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minue622님이 발제하신 세종실록 관련 글의 댓글이 너무 많고 길어져서 별도로 올립니다.

우선, 아래는 제가 어제 달았던 댓글 중 일부입니다.

그리고 맨 끝부분의 "麋鹿態獐..." 구절들까지 고려하여 후반부를 살펴보면, 이게 좀 이상해집니다.  

<대개 두 섬은 그 거리가 멀지 않아 한번 바람을 타면 도착할 수 있다. 우산도는 지세가 낮아 날씨가 아주 맑지 않거나 최고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울릉도가 조금 더 높다. 풍랑이 잦아들면,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다. 麋鹿態獐가 이따금 바다를 건너 나온다. 아침해의 높이가 겨우 3장일때에 섬 안의 황작(참새나 꾀꼬리) 무리가 죽변곶(岬)에 날아와 앉는다.>

몇 가지 언급해 보면,

1. 박세당이 언급한 시점은 육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맨 뒷부분의, 사슴 종류가 바다를 건너 나온다는 구절, 섬 안의 황작이 죽변곶(울진에 있음)에 날아온다는 구절을 볼 때 박세당은 육지를 기준하여 말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후반부 몇 개의 문장에서 시점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2. 1을 고려하여 보면, "대개 두 섬은"이라고 할 때, 박세당은 두 섬을 한 묶음으로 간주하여 기술하고 있는 듯합니다. 두 섬을 한 묶음으로 보고, 육지에서 바람을 타고 갈 수 있다고 말한다는 거죠.

3. 그럴 때, 여기에서 이상하다는 건,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 글만 놓고 보면,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한 기술이 어떻게 읽히냐면,

1) 우산도는 지세가 낮아서 (울진에서 볼 때) 날이 맑고 산꼭대기에 올라야 보인다.
2) 울릉도는 그보다 높아서 (울진에서 볼 때) 바다가 잔잔하면 쉽게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1) 울릉도는 (울진에서 볼 때) 날이 맑고 (백암산)산꼭대기에 올라야 보입니다.
2) (울진에서 볼 때) 바다가 잔잔하면 쉽게 보이는 섬은 없습니다. (울릉도도 아니고 죽도도 아니고 독도도 아니고...)

4. 만일, 앞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산도를 보는 시점을 울릉도로 간주한다면,

1)의 경우, 우산도를 독도로 대치하면 맞아 떨어집니다. (위의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2)의 경우, 그러면 "풍랑이 잦아들면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다"가 성립하려면, 울릉도를 바라보는 시점이 우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산도는 울릉도보다 낮기 때문에,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야 보이지만, 울릉도는 우산도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하려면 누군가가 우산도에서 울릉도를 보고 와서 말해주었어야 할 텐데,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요.
또 박세당이 시점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말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몹시 낮아 보입니다. 

5. 시점을 육지(울진)로 놓고 박세당의 말이 성립하려면, 조선의 어느 잘못된 지도와 같아야 합니다.
즉, 우산도가 울릉도의 앞에 있으면서, 우산도는 낮고 울릉도는 우산도보다 꽤 더 높아야 한다는 거죠. 

***간단히(퇴근 시간에 쫓겨 급히) 살펴본 결론: 박세당의 후반부 말은 신뢰하기 어렵다. 어떤 근거로서의 가치가 없어 보인다.

인용문의 맨 밑 줄이 어제 댓글의 결론이었는데요. 
가만 생각해 보니, 이게 좀 재미있는 이야기(추리)로 이어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일단, 위의 댓글부터 다시 정리해 보죠.
1) 육지의 시점에서 본다고 가정했을 때, 박세당의 말이 성립하려면,
작고 낮은 우산도가 앞에 있고, 크고 높은 울릉도가 우산도의 뒤에 있어야 합니다. 

2) 시점이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가정했을 때는,
울릉도에서 우산도를 보고, 우산도에서 울릉도를 보았다고 하면 박세당의 말이 성립합니다.


1)번의 경우, 1531년에 발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ED%8C%94%EB%8F%84%EC%B4%9D%EB%8F%84.gif

그런데 이 지도는 우리가 알다시피 잘못된 지도입니다. 
우산도와 울릉, 무릉 등 섬의 명칭이 일정하지 않고 오락가락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섬이 있는데 작은 섬이 큰 섬보다 앞에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을까요.

이 심심풀이 추리를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이 있는데,

1) 조선의 공도화 정책은 태종 3년인 1403년부터 시작되었고, 세종 7년인 1425년에 엄격히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1882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세종 치세 이후에는 누구도 울릉도에 거주하기 어려웠고, 더군다나 울릉도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겠지요.

즉, 세종 이후에는 실제로 우산도와 울릉도에 대해 증언해 줄 사람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2) 조선시대에 지도를 편찬하는 사람들은 김정호처럼 직접 답사하는 대신 다른 경로를 통해 자료를 얻어 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측이 이 문제에 관련하여 주장하듯이) 대개 육지의 시점에서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세종시대인데, 이때의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우산 무릉 두 섬은 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의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풍일청명한 날에 바라다 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라 칭했는데, 울릉도라고 하기도 한다.】

이미 아래에서 '相去'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저 역시 '상거'는 위의 해석처럼 '두 섬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봅니다.
그리고 제가 짐작하기로, 세종 시대에는 실제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531년에 발행된 <팔도총도>는 왜 두 섬을 그렇게 그렸으며, 1600년대의 사람인 박세당은 두 섬을 왜 그렇게 (팔도총도와 유사하게) 묘사했을까요. 한번 짐작해 보자면,  

<대개 두 섬은 그 거리가 (여기에서-제가 넣음) 멀지 않아 한번 바람을 타면 도착할 수 있다. 우산도는 지세가 낮아 날씨가 아주 맑지 않거나 최고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울릉도가 조금 더 높다. 풍랑이 잦아들면,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다.>라는 박세당의 표현은, 엉터리가 아니라면, 어딘가에 남아 있던 (아마 세종 시대의) 기록이나 구전을 인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독도에서 울릉도를 본 사람이라면 거의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상거'라고 되어 있는데 반해, 박세당은 '여기에서'라고 말합니다. 시점이 육지로 이동했고, 섬 간의 거리에서 육지와 섬 간의 거리로 바뀌었습니다.

시점의 이동... 이게 바로 박세당이 엉터리 묘사를 하고 <팔도총도>가 엉터리 지도가 된 이유가 아닐까요.

즉, 아마 세종시대를 포함한 이전 시대에는 두 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증언이 기록이든 구전이든 정확히 남아 있었는데, 공도화 정책 이후로 증언을 해줄 사람들이 없어졌다... 그러자 후대인들이 '두 섬에 관한 묘사'는 그대로 차용하면서 시점만 육지로 이동시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지도 제작자들이 육지 시점에서 그 묘사를 이해하여 합리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팔도총도>의 지도처럼 그리게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즉, 작고 (낮은) 우산도가 앞에 있고, 크고 (높은) 울릉도가 뒤에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팔도총도>는 우연히 나온 실수가 아니라, (시점은 육지로 이동했지만) 기록이나 구전을 합리적으로 이해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팔도총도>의 이 실수 때문에 울릉도를 우산도로 부르기도 하고 울릉도의 모습을 우산도로 묘사하는 등 울릉도, 독도 관련 명칭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혼란이 초래되었을 수도 있는 거죠. 짐작입니다만...  


***
minue622님이 울진에서 울릉도를 촬영했다는 사진을 올려주셨는데요. 이것도 몇 가지 확인해 볼 게 있습니다.
일단 그 섬이 울릉도가 맞다고 해도 망원렌즈를 사용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 봐야겠죠.
맑은 날이면 백암산 정상에서 울릉도까지 보인다는 말들만 있을 뿐, 울진에서 울릉도를 봤다는 증언도 없고 울릉도 사진도 없고, 일반인들이 비교적 맑은 날에 백암산 정상에서 찍은 동해 바다 사진들에도 울릉도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육지에서 울릉도를 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