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도문제를 살펴보면서 우리측이 제시하는 자료에 실망했고, 우리측의 논리(주장)에 아연실색했습니다. 제시하는 자료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할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우리측의 ”우산도=독도“라는 주장은 오히려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라고 자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자료를 제시하고 ”우산도=독도“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쪽의 역사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저렇게 왜곡되어 선전되는 사실에 왜 침묵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정 이 나라에는 양심적인 역사학자는 없는 것인가요?


우리나라 외교통상부가 만든 <외교부 독도> 홈피에 올라와 있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로 제시된 우리의 고문헌들을 보십시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만기요람, 증보문헌비고에 나오는 우산(도)가 어떻게 독도를 의미합니까? 저도 곧바로 논박할 수 있는 저런 자료를 우리측을 공식 대표하는 기관(외교부)이 버젓이 올려놓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1.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에 무어라고 나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해석 : 우산과 무릉이 현의 정 동쪽 동해에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으며,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역시 독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우산이 독도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우산과 울릉은 거리가 멀지 않다고 기술하고 있어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가 200리나 되는 먼 거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산을 독도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지요. 동해안에서 울릉도까지 거리가 300리인데 200리를 멀지 않은 거리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산은 울릉도 동쪽 2.8km에 있는 지금의 竹島라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은 울릉도를 동해안에서 보면 보인다는 뜻이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한 말이 아니지요. 기록자의 기준(울릉도에 살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내륙(울진)의 관점에서 기록)으로 해석한다면 저렇게 해석할 수가 없지요.

제 해석이 올바르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증명합니다. 그러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나와 있는지 볼까요?

<외교부 독도>의 “우리 땅 독도“ -> ”지리적 역사적 근거“로 들어 가시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우산도/울릉도를 언급하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dokdo.mofat.go.kr/page.do?page=0020101

원문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 수목과 산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똑같은 문구인 “風日淸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울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봉우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은 독도의 형상과 맞지 않고, 세 개의 봉우리 중 남쪽이 낮다는 것도 역시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의 모습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우산도/울릉도 설명은 울진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오고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의 저 문구도 “강원도 울진현조”에 나오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도 울진에서 울릉도를 본 것이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이른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조선시대 운곡선생의 시에 이와 관련되는 시가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울진에서 울릉도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운곡선생 영해방문 행로기>의 1-158 “지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다”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http://cafe.naver.com/shmj68/320


우산국이라 칭하고 울릉도라 부른 것은 우산국이 울릉도이고 무릉은 울릉도 부근에 있는 부속 섬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지요.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으며, 애초에 독도 존재 자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2. 동국문헌비고, 만기요람, 증보문헌비고

동국문헌비고와 만기요람에 <여지지>에 이르기를 “우산도는 왜가 말하는 松島(마츠시마)”라고 했다는 구절을 두고 당시 일본이 독도를 松島라 했음으로 우산도는 독도가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동국여지지(여지지는 없습니다. 동국여지지를 이릅니다)에는 정작 “우산도는 왜가 말하는 松島다“라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동국문헌비고와 만기요람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울진에서 350리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200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저런 표현을 쓸 수가 있지요?

동국문헌비고와 만기요람이 우산도를 왜가 말하는 송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안용복이 죽도를 송도(마츠시마)라고 이야기한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숙종실록에는 안용복이 취조받으면서 진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 죽도(안용복은 松島로 표현)에 살던 왜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나오고 죽도(송도)까지 쫓아가 왜인들의 가마솥을 엎지르자 왜인들이 살림을 거두어 배에 싣고 돌아간다는 장면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안용복의 진술에는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우산도)에 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갈려면 족히 이틀은 걸리는데 어떻게 곧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안용복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안용복이 이야기하는 자산도(우산도)는 죽도를 의미하고, 이 죽도를 안용복은 왜가 말하는 松島라고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그리고 안용복이 말하는 松島를 독도라고 주장하면 우리가 더욱 낭패를 봅니다. 안용복의 진술에는 왜인이 이미 松島에서 살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松島를 독도라고 우리가 주장하면 왜인(일본)은 이미 독도에서 집을 짓고 살고 고기도 잡으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일본측에 도움이 될까요?

관련한 안용복의 진술내용을 첨부합니다.

숙종 실록

숙종 22년 병자(1696,강희 35) 9월25일 (무인)


비변사(備邊司)에서 안용복(安龍福) 등을 추문(推問)하다.

.....제가 앞장 서서 말하기를,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 하고, 이어서 뱃머리에 나아가 큰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본디 송도(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송도는 자산도(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 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였습니다. 드디어 이튿날 새벽에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막 가마솥을 벌여 놓고 고기 기름을 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대기로 쳐서 깨뜨리고 큰 소리로 꾸짖었더니, 왜인들이 거두어 배에 싣고서 돛을 올리고 돌아가므로, 제가 곧 배를 타고 뒤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을 만나 표류하여 옥기도(玉岐島)에 이르렀는데, .......


증보문헌비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떡하니 350리에 두 섬이 있다고 해놓고 어떻게 우산도를 독도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제발 전체적인 맥락과 상호 연관성을 따져 가면서 해석하고 진정 우리측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문헌의 내용은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의 주장을 내세웁시다. 일본에 역사왜곡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려면 우리도 양심에 꺼리낌없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