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서는 과학이 객관적으로 또는 가치 중립적으로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른 편에서는 과학이 사실은 이데올로기나 주관성에 휘둘린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두 편으로 나뉘어서 이분법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논쟁보다는 과학의 객관성과 진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보는 것이 더 생산성 있어 보인다.

 

 

 

먼저 과학의 객관성과 진보를 방해하는 요인들부터 살펴보자.

 

1. 표현의 자유 억압

 

표현의 자유가 없으면 잘못된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비판하기 힘들다. 과학자가 권력자의 눈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감옥에 가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목숨 걸고 열심히 비판해도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는 과학의 객관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나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옛날에는 기독교 권력이 과학자들을 억압하기도 했다.

 

감옥이나 고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가 과학 연구를 망칠 수 있다.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 비해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윗사람의 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런 문화 때문에 이런 나라의 경제력에 비해 과학적 기여가 작다는 의견이 있는데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2. 돈의 유혹

 

자본가가 돈으로 과학자를 매수할 수 있다. 예컨대 담배 회사에서 과학자를 매수하여 담배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식으로 연구 결과를 왜곡하도록 만들 수 있다. 20세기에 수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매수된 듯하다.

 

3. 명예욕

 

때로는 실험 결과를 왜곡하여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황우석 박사처럼 의도적인 왜곡을 통해서 권위 있는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을 실은 경우가 있었다.

 

4. 낮은 지능

 

머리 나쁜 사람들끼리 모이면 아무리 양심적이고 열심히 연구해도 연구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온갖 자칭 과학 공동체가 있으며 온갖 자칭 학술지가 있다. 그 중에는 물리학 공동체처럼 천재들이 엄청나게 포진한 곳도 있지만 초능력 연구 공동체처럼 상대적으로 매우 띨한 사람들이 모인 곳도 있다.

 

여기서 “띨하다”는 정신 지체자들처럼 평균보다 지능이 훨씬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전체 인구에서 상위 30% 안에 드는 사람도 일류 과학자들의 기준으로 보면 띨하게 보일 수 있다.

 

5. 인간의 사고 왜곡 경향

 

20세기의 온갖 심리학 실험들은 인간이 사고 왜곡(인지 편향, 자기 기만)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제 과학의 객관성과 진보에 도움이 되는 요인들을 살펴보자.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뒤집으면 그런 요인들이 된다.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돈으로 과학자를 유혹하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과학자들이 양심적일수록, 과학자들의 지능이 높을수록, 과학자들의 사고 왜곡이 작을수록 과학은 이상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1. 반복 검증

 

한번 실험을 해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냥 믿어버리면 안 된다.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고, 실험자가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고, 실험자가 의도적으로 조작했는지도 모르고,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했던 실험자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실험을 해서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면 오작동, 실수, 조작,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작아진다. 반복 검증을 더 많이 할수록 그런 가능성이 더 작아진다. 이 때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반복 검증을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예컨대 어떤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이론이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반복 검증을 했는데 모두 그 이론대로 결과가 나왔다면 그 이론을 더 믿을 수 있다.

 

2. 학술지의 동료 검토(peer review, 전문가 심사)

 

학술지에는 아무 논문이나 실리지 않는다. 권위 있는 학술지일수록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꼼꼼한 검토를 거친다. 물론 동료 전문가들이 신이 아니고 지극히 양심적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시대마다 과학 공동체마다 이런 요인들의 배합이 서로 다르다. 어떤 과학 공동체의 경우에는 과학의 객관성과 진보에 도움이 되는 요인들이 압도적이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기도 한다. 어떤 자칭 과학 공동체의 경우에는 그 반대 요인들이 압도적이어서 과학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과학은 객관적인가?”라고 묻는 것보다는 “자칭 과학 공동체 A는 이상적 과학 공동체에 얼마나 가까운가?”라고 묻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수학(보통 과학으로 분류하지는 않지만) 공동체와 물리학 공동체는 이상적인 과학 공동체에 상당히 가까워 보인다. 점술, 초능력, 외계인, 수맥 등을 연구한다는 자칭 과학 공동체는 이상적인 과학 공동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과학 공동체라고 부르기 힘들어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정신분석 공동체와 한의학 공동체도 초능력 공동체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학이 진리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리라는 절대적 보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수백 년 동안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이 발전한 모습을 볼 때 자유로운 환경에서 천재들이 모여서 장기간 연구하고 토론하면 결국 대단히 객관적이고 대단히 인상적인 과학 발전이 일어나는 것 같다. 인류에게는 객관적 과학을 위한 잠재력이 있으며 여러 분야에서 객관적 과학이 잘 정립되었으며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결국은 정신분석 같은 엉터리 학문이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일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대중이 믿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하지만 대중은 잘 정립된 과학 공동체의 연구 결과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믿기는 한다. 이것이 내가 결국 창조론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아마 선진 산업국에서도 100년 이상은 걸릴 테지만 말이다.

 

 

 

이덕하

201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