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선택 – 도킨스의 설명
 

철학과 과학의 정신이 “끝까지 의심해 보라”라면 종교의 정신은 “무조건 믿어라”다. 보통 종교로 분류하는 불교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지만 이것은 불교가 종교에서 멀어지고 철학에 가까워지는 순간에 그런 것 같다. 기독교 같은 전형적인 종교에서는 무조건적 믿음이 엄청나게 강조된다.

 

도킨스는 종교의 이런 특성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본다. 여기에서는 유전자 선택이 아니라 밈(meme, 모방자) 선택이 작동한다. 종교에서 “의심하라” 밈과 “무조건 믿어라” 밈이 서로 경쟁한다면 “무조건 믿어라” 밈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과학과 달라서 논리와 실증의 측면에서 매우 어설프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종교를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의 특성은 밈 선택이라는 일종의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적응이다. 여기에서 설계라는 단어를 따옴표로 묶은 이유는 의식적인 설계 과정은 없기 때문이다. 더 잘 볼 수 있는 눈이 생물을 더 잘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눈이 정교하게 진화했듯이 무조건 믿도록 하는 것이 종교가 더 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종교의 그런 특성이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의식적 설계
 

도킨스는 “무조건 믿어라”가 자연 선택에 의한 무의식적 설계라고 보았지만 의식적 설계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성직자들이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면 자신의 종교가 더 잘 번성할 것임을 의식적으로 깨닫고 그런 식으로 강요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공학의 산물이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 때 의식적으로 도구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 구조를 설계하듯이 성직자들이 예컨대 십일조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 목적을 위해 사람들이 종교를 믿도록 하겠다는 다른 목적을 설정하고 그런 목적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인 “무조건 믿어라”를 강요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이 때에는 설계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신이 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니까
 

또 다른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많은 신도들이 진짜로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가정은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종교인 중 대다수는 신의 존재를 진실로 믿는 것처럼 보인다. 신도들은 신을 으뜸 수컷(alpha male) 대하듯이 대하는 경향이 있다. 신 앞에서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신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 성직자는 신을 무의식적으로 위대한 사람으로 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능력을 남이 의심하면 기분 나빠한다. 이것은 진화한 특성으로 보인다. 자신의 말을 남이 믿지 않으면 번식에 차질이 생긴다. 동물은 보통 번식에 차질을 주는 일이 생길 때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남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때 불쾌감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불신 당했을 때 분노를 느끼고 더 공격적이 되도록 진화한 듯하다.

 

의심을 당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공격적이 되도록 하는 특성이 실제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는지 여부를 가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신의 말을 믿지 않으면 신이 기분 나빠할 것이라고 짐작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신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종교인들이 신의 존재, 신의 능력, 신의 말에 대한 불신을 타부로 설정하는 것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 때 “무조건 믿어라”는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설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이론 모듈(Theory of Mind Module, http://en.wikipedia.org/wiki/Theory_of_Mind)의 부산물인 것이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효과와 적응을 구분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설사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효과라 하더라도 적응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항상 부산물 또는 부작용일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무조건 믿어라”라는 일종의 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적어도 세 가지나 있다. 그리고 이 중 하나만 옳을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도 없다. 세 가지 논리가 모두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어떤 논리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 것일까? 과연 어떤 과학적 방법론으로 그것을 가릴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연구를 접한 적이 없으며 당장 떠오르는 생각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실증적 방법론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사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200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