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독도 분쟁에 있어서 시발점이 되는 시점은 메이지가 쿠테타로 일본을 장악하면서부터 정한론(征韓論)을 펼쳤고(*1) 그 정한론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인 연유에 대하여 내사를 하라는 지시(*2)(이하 내사지시로 약칭)로부터 연유한다고 했습니다.


 

'내사지시'는 아래에 별도로 설명했지만 제 3자 입장에서 판단해 보자면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제 판단은 독도에 대하여 오랫동안 국제사회에 로비를 했고 또한 상대적으로 강대국인 일본이 '현실적으로' 유리하고 칼날은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내사지시'에 대하여 역사적 증거의 유효성 여부를 떠나 제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왜 그 많은 땅을 놓아두고 하필 독도일까?'라는 것으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자료빈곤으로 의문점을 묻혀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KBS 역사스페셜에서 "1902년 을사늑약 전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또 하나의 사료"를 공개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KBS 역사스페셜을 직접 시청하지 않은 입장에서, 그리고 일본의 반박 자료가 나오지 않은 상태, 더우기 당시의 국제법의 관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제도 언론에서 떠들지만 저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3) 제가 판단을 유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울도군절목' 해석에 대한 모호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저의 역사적 의문인 '왜 그 많은 땅을 놓아두고 하필 독도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강치라는 동물 때문입니다. 이 강치라는 동물의 이름을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동안 제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도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4)


 

우선, 사진 하나를 보실까요?

 


강치사진-mbc 서프라이즈.gif

2011년 05월 08일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464회를 통해서 독도강치에 대한 내용이 담긴것이 방영되었습니다. 독도강치는 일본에 의해서 멸종이 되었으나 일본은 세계자연보호 국제회의에서 한국에 경비대원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독도 강치는 수컷은 키가 240cm에 몸무게는 490kg이 나간다고 하며, 암컷은 키가 180cm에 몸무게가 120kg이 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암컷이 현저이 작네요.) 기본아종인 캘리포니아 강치와 달리 암컷의 색상이 조금 옅습니다.(출처 : http://hongnet.tistory.com/m/post/view/id/321)





상기 설명 중에 '독도 강치'라는 학명은 실제로는 '일본강치'로 이름으로 부쳐져 있고  강치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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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속(Zalophus)은 물개과의 한 속이다. 다음 세 종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중 일본강치는 멸종하였다.

캘리포니아강치 Zalophus californianus
갈라파고스강치 Zalophus wollebaeki
일본강치 Zalophus japonicus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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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사이트 : http://ko.wikipedia.org/wiki/%EA%B0%95%EC%B9%98%EC%86%8D)


 


 

이 부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한 블로거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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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해군은 동해에서의 러시아 군함의 활동을 정찰하기 위해 1904년 8월에 울릉도 2곳에 무선전신시설을 갖춘 망루를 설치. 독도에도 1904년 9월부터 군함을 파견해 망루설치를 위한 준비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일본해군성은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어업가가 대한제국의 영토인 독도에서 강치 등의 어로에 대한 독점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 농상무부가 대한제국정부를 상대로 교섭해 줄 것을 농상무부에 요청하고 있음을 농상무부 수산국장으로부터 통보받는다.


이에 해군성 수로부장인 기모츠키 가네유기 제독은 나카이를 불러 “그 섬(독도)은 무주지로 대한제국정부에 빌려 달라고 요청할 게 아니라, 일본정부에 그 섬(독도)을 일본영토로 편입하고 나서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일본해군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기회에 독도를 빼앗아 독도에 해군용 감시 망루를 설치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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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http://blog.daum.net/historyfoundation/6833775)

 
이 자료에 '기모츠키 카네유기 제독'이라는 실명의 발언은  “그 섬(독도)은 무주지로 대한제국정부에 빌려 달라고 요청할 게 아니라, 일본정부에 그 섬(독도)을 일본영토로 편입하고 나서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는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내사지시'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으로 되어 있지만 이 제독의 발언은 무주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내사지시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 사건과 연결하면 제가 설명드린 '검의 양날과 같아서'  이 역사적 사실을 유효하다고 우리가 주장하면 내사지시라는 역사적 사실은 무효가 되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해야할 책임은 우리에게 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무주지에서 일본 땅으로 편입한 역사적 사실은 1905년에 분명히 존재하는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 이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내사지시를 인정하면 제3자의 판단에서 객관성을 담보받을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양자의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 국경이라는 것이 현대적 개념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인류의 역사를 거론하면 논리적으로는 우리가 타당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 독도 소유권은 소유권의 다툼인 빕리논쟁이지 일반적인 역사해석을 논하는 역사시간이 아닙니다. 즉, 실제적인 실증자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제독의 발언인 "그 섬(독도)은 무주지로 대한제국정부에 빌려 달라고 요청할 게 아니라, 일본정부에 그 섬(독도)을 일본영토로 편입하고 나서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발언과 KBS 역사스페셜은 상충됩니다. 왜냐하면, KBS역사스페셜에서는 독도에서 잡은 강치를 울릉도로 들여와 수출한 후에 세금을 조선에 납부했다는 기록 때문입니다.(*5)(*6)



 그럼 강치는 일본에서 어떻게 쓰였을까요? 이 부분은 일본 사이트를 뒤져보는 수 밖에 없을듯합니다. 그 것도 현대 일본문화가 아니라 이미 멸종되어 잡을 수 없는 강치를 이용한 과거 일본의 문화를 말입니다. 단지, 위에 인용한 블로거의 설명을 재인용하자면 강치로 가죽을 만들고 비료를 만들 수 있다니 강국을 만드려는 일본 메이지왕으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자원이겠지요. 마치,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판단되는 어떤 에너지가 독도에 무궁무진하다는 보고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독도강치(일본강치)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한 것은 1905년으로 본격히 이루어 졌으며 한해 평균 1,300~1,400마리를 잡을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일본이 독도를 탐낼만도 했을겁니다.






강치를 잡는 일본인들.jpg
(강치를 잡는 일본 어부들)


 

 

 

*1) 정한론 성격에 대하여는 하여도 한국과 일본의 해석의 논란이 있습니다만 시발점은 흥선대원군의 쇄국과 일본이 개국 요구가 마찰을 빚으면서 시작된 것은 사실로 '시작 부분'에 대하여는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같습니다.


 

*2) 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인 연유 내사 지시는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증거로 활용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불 때는 '객관성을 담보받을 수 있느냐?'라는 부분이 약점인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적 자료들이 논란이 되는 기술들이 다수지만 일본진영의 역사적 자료들은 명백한 것들이 많거든요? 이런 경우, 일본이 독도는 조선령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라는 반론제기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관련기사는 여기를 클릭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7/2012081700167.html
http://news1.kr/articles/779334


 

*4) 강치 때문에 알게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은 여기서 일단 인용만 하고 일본측 주장을 비교해보아야 하니 판단은 일단 유보합니다.

*5) 이 부분은 현재의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고려하면 KBS의 역사스페셜 내용은 좀 모순이지 싶습니다. 그 이유는 세금을 낸 것이 과연 행정적 귀속 때문인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다국적 기업은 국적이 없다지만 오리지널리티는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윤은 본국의 본사로 송금된다는 점에서 세금을 냈다고 우리가 실효지배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선박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당시에(이건 제 스스로 당시 선박제조기술을 확인해보야할 것입니다. 군수용이야 이미 큰 배도 건조하지만 소규모 배가 과연 독도에서 일본 본토까지 매일같이 갔다 올 수 있는지.... 하나의 가설은 일보 대신 기항지를 울릉도에 두고 기항요금을 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제 판단이고 일본측 해석을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6) 정치적으로 설명한다면 KBS 역사스페셜의 내용이 사실 관계의 앞뒤가 전혀 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데 아부 차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이명박 정권은 이 사실을 맹신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독도를 갔다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