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ralrara.blogspot.kr/2006/05/blog-post_08.html

블로그 주인장은 더이상 블로그를 안하는거 같아 참고자료로 퍼옵니다.

최근 국내 거주중인 외국분과 독도 문제로 논의를 했습니다. 그분은 블로그를 통해 독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말씀하고 계셨는데요, 일본측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저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그분의 블로그에 남긴 코멘트를 모은 것입니다. 원래 2번째 코멘트까지는 영어로 작성했었으나, 3번째부터는 그분의 허락을 받아 한글로 작성했는데, 아래의 것들은 3번째 코멘트와 그 이후의 것들입니다.

혹시라도 한국 네티즌들이 그분의 블로그에서 발광할까봐, 또 그분이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계시므로 그분의 이름과 블로그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주장은 대체로 다나카씨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얼마전 소개해 드린 다나카씨의 글을 읽어보시면 대체로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래의 글은 그분의 블로그에 코멘트로서 작성한 글이라 꼼꼼하지 못하고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At 1:26 AM KST, 랄라라 said...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한글로 코멘트를 하겠습니다.

첫째, A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I think the Sejong record considered the two islands as a 2-island group, so when it said they could be seen on a clear day, I think it meant that the island group could be seen, not that both islands could be seen.

이것은 A님의 생각일 뿐, 근거가 없다는 것은 A님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측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연역적인 추론일 뿐, 귀납적으로 도출된 결론이 아닙니다. 즉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결국 상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분명히 두 개의 섬(二島)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세종실록지리지의 해석은 애매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렸지만, 좀 더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섬에 대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설명을 볼까요.

世宗 155卷 地理志 / 咸吉道/ 永興大都護府
세종 155권 지리지 / 함길도 / 영흥 대도호부

海島三, 
바다의 섬이 3이니,

大都島、【在府東, 古避亂處有土城基, 去陸六里。】
대도도(大都島)【부의 동쪽에 있는데, 옛날 피난처(避亂處)였으므로 토성(土城)을 쌓았던 터가 있다. 육지와의 거리가 6리이다.】

茅島、【在府東大都島南十里, 去陸三里。】
모도(茅島)【부의 동쪽 대도도(大都島) 남쪽 10리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3리이다.】

熊島、【在府東大都島東十五里, 去陸十五里】
웅도(熊島)【부의 동쪽, 대도도의 동쪽 15리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15리이다.】

보시는대로, 분명히 육지와의 거리(去陸)라는 말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섬을 기준으로 거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를 보면, 모두 본문(本文)의 주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개의 주가 모두 '~에 있다(在)'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른 경우도 살펴볼까요?

世宗 151卷 地理志 / 全羅道 / 全州府/ 萬頃縣
세종 151권 지리지 / 전라도 / 전주부 / 만경현

海島二, 
해도(海島)가 2이니

群山島、望人島。
군산도(群山島)·망입도(望入島)이다.

이 경우 섬의 방향이나 거리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정리하면, "세종실록지리지는 언제나 육지로부터의 섬의 방향과 거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일본측의 주장은 틀린 것입니다.

A님은 잘못된 주장을 인용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산국에 대한 기록을 다시 볼까요.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우산 무릉 두 섬은 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의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풍일청명한 날에 바라다 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라 칭했는데, 울릉도라고 하기도 한다.】

① 주에서 두 개의 섬(二島)라는 주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② 육지와의 거리(去陸), 혹은 수로(水路)라는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님은 육지를 기준으로 해석할 것입니까?

위에서 제시했지만, 중영사전(chinese-english dictionary)의 예문조차 두 곳 사이의 거리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上海交通大學 出版社)

去[qù]③ (距离;差距) be apart from: 两地相 ~ 八十里。 The two places are 80 li apart.

두 섬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해석이 상식적이기 때문에,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일본측이 주장했던 것입니다.(육지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일본측의 주장은 1990년대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A님은 이 문장의 해석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기 바랍니다. 만약 반론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당연히 한국측의 해석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말씀하신 흑룡회(黑龍會)의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의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해석문입니다. 

원문 이미지 보기 
ヤンコ島 - 鬱陵島より東南の方約三十里、我が隠岐国を西北に距ること殆ど同…於て、無人の一島であり、晴天の際鬱陵島山峰の高所より之を望むを得べし...
양코島(liancourt; 독도) - 울릉도의 동남쪽 약 30리, 우리(일본) 오키 지방 서북쪽으로 거의 비슷한 거리의 (바다 가운데) 있으며 무인도이고, 맑은 날에는 울릉도의 높은 산봉우리에서 이곳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 것이 특별하기 때문에 언급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확인되므로 우산도(于山島)가 독도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래 사이트는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click here

보시는대로, 일본의 우익 단체 '흑룡회(黑龍會)'는 책의 목차에서 독도(ヤンコ島; liancourt)가 한국의 강원도에 속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넷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해석을 15세기의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에 소급 적용하여 해석하면 안됩니다.

문장 구성과 내용이 다릅니다. 다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입니다.

風日淸明, 則峰頭樹木及山恨沙渚 歷歷可見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산꼭대기의 수목 및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울릉도를 말하는 것으로, 육지에서 울릉도가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비교했을 때 문장의 구조와 목적어가 다릅니다.

울릉도는 육지에서 관찰됩니다. 그리고 독도는 울릉도에서 관찰됩니다. 또한 울릉도는 독도에서 관찰됩니다. 그러므로 두 개의 문장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문장을 『세종실록지리지』에 소급 적용하여 날조 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일본측은 주장하기를, "한국 정부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문장을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 것으로 날조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만, 한국 정부의 1954년 9월 25일자 의견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우산도와 울릉도가 울진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 정부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날조 해석했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날조인 것입니다.

다섯번째, 고지도(古地圖)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가까이에 있는 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만, 이것은 무리한 지적입니다.

① 경위도 측량술이 없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미 예전 코멘트에서 제시했습니다만, 당시의 지도 제작 수준은 일본의 위치와 크기마저 엉터리로 표기하는 수준이며, 또한 한반도 주변의 다른 섬의 위치도 엉터리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에게만 정확한 위치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한 행위입니다.

② 현대 한국의 지도에서도 역시 같은 경우가 발견됩니다. 예전 코멘트에서 한반도기를 제시했습니다만, 하나 더 제시하겠습니다. 다음은 울릉군청의 관광 안내 지도입니다.

click here

독도가 울릉도에 매우 가깝게 있군요. 그렇다면 현대 한국인은 독도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지요.

여섯번째, 대한지지에 수록된 대한전도에 나타난 독도의 위치에 대하여 지적하고 계십니다만, 이것 또한 불공평한 지적입니다.

이 지도는 독도 뿐만 아니라 모든 곳의 경위도가 잘못 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지도가 말하고 있는 한반도의 경위도를 보면, 한국의 최남단은 33도 15분이고, 한국의 최북단은 42도 25분이며, 한반도의 최동단은 130도 35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틀린 것입니다. 한국의 최남단은 33˚ 6' 40'' 이며, 최북단은 43˚ 39', 한반도의 최동단은 130˚ 41분입니다.

모든 장소의 경위도가 잘못되었는데, 어째서 독도의 경위도만 지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은 다 틀려도, 독도의 위치는 정확해야 한다는 논리입니까? 매우 불공평한 논리입니다.

그리고 역시 예전 코멘트에서 지적했습니다만, 『대한지지』의 경위도는 일본측 서적으로부터 수입된 것입니다. 일본측 지도 역시 울릉도와 독도의 경위도를 잘못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일본의 지도는 울릉도의 위치를 129˚ 57'으로, 독도의 위치를 130˚ 35'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조선전도(1875) - 일본육군참모국
②장중일본전도(1875) - 가지하라요시나가(原義長) 
③대일본육해전도(1899) - 모리고토세키(森琴石)
④청국여지도(1879) - 다카다요시쓰게(高田義甫)
⑤조선휘보(1893) - 동방협회

그리고 아래의 일본의 지도는 독도의 위치를 130˚ 50'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 송도지의(1878) - 와타나베히로모토(渡邊洪基)
② 조선지리지(1894) - 오타호지로(太田方次郞) 

일본의 지도 또한 경위도가 틀렸는데, 어째서 한국의 지도에 대해서만 정확한 독도의 경위도를 요구합니까? 이것은 심히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당시의 한국은 경위도 측량술이 없어서,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경위도 지식을 바탕으로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에 표기된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라는 사실은, 『대한신지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한신지지』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동남쪽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도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있기 때문에, 우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일곱번째, A님은 태종 17년(1417) 김인우 기사를 제시하셨습니다.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其島戶凡十五口, 男女幷八十六。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한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그러나 김인우가 데려온 거주민은 우산도 출신이 아닙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 7년(1425) 8월 8일의 기록입니다.

初江原道平海人金乙之李萬金亐乙金等曾逃居武陵島, 歲丙申國家遣麟雨, 盡行刷還
처음에 강원도 평해인 김을지·이만·김울을금 등이 무릉도에 도망가서 살던 것을, 병신년(1416)에 국가에서 김인우를 보내어, 모두 쇄환했다.

세종이 직접 "무릉도 출신"이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김인우가 데려온 사람들은 현재의 울릉도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종 17년(1417) 기록의 우산도는 현재의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당시의 우산도는 무릉도와 같은 섬이었던 것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태종실록은 분명히 우산도와 무릉도를 분리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太宗 34卷 17年 8月 6日
태종 34권 17년 8월 6일

○倭寇于山、武陵。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

같은 섬이라면 병기(倂記)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분명히 두 개의 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우산·무릉 두 섬은 울진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

여기서 김인우가 출발할 때의 기록을 봅시다.

태종 16년(1416) 9월 庚寅

以金麟雨爲武陵等處按撫使. 戶曹判書朴習啓. 「....武陵島周回七息, 傍有小島, 其田可五十餘結, 所入之路纔通一人, 不可並行. 昔有方之用者, 率十五家入居, 或時假倭爲寇....」 上可之, 乃召三陟人前萬戶金麟雨, 問武陵島事....上然之, 以麟雨爲武陵等處安撫使...
김인우를 무릉 등처(等處)안무사로 임명했다. 호조참판 박습이 아뢰었다. 「.... 무릉도의 주회가 7식이고, 곁에 작은 섬이 있고, 전지가 50여 결이 되는데, 들어가는 길이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하고, 병행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방지용이란 사람이 있어, 15가를 거느리고 입거하여, 때로는 가짜 왜구로서 도둑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옳다고 생각하여, 삼척 사람 전만호 김인우를 불러서, 무릉도의 일을 질문했다..... 왕이 옳게 생각하여, 김인우를 무릉등처 안무사로 임명하고....

이 기록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김인우는 무릉 등처 안무사의 직함을 받고 출발했다. 그러므로 우산도나 무릉도 한 개의 섬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 아니라, 무릉도 주변 지역을 모두 관찰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다.

② 무릉도에 15가구가 살고 있다.

③ 김인우를 무릉 등처 안무사로 임명했다는 문장이 두 번 나온다. 그러므로 첫번째 문장과 그 뒤의 문장은 연결되지 않는 별개의 문장임을 알 수 있다.

그럼 태종 17년(1417)의 김인우 귀환 기사로 되돌아 갑시다.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其島戶凡十五口, 男女幷八十六。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한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그 섬의 호수[戶]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이제 A님도 알겠지만,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사람과 토산물이 있었다는 그 섬(其島)이 곧 우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인우는 분명히 무릉등처 안무사로서 출발했습니다. 즉 무릉도와 그 주변 지역을 관찰하기 위해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에서 분명히 그 섬(其島)에는 15구, 즉 15가구가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섬은 무릉도입니다.

따라서 첫번째 문장인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왔다"는 문장은 그 뒤의 문장과 직접적인 연결은 되지 않는, 하나의 요약문이라 보아야 합니다. 우산도라는 말과 그 섬(其島)이라는 말 사이에 토산물과 거주민을 데려왔다는 문장이 있고, 또한 태종 16년(1416)의 기록에서 "김인우를 무릉등처 안무사로 임명했다"는 문장이 두번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이 기록의 우산도와 뒤에 나오는 그 섬(其島)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봐야 전후 상황과 무리 없이 맞물리게 됩니다.

따라서 태종 17년(1417)의 김인우 귀환 기사는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김인우가 우산도를 마지막으로, 무릉등처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환했다. 그곳의 토산물과 거주민을 데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는 15구요, 남녀 86명이었다.

여덟번째, A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As for your 1770 quote, here is one possible explanation. The Japanese also referred to Ulleungdo as Songdo.

the 1770 Korean document란, 동국문헌비고를 말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분명히 우산도는 일본인이 말하는 송도(마쓰시마; 松島)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輿地志云. "鬱陵于山皆于山國地, 于山則倭所謂松島也" - 東國文獻備考
여지지는 말했다.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도는 곧 왜인이 말하는 송도이다." - 동국문헌비고

일본측의 주장은, 과거 울릉도가 일본에서 죽도(다케시마; 竹島)로 불렸고, 독도가 송도(마쓰시마; 松島)로 불렸다는 것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리한 기록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논리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의 일관성이 결여된 치졸한 행위입니다.

최근 발견된 시마네현 문서는, 분명히 죽도와 송도가 강원도에 속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click here

이 문서는 1696년(숙종 22년) 5월 일본 어선의 독도 출어에 항의하기 위해 두 번째로 일본을 방문한 안용복을 일본 지방 관리가 취조해 막부 직할령인 이와미(石見)주에 보고한 것입니다.

아홉번째, A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Personally, I think that all of the confusion stems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not knowing about Jukdo, the small island just off the coast of Ulleungdo. This would have caused a lot of confusion because when Japanese fishermen would return to Japan and talk about an island east of Ulleungdo, Japanese officials may have assumed that it was Dokdo/Takeshima, not knowing that there was also another little island between Ulleungdo and DokdoTakeshima.

가능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관찬(官撰) 기록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聴合記)』는 분명히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隱州在北海中故云隠岐島, 從是, 南至雲州美穂関三十五里, 辰巳至泊州赤碕浦四十里, 未申至石州温泉津五十八里, 自子至卯, 無可往地, 戍亥間行二日一夜有松島, 又一日程有竹島, 俗言磯竹島多竹魚海鹿. 此二島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然則日本之乾地, 以此州爲限矣 
隱州(오키섬)는 북해 가운데 있으므로 隱岐島(오키섬)라고도 하는데, 이로부터 남쪽의 雲州(시마네현) 美穂関까지 35리, 동남쪽의 伯州(톳토리현) 赤碕浦까지 40리, 남서쪽의 石州 温泉津까지 58리, 동북쪽에는 갈 땅이 없고, 북서 사이에 1박 2일 동안 가면 松島(독도)가 있고, 또 하루 걸려 竹島(울릉도)가 있는데, 속세에서 말하길 磯竹島라 하며 대나무, 물고기, 바다표범이 많다고 한다.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고, 고려를 보는 것이 雲州에서 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일본의 북서쪽 땅은 이 州를 한계로 한다.

아래 사진은 울릉도에서 현재의 죽도(chuk-do)를 바라본 것입니다.


이 섬에 도착하는데 하루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합니까? 죽도(chuk-do)는 울릉도에서 약 4Km 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일본측이 말하는 송도(마쓰시마; 松島)는 현재의 독도가 확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합니다만, 다나카씨의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聴合記) 해석은 왜곡되었습니다. 분명히 隠州를 설명하는 글에 나온 此州는 隠州임에도 불구하고, 州를 섬이라는 일반명사로 의역하여, 此州가 울릉도(竹島)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할 경우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고려를 보는 것이 雲州에서 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 이 문장이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이유로서 등장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然則」라는 접속어가 들어갔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이유로서 기재된 것이라면, 그 뒤의 접속어는 「所以」와 같이 therefore의 의미가 들어가야 합니다. 「然則」은 then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與地路程全圖)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이 지도의 竹島(다케시마; 울릉도)와 松島(마쓰시마; 독도) 밑에는 見高麗猶雲州望隱州(고려를 보는 것이 雲州에서 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의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두 섬을 어디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 지도에는 한반도의 남부지역도 일부가 표시되어 있는데, 색깔이 없고 경위도선이 없습니다. 즉 일본의 영토가 아니므로 색칠하지 않고 경위도선을 넣지 않은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지도의 竹島(다케시마; 울릉도)와 松島(마쓰시마; 독도)에는 채색도 없고 경위도선도 없습니다. 이 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다나카씨의 해석은 일본측 지도에 의해서도 완벽하게 부정됩니다.



At 11:16 AM KST, 랄라라 said... 

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태종 17년의 우산도와 그 섬(其島)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종 17년의 기록에 의하면, 김인우가 토산물을 바치고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섬(其島)에 15구 86명이 살고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섬(其島)이 '우산도'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토산물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을 지칭하는지는 태종 17년의 기록만 봐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태종 16년, 즉 출발할 때의 기록을 제시한 것입니다.

태종 16년의 기록에는 김인우가 '무릉등지(等地)안무사'로서 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산도는 김인우의 방문지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므로, 그 섬(其島)을 우산도 한 곳에만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태종 16년의 기록에는 분명히 '무릉도에 15가가 입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9년뒤인 세종 7년의 기록에도 분명히 '김인우가 데려온 사람은 무릉도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김인우가 데려온 사람들은 무릉도 사람이지, 우산도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태종 17년을 근거로 하여 '우산도에 토산물과 사람이 살고 있으니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 현재의 울릉도 or 죽도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근거에 기초한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리고 A님은 태종 12년의 기사를 근거로 하여 '무릉도는 현재의 죽도이고, 우산도는 현재의 울릉도이다'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만, 이것은 하나의 잘못된 발언을 가지고 나머지 수백개의 기록을 부정하는 억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려사지리지를 봅시다.

蔚珍縣 - 有鬱陵島.[在縣正東海中新羅時稱于山國一云武陵一云羽陵]
울진현 - 울릉도가 있다.[현의 동쪽 바다에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라 칭하고, 무릉 또는 우릉이라고도 하였다]

분명히 무릉도는 울릉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우산국이라는 말도 나옵니다만, 우산'도'와 우산'국'은 다른 말이라는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 있으므로,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우산국=무릉도+우산도)

이번엔 태종 16년의 기록을 봅시다.

太宗 32卷 16年 9月 2日 (庚寅)
태종 32권 16년 9월 2일 (경인)

以金麟雨爲武陵等處安撫使。戶曹參判朴習啓:
김인우(金麟雨)를 무릉(武陵) 등지 안무사(安撫使)로 삼았다. 호조 참판(戶曹參判) 박습(朴習)이 아뢰기를,

“臣嘗爲江原道都觀察使, 聞武陵島周回七息, 傍有小島, 其田可五十餘結。 所入之路, 纔通一人, 不可竝行。"
“신이 일찍이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로 있을 때에 들었는데, 무릉도(武陵島)의 주회(周回)가 7식(息)이고, 곁에 작은 섬(小島)가 있고, 전지가 50여 결(結)이 되는데, 들어가는 길이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하고 나란히 가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무릉도의 둘레가 7식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1식은 30리입니다. 그리고 1리는 0.420km입니다. 따라서 무릉도의 둘레는 7*30*0.420=88.2km가 됩니다. 그리고 무릉도 곁에는 작은 섬이 있으며, 좁은 입구가 있다고 말하고 있네요. 

울릉도의 해안선 길이는 56.5km, 죽도의 해안선 길이는 약 4km입니다. 그리고 울릉도 옆에는 작은 섬들이 있이며, 죽도는 그 작은 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울릉도는 좁은 입구가 있지만, 죽도는 사방이 절벽이라 입구가 없어서, 현재 인공 계단을 설치해서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의 무릉도는 현재의 울릉도입니다. 

이번엔 태조 12년 이전의 기록을 봅시다. 태조 7년의 기록입니다.

太宗 13卷 7年 3月 16日
태종 13권 7년 3월 16일

對馬島守護宗貞茂, 遣平道全, 來獻土物, 發還俘虜。 貞茂請茂陵島欲率其衆落徙居, 上曰...
대마도 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평도전(平道全)을 보내와 토물(土物)을 바치고, 잡혀 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정무(貞茂)가 무릉도(武陵島)를 청(請)하여 여러 부락(部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고자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무릉도가 현재의 죽도라면, 무릉도에 건너가 살게 해달라는 종정무의 부탁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대마도를 놔두고, 식수도 없고 출입로도 없는 죽도에서 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엔 20년전의 기록인 태조 1년의 기록입니다.

太祖 1卷 元年 7月 30日
태조 1권 1년 7월 30일

都評議使司請前日敎書所載流放遐方者, 分徙武陵、楸子島、濟州等處, 上曰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 전일의 교서(敎書)에 기재된 먼 지방으로 귀양보낼 사람은 무릉(武陵)·추자도(楸子島)와 제주도(濟州島) 등지로 나누어 귀양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귀양지로서 제주도와 함께 무릉도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무릉도가 현재의 죽도라면, 어째서 제주도와 함께 등장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주도는 한반도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입니다.

그리고 귀양이라는 것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곳에 보내는 것이지, 식수도 없고 출입로도 없는 곳에서 살라고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의 무릉도 역시 현재의 울릉도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왕조실록의 많은 기록들이 무릉도를 현재의 울릉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용복과 동국문헌비고 등 많은 조선의 기록들이 무릉도는 현재의 울릉도요, 우산도는 현재의 독도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輿地志云. "鬱陵于山皆于山國地, 于山則倭所謂松島也" - 東國文獻備考
여지지는 말했다.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도는 곧 왜인이 말하는 송도이다." - 동국문헌비고

다른 수많은 기록을 놔두고, 자신의 생각에 맞는 하나의 기록만을 인용하는 것은 왜곡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독도라는 말 대신에 다케시마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여 

"한국인들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고, 따라서 한국인들도 다케시마가 일본땅인 것을 인정했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At 8:28 PM KST, 랄라라 said... 

휴.. 이미 위에서 다 말씀드렸던 이야기가 아닙니까. 경위도 측량술이 없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독도의 정확한 경위도 위치와 거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른 섬들의 위치도 틀렸고, 또한 한반도의 위치와 크기도 부정확한데, 어째서 독도만 정확한 위치를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지도들 역시 독도를 울릉도 바로 옆에 표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여드렸구요. 

A님께서 보셨듯이, 태종 16년의 기록에는 무릉도 옆에 작은섬(小島)가 있다고 했을 뿐, 우산도가 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무릉도 바로 옆의 작은섬(小島), 즉 지금의 죽도가 우산도라면, '곁에 작은 섬이 있다(傍有小島)'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곁에 우산도가 있다(傍有于山島)'라는 말이 나와야 정상입니다.

또한 한국측 기록 역시 울릉도의 동남쪽에 우산도가 있다거나(안용복, 대한신지지 등), 우산도는 일본인이 말하는 송도(마쓰시마; 독도)라거나(동국문헌비고), 두 섬의 거리는 멀지 않아서 맑은 날에 서로 볼 수 있다는(세종실록지리지) 이야기를 보면, 우산도는 현재의 독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릉도 바로 옆에 우산도가 있기 때문에 독도가 아니라고 A님께서 생각하신면, 이에 대해서 더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반박 근거를 제시했는데도 통하지 않는다면,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겠지요.

그리고 기록들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혼동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혼동이라는 것은 태종 12년의 기록 외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태종 12년의 기록은 유산국도에 살고 있다는 '한 사람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지, 조선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닙니다. 이 경우와 유사한 '우산 무릉 일도설(一島說)' 역시 전체 비중에서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고, 99%는 '이도설(二島說)'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A님의 태도는 1%를 가지고 99%를 부정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1년전, 노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지칭한 것을 가지고, 수백년 후의 일본인들이 '한국인도 당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다'라고 주장한다면, A님은 옳게 여길 것입니까?

A님께서는 저의 반론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이 없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二島相去不遠의 해석 문제도 그렇고, 구체적인 반박 근거없이 그저 일본측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하에 연역적으로 추론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A님이 제시한 주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박과 근거를 모두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A님께선 제가 반박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타당한 근거를 같이 제시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나중에 독도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서 올려주신다고 하셨으니, 나중에 시간되면 다시 찾아와서 읽던지 하겠습니다. 다만 다나카씨의 홈페이지에 인용된 자료만을 올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알고 있는 이야기고, 이곳에서도 반박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