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올린 거 본 글로..(타이티님 여기로 붙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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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빠져있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땅이 아닌 증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독도가 빠져있다는 사실이, (그 조약체결 이전) 일본이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점유의 사실과 결합해서, (일본측)독도 영유권 주장의 유효한 근거가 된다는 소리가 이치에 안맞다고 한 겁니다. 그렇게 치자면 조약 문구에 빠져 있는 다른 섬들도, 일본이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그 점유의 사실과 결합해서 모두 일본의 영유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래서 잘못된 해석이라고 했고, 그 한반도의 실질적 지배를 "점유"로 보는 게 아니라, "불법적 행위"로 보는 게 적어도 그 조약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님의 답변은 맥락에 벗어나 있는 얘기이고..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침탈했다는 게 아니라, 민비시해(어쨌든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사건입니다)가 1895년에 있었고, 그후에 일본의 압제를 피해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 틀어박혔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조선을 뜯어먹을 궁리를 했고, 일본은 그 러시아의 개입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더욱 노골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을 했죠. 그러다 1904년에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했습니다. 뒤이어 한일협약을 맺었고 일본의 고문통치가 시작되면서 조선은 일본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습니다. 아, 1905년에는 을사조약도 맺었죠. 을사조약 체결과 동시에 대한제국 산하에 있던 외교부가 사라졌습니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외교권을 빼앗아갔죠. 그게 1905년의 일입니다. 하필 그해에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발해서(=날짜를 찾아보니 을사조약 체결 전이네요)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귀속시켰는데, 우리에게는 알려주지도 않아서(=그때 고종과 대신들은 누구 라인에 줄을 대서 목숨부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다였겠죠)1년이 한참 더 지나, 시마네현 군수인가? 그사람이 장정들을 끌고와서 울릉도 군수에게 이미 독도가 우리땅이 되었소..하는 통에 독도가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합니다.(=검색해서 대충 찾아 읽고 있는데 년도나 세부적인 사실관계는 조금 틀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강제로 침탈했다는 증거를 대라!가, 독도=무주지라는 전제 하에서 편입한 것이다는 일본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는다면, 그래서 국제법상에서 (어쨌든)우리가 입증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라는 취지로 한 말이면 일단 수긍은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증거로 입증이나 반증을 해야 하는 쟁점일 수가 있고(=검색질을 좀 해가면서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 처럼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고 느끼고 있어요, 지금은..), 그것때문에 사료들을 찾아서 우리측에 유리한 반박자료를 마련해야 하는 문제인 것은 맞는데..

그럼에도 저 일련의 사건흐름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죠, 그런데 님처럼 아예,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대체 언제부터 있었다는 거냐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1905년 (우리에게는 비밀로 한 채)독도의 영토편입을 마치고, 서방을 향해서만 대외적으로 공표했던 그 행위가 일본의 조선침탈과는 하등의 무관한 사건이라고 보는 게 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이미 1905년 이전에, 이웃국가 군인들 손에 영부인이 무참하게 살해를 당했고(1895년), 외교권이 박탈(1905년)당하는 일련의 침략행위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는 말인데..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이자, 그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될 수가 있는 겁니까? 님의 기준을 좀 들려줘 보세요, 납득할 수 있게..

그리고, 아래 타니티님 글은 잘봤습니다. 굉장히 멘붕오게 하는 내용이던데..^^

그거보면서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결국 일본의 주장은 우산도=울릉도거나, 울릉도 옆의 부속도서를 칭한 것이라고 해도, 독도가 아닌 다른 섬을 말하고 있는거다..인데..

이걸 인정해 버리면, 오히려 일본의 주장이 더 앞뒤가 안맞아떨어지는 것 처럼 보입니다. 우선 지명문제는 "양국 모두" 정리가 안되고 있다는 사실 부터 지적하고 가야겠죠. 우산도, 울릉도, 가지도, 무릉도, 저릉도, 자산도, 석도, 독도..등등 참 많은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던데, 시대에 따라 명칭변경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한 시대 내에서도 명칭통일은 안되고 있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또 현지인들이, 또 일본인들이 쓰는 울릉도-독도를 일컫는 말이 제각각이더군요. 이건 일본 내에서도 마찬가지인지라, 지금은 다께시마=죽도=(중립적으로)리앙크루암(=우리의 독도)이지만, 그이전, 가령 에도 말기 혹은 메이지 정부시대 때의 사료에는, 정반대로 다께시마=울릉도=죽도, 마쓰시마=독도=송도로 표기되고 있더군요. 그외에도 독도를 일컫는 말로 우산도가 일본사료에도 나오고 있고, 량고도라는 말도 있더군요.    

이 명칭의 분화에 대해서는, 홍승목 대사가 가설을 말한 바가 있는데..(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sid=E&tid=3&nnum=600362)


우선 우리 역사현실에서는, 울릉도가 "우산국"이라는 나라, 근까 독자적인 해상왕국이었던 때가 있었죠. 그 우산국이 주변의 여러 섬들을 지배하면서 존속해 오다가 신라에게 나라가 망했고, 그후로 우산국의 본토가 울릉도(혹은 무릉도)라고 불렸는데..이걸 현지인들은 처음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를 함께 쓰다가 울릉도(혹은 무릉도)가 공식표현이 되고, 점점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를 일컫는 말로 쓰게 되고..하지만 중앙정부에서는 현지의 사정을 잘 모른 채, 옛 우산국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어, 우산도라는 명칭을, 울릉도 본토가 우산국이었기 때문에 쓰는 말로 알고 우산도=울릉도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나 보더군요. 그래서 당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오고간 서찰들을 보면, 각기 울릉도와 우산도를 뒤바꿔서 쓰고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하던데..

뭐 암튼 이런 가설들을 동원해서 설명을 시도하고는 있더군요. 자 근데, 일본은 고지도를 동원해서, 그 우산도가 어쨌든 지금 그 독도가 아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게 타이티님의 주장이신 거죠?

그럼 이제 반대로 일본측 사료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희한한 것이 일본은 울릉도를 언급할 때 언제나 독도와 함께 언급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독도를 죽도나 송도, 다께시마나 마쓰시마로 시대마다 명칭을 달리해서 언급하고는 있는데 어쨌든 울릉도와 독도를 운명공동체로 묶어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사료에도 그렇게 "둘 만(only Two)" 언급하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독도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항상 지금 우리가 독도라고 일컫는, 오키섬에서 96Km인가 떨어져있다는 그 돌섬을 말하고 있다는 거죠.

계속해서..

일본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정확히 표기한 것으로, 대표적으로 꼽는 지도가 3개 있는데, 1)삼국통람도설 2)대일본도 3)총회도가 그것이고, 이 지도들에 보면 모두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표기하고 있어요. 또 지도 내부에 "조선의 것으로"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은 물론 색깔구분까지 해두고 있구요. 근까 국경과 영토구분을,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하는 식으로 표시를 해뒀는데 울릉도와 독도는 묶어서 조선반도와 한색깔로, 일본은 그것과 다른 색깔로..

자, 그럼 여기서 그 독도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일본은(&타이티님은) 한국의 고지도를 들고와 우산도=독도가 아닌 울릉도 주변 부속도서 중 하나(=현재 울릉도 옆의 "죽도"-일본의 그 죽도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명-라는 명칭을 쓰는, 독도가 아닌 다른 섬이 유력하다)라고 했죠? 근데 일본의 고지도에 보면 울릉도와 독도를 묶어서 조선땅이다고 했을 때, 혹은 반대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표시했을 때 조차 언제나 그 독도(=송도, 죽도, 마쓰시마, 다께시마)를 지금 우리가 일컫는 독도(=오키섬에서 96km떨어져 있는)라고 분명히 표시하고 있거든요? 아니 아예 일본 고지도에는 (우리가 말하는 그)울릉도와 독도 말고는 그 어떤 다른 섬이 표시되고 있지를 않아요. 

그럼, 우리 고지도를 반박할 때의 논리, 근까 <우산도=독도가 아닌 울릉도 주변 부속도서 중 하나요, 현재 죽도라는 명칭의 섬이 유력하다>는 그 가설과 부합하여, 일본의 고지도에서 조선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 독도(=송도, 죽도, 마쓰시마, 다께시마) 역시 (님이 말한)죽도가 되어야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왜냐면, 다시 강조하지만.. 일본의 그 어떤 고지도에도 울릉도와 독도만 나오지(only Two), 울릉도 주변의 그 어떤 다른 부속도서가 독도라고 지칭되는 경우가 없거든요. 뿐만아니라, 일본 역사서의 기록에도 조선인들과 마찰이 있었던 지명으로 울릉도(=우리가 말하는)나, 그 옆의 독도(=우리가 말하는)가 거명되고 있을 뿐, 그것과 다른 제3의 섬을 가리키는 경우가 단한차례도 안나와요. 그렇다면 한일 양국이 각기 명칭을 혼잡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 뿐, 사실상 우리가 말하는 그 울릉도-독도를 서로가 동일하게 일컫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것 말고는 어떻게도 설명이 안된다고 보이는데?

여기서.. 안용복 사건이 이해를 돕는 좋은 사례일 수가 있는 거죠.. 아시다 시피 숙종 때의 기록에 안용복이라는 사람이 나와요. 이 양반이 일본을 두차례나 방문해서 울릉도와 독도 둘 다 우리땅인데 왜 우리땅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냐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왔거든요.(=1차 도일때는 일본사람들에게 잡혀서 끌려 갔고, 2차 도일때는 자기발로 직접가서 호통을 쳤고..) 그렇게 두번이나 일본 정부에게 가서 항의를 했고, 그 두차례의 항의 끝에 각기 일본 영주로 부터 울릉도도 독도도 일본땅이 아니다는 확답을 받았고 그래서 일본 영주가 울릉도 독도 모두에 대해, 자국사람들의 어업이나 벌목을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해줬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있거든요. 자, 근데 여기서 안용복은 독도를 자산도라고 칭했고, 일본인들은 그 독도를 송도라고 칭했어요. 그리고 이 자산도=송도는 지금 오키섬에서 96Km떨어진, 바로 우리가 말하는 그 독도거든요?

이렇게 일본인과 조선인이 부딪히는 그 공간을 분명하게 독도라고 명기한 흔적들이 있는데, 님이 지금 우리측 고지도를 가져와서 하는 해석은 아예 우리가 독도라는 섬의 존재 자체도 몰랐고, 그래서 우리측 지도나 사료에는, 오키섬에서 96km 떨어져 있는 그 독도가 아니라 다른 곳을 언급한다는 식으로만 설명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로 선점한 것이 정당하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대체 일본이 우리영토로 표기했던 그 독도, 안용복이 일본가서 항의했던 그 독도, 기타 등등의 사료들에 나오는 그 독도의 존재는 대체 어디에 있는 무슨 땅이란 말입니까? 그게 (님이 말한 그)죽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그렇다면 그 독도는, 일본인들이 만든 고지도와 사료속, 나아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이란 말인가요? 이거 암만 생각해도 아귀가 안맞지 않습니까?


덧: 

저도 검색질 하면서, 독도 문제에 대해 제가 너무나도 또 지독하게 모르고 있었고, 사소한 이런 지적질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복잡다단한 쟁점들이 숨어있는 정말 골치아픈 분쟁거리구나는 생각은 하게 됐는데, 어쨌든 저도 시간나는 대로 이것 저것 찾아보고 또 올려주시는 사료들도 함께 보면서 고민도 해볼 테니, 이번 기회에 아크로 분들과 다함께 결론이 어떻게 나든, 독도 문제에 다같이 관심을 가져보는 계기가 됐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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