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도발적으로 붙여봤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 글을 많이 읽어 본 사람에게는 이 제목이 도발적이라는 느낌을 줄 것 같다. 아님 말고...

 

도발적일 뿐 아니라 오해의 소지도 있다. 물론 이 글의 제목만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글을 끝까지 꼼꼼히 읽은 사람이 오해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언어와 관련한 적응론을 편 사람 중에는 Steven Pinker가 가장 유명한 것 같다. 그는 1994년에 출간한 『The Language Instinct』에서 적응론을 펼쳤다. 거의 20년이 되었다는 문제가 있지만 상당히 쉬운 이 책은 여전히 읽을 만한 것 같다. 한국에는 『언어 본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나는 그 책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언어 본능(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번역 비판 – 3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26

 

언어와 관련한 적응론에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Noam Chomsky가 가장 유명한 것 같다. ChomskyPinker는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논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Science>에 실린 논문이었다.

 

The Faculty of Language: What Is It, Who Has It, and How Did It Evolve?

Marc D. Hauser, Noam Chomsky, Tecumseh Fitch

SCIENCE VOL 29822 NOVEMBER 2002

http://www.chomsky.info/articles/20021122.pdf

 

The faculty of language: what’s special about it?

Steven Pinker, Ray Jackendoff

Cognition 95 (2005) 201–236

http://scholar.harvard.edu/pinker/files/2005_03_pinker_jackendoff.pdf

 

The evolution of the language faculty: Clarifications and implications

W. Tecumseh Fitch, Marc D. Hauser, Noam Chomsky

Cognition 97 (2005) 179–210

http://www.st-andrews.ac.uk/~wtsf/downloads/FitchHauserChomsky2005.pdf

 

The nature of the language faculty and its implications for evolution of language (Reply to Fitch, Hauser, and Chomsky)

Ray Jackendoff, Steven Pinker

Cognition 97 (2005) 211–22

http://pinker.wjh.harvard.edu/articles/papers/2005_09_Jackendoff_Pinker.pdf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언어는 적응이 아니다라는 말을 보고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Chomsky의 편을 든다고 오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전혀 아니다. 나는 대체로 Pinker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언어와 관련하여 적응론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언어는 적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내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Richard Dawkins의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어와는 전혀 상관 없는 맥락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말은 Dawkins와 내가 매우 존경하는 Edward Wilson의 책이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는 서평에 나온다. Dawkins도 그런 서평을 써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Do groups have phenotypes, which might qualify them to count as gene vehicles? Convincing examples are vanishingly hard to find. The classic promoter of group selection, the Scottish ecologist VC Wynne-Edwards, suggested that territoriality and dominance hierarchies (“peck orders”) might be group phenotypes. Territorial species are more spaced out, and species with peck orders show less overt aggression. But both phenomena are more parsimoniously treated as emergent manifestations of individual phenotypes, and it is individual phenotypes that are directly influenced by genes. You may choose to treat a dominance hierarchy as a group phenotype if you insist, but it is better seen as emerging from each hen, say, being genetically programmed to learn which other hens she can beat in a fight and which normally beat her.

(The descent of Edward Wilson

by Richard Dawkins / MAY 24, 2012

http://www.prospectmagazine.co.uk/science/edward-wilson-social-conquest-earth-evolutionary-errors-origin-species)

 

Dawkins에 따르면 지배 서열 자체는 적응이 아니다. 대신 닭의 뇌 속에 있는, 지배 서열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적응이다. 그 심리 기제는 선천적인 닭의 본성이며 Dawkins의 표현에 따르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다.

 

나는 유전자와 적응(심리 기제나 신체 기관)의 관계를 프로그래밍에 비유하는 것을 Dawkins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문제까지 따질 수는 없다.

 

Dawkins가 “적응”과 “적응들의 상호작용이 집단 수준에서 발현된 현상”을 구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닭의 뇌 속에는 지배 서열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있으며 이것은 적응이다. 그리고 그런 심리 기제를 뇌 속에 가지고 있는 닭들이 상호작용을 하여 지배 서열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지배 서열은 적응이 아니다.

 

 

 

이런 Dawkins의 생각을 언어에 적용해 보자. 지배 서열 자체가 적응이 아니듯이 언어 자체는 적응이 아니다. 언어와 관련된 심리 기제들이 적응이다. 지배 서열과 관련된 닭의 심리 기제들이 상호작용하여 즉 여러 닭들이 상호작용하여 지배 서열을 만들어내듯이 언어와 관련된 사람의 심리 기제들이 상호작용하여 즉 여러 사람들이 상호작용하여 한국어나 영어 같은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내가 “언어는 적응이 아니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문장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위에 인용한 Dawkins의 문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덜 직접적인 원인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리고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언어는 적응이다” 또는 “언어는 적응이 아니다”라는 말을 흔히 하기 때문이다.

 

내가 제목에서 쓴 “언어는 적응이 아니다”라는 말 만큼이나 진화 심리학자들이 흔히 하는 “언어는 적응이다”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람들이 내 글의 제목을 보고 “이덕하는 언어와 관련하여 적응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오해할 수 있다면 “언어는 적응이다”라는 진화 심리학자의 말을 보고 “그 진화 심리학자는 언어와 관련된 심리 기제가 아니라 언어 자체를 적응이라고 생각한다(또는, 그 진화 심리학자는 언어와 관련된 심리 기제뿐 아니라 언어 자체도 적응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진화 심리학자는 “언어 자체”와 “언어와 관련된 심리 기제”를 구분할 생각도 못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강간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강간과 관련하여 적응 가설이 부산물 가설보다 더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적응 가설들 중 적어도 일부가 나중이 잘 입증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1. 강간과 관련된 도덕적 판단 기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강간은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선천적 인간 본성이다.

 

2. 여자는 강간을 당할 때 괴로워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3. 남자에게는 강간 여부를 결정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 기제가 있다.

 

4. 남자가 강간하기로 결정할 때 더 적응적으로 강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제들이 있다. 예컨대 임신 확률을 높이도록 강간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사정하도록 하는 기제, 또는 들킬 확률을 낮추도록 강간할 때 평소보다 더 빨리 사정하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목에 “강간은 적응이 아니다”라고 썼다.

 

논의의 편의상 남자에게 강간-여부-결정-기제가 진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제는 여러 입력 값들을 받아들여 “강간하자” 또는 “강간하지 말자”와 같은 출력 값을 내놓는다. 강간이라는 행동은 이런 기제의 출력 값과 여자와의 상호작용의 한 가지 결과다(만약 여자가 무술 고수라면 “강간 미수 및 남자의 초주검”이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강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이런 기제의 출력 값이다.

 

닭의 지배 서열이 적응이 아니고, 언어 자체가 적응 아니듯이 강간이라는 행동은 적응이 아니다. 지배 서열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적응이며, 언어와 관련된 심리 기제가 적응이듯이 강간과 관련된 심리 기제가 적응이다(물론 그런 것들이 적응이 아님이 실증적으로 밝혀질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떤 기제의 출력 값 자체 또는 수 많은 기제들이 상호작용하여 집단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 자체는 적응이 아닌 경우가 많다.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심리 기제의 수준”과 “행동의 수준 및 집단적 현상의 수준”을 잘 구분하지 않는다. 반면 John ToobyLeda Cosmides를 중심으로 한 진화 심리학(좁은 의미의 진화 심리학)에서는 심리 기제의 수준에 주목하여 그것을 행동의 수준과 구분한다. 이것이 내가 Wilson을 매우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점에서는 Wilson에 반대하고 Tooby & Cosmides의 편을 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덕하

2012-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