 김정호의 업적이 뛰어남을 의심하며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김정호의 청구도가 실제 답사에 의한 제작이 아닌 한, 죽도=우산도 동일설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로는 부적합(적어도 결정적 근거는 아니라)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느 댓글에선가 길벗님은 청구도 등이 김정호의 '직접답사'의 결과물임을 주장하셨으나, 그 역시 님의 짐작일 따름이었군요)
그리고 님이 링크를 걸어준 '독도의 진실2'를 보면 님이 우산도=죽도 동일설을 뒷받침해준다는 주장하는 고지도들 중 적어도 일부는 오히려 우산도=독도 동일설에 더 유리해 보이는군요.
1. 김정호 위인전을 다시 쓰야 하겠군요. ^^
이젠 우산도=독도설에 장애가 되는 것은 깡끄리 없애고, 우산도=죽도로 나타내는 문헌이나 지도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엉터리이고 사기꾼으로 몰릴 판이네요.
2. 님이 보신 "독도의 진실2" 내용 중에서 우산도=독도 동일설을 뒷받침해주는 고지도가 무엇이지요?
참고로 링크하는 이 글도 보시죠. 우산도가 광활하고 넓다는데 독도가 그런가요?
http://gall.dcinside.com/list.php?id=dokdo&no=7180&page=1&bbs=
3. 제가 올려준 고지도에서 우산도가 죽도가 아니라면 독도는 더욱 아니게 됩니다. 울릉도와의 거리, 우산도의 크기, 형태, 한 섬으로 그려진 점 등 지도에서 나타난 우산도는 절대 독도일 수가 없지요. 거기에 더해 문헌에 나타난 우산도는 죽도를 의미하는 내용은 나오지만, 독도라고 생각할 단 하나의 기록도 없습니다.
저는 제일 우스운 것이 우산도가 죽도가 아니라는 분들이 독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산도>죽도 >>>>>넘사벽>>>>>>>>>독도인데 죽도도 부인하는 분들이 독도를 주장하는 이런 황당무계함이라니...
제3자에게 이런 주장을 하면 누가 동의해 주겠습니까? 돌+I라는 소리나 듣지.
차라리 우산도는 죽도도 아니고 독도라고 할 수 없다고 하든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주장인가요?
""" 김정호의 대작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이다. 김정호는 조선의 지리를 연구하고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조선 전역을 답사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8] 일부 역사학자들은 김정호가 탐사하여 지도를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9][10] 그러다가 김정호가 해당 지역의 관찬 지도와 가장 지도(家藏地圖)를 참고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때 가장 지도란 사사로이 만들어 집에 보관하던 지도로, 대부분 그들 소유의 산림이나 논밭을 그리고 있으며, 그 정확성은 관찬 지도에 못지않았다.[10] 또한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서 “(김정호가) 여지학(지리학)을 좋아하여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하여…”[11]라고 하였다. 그밖에 정상기·최한기·신헌도 전국을 답사하지 않고 기존의 지도를 두루 모아 집대성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예는 서양에도 있는데, 유명한 세계 지도 제작자인 당빌은 프랑스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음에도 당시로는 가장 정확한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 (김정호 한국어 위키백과)
아동 위인전류에 학계의 정설을 미처 반영하지 못한 부정확한 야담류의 이야기가 실리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아동 위인전이 그렇게까지 대단합니까? 아동 위인전 내용이 부정확하다고 말하면 큰 일이라도 납니까?
그리고, <김정호가 직접 답사하지 않고 기존의 자료를 취함한 것이므로 그 내용에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즉, 김정호의 작업에 결코 오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순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김정호를 사기꾼으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합니까?
그럼 제가 님 말에 틀린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제가 길벗님을 사기꾼 취급하는 겁니까?
논리로 싸웁시다.
싸구려 레토릭으로 밀어부치지 마시고요.
minue622님/참조하세요
a) 여지학을좋아하여깊이고찰하고널리수집하여……『( 이향견문록』)
b) 김정호는 어려서부터 지도와 지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랜 세월 동안 찾고 살펴 여러 도법에상세히알아매번조용한시간에간편한비람식을확실히얻어……「( 청구도제문」)
c)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지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비변사나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지도나 옛날 집에 좀먹다 남은 지도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고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여 하나의 완벽한 지도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나는이작업을김백원(金百源)에게위촉하여완성하였다. 「( 대동방여도서문」)
가)는 유재건이, 나)는 최한기가, 다)는 신헌이 쓴 기록들이다. 이 세 사람은 김정호와는 같은 시기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김정호가 전국을 두루 답사하였다고 지적한 사람은 없다. 세 사람 모두 오로지 기존의 지도들을 두루 모아 좋은 점을 따서 집대성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김정호는 유재건이 지적한 것처럼“깊이 고찰하고 널리 자료를 수집”했거나, 최한기가 말한 것처럼“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했으며, 신헌이 말한 대로“광범위하게수집하여증거로삼거나”,“ 여러지도들을상호비교”하여,『 청구도』나『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의심나는 곳은 직접 답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방동인의 지적처럼 단빌은 프랑스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당시로는 가장 정확한 세계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방동인, 1985).
⑥ 김정호의 옥사설
김정호 옥사설(獄死說)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이 옥사설을 강력히 부인한 이병도는 그 근거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김정호가 만든 지도나 지지 어느 것 하나 몰수당하거나 압수당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이병도, 1971). 필자도 옥사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고종실록』·『승정원일기』·『추국안』등을 검토해 보았지만 그러한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김정호의 옥사설이 허위라는 근거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호가 만든 지도나 편찬한 지지가 하나도 손상당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京城帝大, 1925).
둘째, 국가기밀을 누설할 가능성이 있으므로『대동여지도』의 판목을 압수하여 소각했다고 했는데 현재에도『대동여지도』판목 1매가 숭실대 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또 1931년의 경성대『고도서전관목록』에 의하면 판목 2매가 당시 전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출품을 꺼리는 일본인이 수십 매를 비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김양선도『대동여지도』판목을 소유하고 있었으며(김양선,1960), 최성환 후손들의 증언에도『대동여지도』판목들이 남아있었다13)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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