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게된 것은 몇 년 전 우연히 '역대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들 중에서 내가 읽은 작품이 몇%나 될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살펴보다가 알게 된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이유는 내가 새로 알게된 사실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블로그에서 이런 사실을 기록한 포스팅 밑에 달린 쪽글들 때문이었죠.

 


윈스턴 처칠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림원에서 선정한 이유 중에 하나가 '윈스톤 처칠'의 연설도 포함되었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동년에 같은 후보에 올랐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수상 이유가 연설 때문이라니 말도 안된다'라고 한림원을 거세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헤밍웨이의 비판은 묵살되었고 그래서 역사에는 1953년 노벨문학상 수상이자가 '윈스턴 처칠'로 기록되어 있고 1953년 떨어진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그 다음 해인 1954년에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윈스턴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과 떨어진 헤밍웨이를 생각한다면, '정치적인 판단이 있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노인과 바다'는 1952년 출간되었고 그 해 미국 폴리쳐상을 수상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막상 1953년에는 윈스턴 처칠이 수상했고 1954년에 가서야 헤밍웨이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흔히 히틀러와 비교되면서 '리더쉽'을 거론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 리더쉽에 대하여 잠시 검색해보니까 지난 미국의 9.11 테러 사건 때 미국에서는 '윈스턴 처칠의 리더쉽을 배우자'라는 열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왜냐하면, '윈스턴 처칠의 리더쉽을 배우자'라는 의미는 당시 미국대통령 부시의 리더쉽은 속된 말로 시궁창에 구겨넣은 셈이 되니 말입니다. 그런 열풍을 부시가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 고소가 떠올려집니다.


 


 

윈스턴 처칠은 유머책에서도 그리고 문화재 관련 부분 등 리더쉽 이외에 소재로 많이 등장합니다. 윈스턴 처칠에 얽힌 유머는 '유머 관련책'이라면 반드시 등장할만큼 아주 유명한 유머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회담을 위해 영국을 방문한 당시 미국대통령 루즈벨트가 처칠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점심시간에 수면을 하고 수면 후에 목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침, 루즈벨트가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아니면 그날 따라 처칠이 목욕을 오래했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루즈벨트는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처칠과 맞딱드립니다. 회담을 위해 정장을 하고 온 한나라의 정상과 인간으로서 보여줄 것 보여주지 않을 것 전부 드러낸 또 다른 나라의 정상.


상당히 어색했을 이 상면 장면......... 그리고 그런 어색함이 어쩌면 미칠수도 있는 정상회담의 분위기....... 이런 어색한 장면을 처칠은 멋진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아무 것도 숨기는게 없습니다."

 

잠시 부언하자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유머관련 책에서 소개되는 처칠의 이 유머와 함께 역시 반드시 소개되는 유머는 DJ에 얽힌 유머입니다.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DJ가 귀국길에 올랐을 때, 당시 DJ에 대한 '풍문' 중 하나가 'DJ는 사대주의자'라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DJ가 공항에 도착하여 DJ와 동반한 외국인들과 함께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한 가지가 '당신은 사대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는데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상당히 어색한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DJ는 멋진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제가 사대주의자라면 나와 동반입국 저 외국인들 뒤에 내가 모습을 나타냈겠지요. 그런데 기자 여러분도 보셨지만 제가 저 외국인들보다 먼저 모습을 나타냈지 않습니까? 이런 제가 과연 사대주의자일까요?"


 


 

윈스턴 처칠에 대하여는 '리더쉽'으로 포장되어 그의 좋은 면만 일반에게 알려졌는데 그의 악행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 저의 개인적인 악취미라면 악취미일 수도 있고, '위인을 신성시하는 한국의 이상한 풍토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좋은 면만 알려진 윈스턴 처칠은 과연 알려진대로 순진무고한 위인일까?'라는 의문을 떠올리면서 자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윈스턴 처칠은 상상외로 나쁜 짓을 많이 했더군요. 뭐, 정치인들의 속성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으니 나쁜 짓을 한 것 전부를 거론하면서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처칠이 자행한 가장 나쁜 짓 중 하나는 아마 여러분들도 결코 용납이 안되는 짓일겁니다. 히틀러의 우생학에 대하여 아실겁니다. 히틀러는 독일국민들을 우수하게 개량하기 위하여 '인종주의'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을 너머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유전자가 열등한 탓'이라며 학살했던 역사적 사실은 익히 아실겁니다.


 

그런데 이런 히틀러의 만행은 바로 윈스턴 처칠에게 배운 것입니다. 그 것은 윈스턴 처칠이 영국 내무부 장관 시절에 영국 내의 10만명에 달하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영국인 품종을 높이기 위하여' 강제로 불임시술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만일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우리가 지금 히틀러가 지배하는 지구촌에서 살고 있다면, 아마 대대적으로 알려져 우리는 히틀러를 비난하는 대신 처칠을 비난하고 있을겁니다.


 

'승자독식'이라는 정치용어를 감안하더라도 승자에게는 철저히 아량을 베풀고 패자에게는 죽일 놈 그 이상의 죽일 놈을 만드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라지만 처칠의 만행들을 너머 처칠의 리더쉽이 조명받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지, 인간이라면 가질 이중성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제가 이렇게 길게 서술한 이유는 바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언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상대로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당선되면서 만일, '이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 것'이 구현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 때를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 것'이 구현된다.....................라는 문장에서 '이 것'은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이고 또 '그 것'은 경제민주화를 구현된다는 것입니다. 


 

고 장준하 선생(이하 존칭 생략)의 사인에 대하여는 일단 유골이 바깥 공기를 쐰 이상 쉽게 부식되기 때문에 8개월 이내에 검사가 종료되어야 한다고 합니다.(손석희 시선집중 내용 인용) 8개월......... 참으로 그리고 아주 우연히도 정치적인 기간입니다. 왜나하면 8개월이라는 시간은 그 비판 대상이 될 박근혜 후보가 '마음만 먹으면' 대선 후로 미룰 여지가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선된 후에 '사과를 통하여' 사건을 좋게(?) 또는 대충 마무리지을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과거 DJ정권 떄와 노무현 정권 때의 조사 때는 시신을 직접 조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파주의 장마 때문에 묘가 침식되어 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신을 조사하니 '두개골에 망치 같은 둔기로 맞은듯 한( 또는 확실히 맞은) 두개골 함몰현상이 발견되었다'.


 


 

정말, 우리 민족은 참 잔인한 역사를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을까요? 하필이면, 장준하의 시신이 대선을 앞두고 검사가 되어 국민들이 선택을 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장준하의 사인이 대선 후에 밝혀지고 그리고 그 사인이 3공 시대의 통치권 차원에서 자행된 것이라면 또한 그 사건이 밝혀진 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정말 놀랄만한 경제민주화의 실적으로 인해 '나라가 잘사는게 아니라 국민이 잘사난 나라'가 구현된다면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요?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박정희의 과오가 어떻게 박근혜에게 연결지어지느냐고요? 그건 구시대의 연좌법, 우리가 폐기해야 할 법조항인데 그걸 들고 나와서 논리를 펼치다니 너무 정치적이 아니냐?


 

아니요? 연좌제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저는 그건 연좌제가 아니라 상속법을 적용한 결과입니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을 업고 경제계의 거물이 되었다면 장준하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아버지가 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특별히 이 사회에 (정치적으로)뚜렷하게 업적을 남긴 것이 없는데 단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 세력이 강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정치적 상속으로 봐야 합니다.


 

 상속법에서는 상속 대상자는 '재산을 상속할 때' '부채도 같이 상속한다'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건 강제 규정입니다. 만일, '부채를 상속받기 싫다면' 간단합니다. '재산 상속도 포기하면 됩니다'. 따라서 박근혜가 박정희의 (정치적)재산을 물려받았으니 (정치적)부채도 함께 져야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만일 말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장준하 의문사가 박정희와 직접적(또는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그리고 박근혜가 당선이 되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그녀가 말한 것처럼 '국가가 부자가 아니라 국민이 잘사는 나라가 구현되었다'면 위는 그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은 분명히, 516쿠테터의 정치적 데쟈뷰이니 말입니다.


 


 

'신문을 읽고 싶다'라는 저의 바랭처럼..... 선거일날 국가에서 보장해준 휴일날 늦잠을 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투표장에 가서......... 나는 3번을 찍고 싶은데 그만 실수로 2번을 찍은 경우에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라고 가볍게 넘길 그런 정치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정녕 꿈같은, 다른나라의 일일까요?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신문을 읽고 싶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투표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아직은 사치인가 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