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로 윌슨의 통섭론이 조악한? 환원주의인지 여부를 판단들 해보세요.


윌슨의 통섭론에 대한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술과 비판이


레슬리 스티븐스 외 지음,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 가지 이론> (갈라파고스) 의


10 장 말미에 들어 있습니다.



위 둘로는 판단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 영어 글 읽기에 능한 분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서 수많은 관련 영문 아티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http://climateandcapitalism.com/2012/08/01/is-human-behavior-controlled-by-our-genes-richard-levins-reviews-the-social-conquest-of-earth/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한 저명 생물학자의 비판] 


http://www.homodiscens.com/home/areas/disciplines_gardner/consilience/index.htm

[마르크스주의에 친화적이었던 굴드의 비판]


http://www.lrb.co.uk/v20/n21/jerry-fodor/look

[인지과학의 거두들 중 하나인 제리 포더의 비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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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G. Barbour, Religion and Science (1997) 10장 인간본성 



1절 생물학과 인간본성


1) 인류의 기원


2) 사회생물학과 문화적 진화


지난 20년간 사회생물학, 비인간 종과 인간 종 양자 모두에서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발전했다. 한 흥미 있는 사례는 이타적 행동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진화가 적자생존이라면, 한 유기체가 거듭 그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는가?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들은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 자신을 희생하곤 한다. 일개미들은 무리를 위해 일한다. 그들은 불임이기에 자손을 낳을 수 없다. 윌슨(Edward O. Wilson)과 다른 이들은 그러한 행동은 한 개체가 가질 자손들의 수는 감소시키지만 많은 동일 유전자들을 갖는 친족의 생존은 증대시킴을 보였다. 내가 내 형제나 자매와 내 유전자들의 절반을 공유한다면, 내 자신의 생명은 위험에 빠지더라도 그들의 미래의 번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유전자들을 영속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6 도킨스 (Richard Dawkins)는 모든 분명한 이타주의는 유전자적 생존에 대한 그것의 공헌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자신의 책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로 지었다.7

  

사회 생물학자들이 인용하는 또 다른 예는 근친성관계에 대한 보편적 타부이다. 우리는 오늘날 동종번식은 해로운 열성 유전자들과 정신적 및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자손들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친성관계를 금지하는 타부를 가진 집단들은 유전적으로 더 강하며 그러한 타부를 갖지 않은 집단들에 비해 선택적 이점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친족과의 성관계가 해로운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해도 그렇다). 다른 예들은 사회에서의 성역할의 차이의 토대를 다룬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많은 종들에서 수컷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인용하며 영장류 사회를 수컷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본다. 연구는 공격성이 남성 호르몬의 수준과 관계 있으며 호르몬의 수준을 변화시키는 것에 의해 증대되거나 감소될 수 있음을 보였다. 


비판자들은 과학자들이 통상 대안적 가설들을 검토하는 반면, 윌슨은 인류학자들이 이 사회적 현상들 다수에 대해 제출해 온 문화적 설명들을 언급조차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인류학자들은 소수의 문화만이 윌슨에 의해 안출된 유전적 친족 계수들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8 그는 현상태를 정당화하는 것에 문을 열어줄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인간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가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9 윌슨은 인간 행동의 유연성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는 진정한 자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유전적으로 계획된 다양한 검열자들과 동기자들이 대뇌 연변계의 감정작용에서 작동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들 가운데서 우리는 선호할 것들과 억제할 것들 또는 방향을 변경시킬 것들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들은 우리의 가치체계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 가치체계들 자체는 유전자의 통제 아래 있다. 생물학적 지식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정서적 지침들 가운데서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입안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물적 속성들에 토대한 자동적 통제에서 생물학적 지식에 토대한 정밀 조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0


윌슨의 저술을 관류하고 있는 환원주의는 여기서 명백하다. 그는 유전학과 생물학이 인간 생명의 모든 면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음은 뇌의 신경기구의 부대현상으로 정확하게 설명될 것이다.”11 윌슨은 내가 충돌 모델이라 불렀던 것을 주장한다: 종교와 윤리 양자 모두 생물학적 지식으로 설명되고 결국에는 대체될 것이다: “도그마적인 세속 이데올로기들을 포함해, 종교가 뇌의 진화의 산물로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도덕의 한 외적 원천으로서의 그것의 위력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12 내게는, 과학 또한 분명히 “뇌의 진화의 산물” 임에도, 윌슨이 그 진화론적 기원에 의해 과학이 마찬가지로 불신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일관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에 도덕은 유전자들 속에 암호화되어 있는 정서의 표현이었다고 말한다. “도덕의 유일하게 입증된 기능은 유전자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과학이 윤리의 기반 - 이 말로 나는 자연법칙들의 물질적 토대를 의미한다 - 을 탐색할 수 있다.”13 “우리의 생물적 본성에 대한 경험적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진보의 경합하는 기준들 사이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14 


윌슨은 모든 아카데미 분과들을 생물학의 분지들로 만드는 철저한 인식론적 환원주의를 포용한다: “인문학만이 아니라 사회학과 다른 사회과학들도 근대적 종합에 포괄되어야 할 생물학의 최종 분지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과한 것이 아닐 것이다.”15 그는 상세히 시험될 수 있는 가설들로부터 어떻게 한 특정한 사회적 행동이 “선택될 수 있었는가”에 관한 뒷받침 없는 주장들로,  모든 인간 경험에 관한 광범한 일반화들로 이동한다. 그의 주장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물론의 형이상학과 그가 때때로 “과학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의 설명들 모두는 오직 한 수준 - 유전자들의 작용에만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한 특질의


역사적 기원들이나 유전적 선행조건들은 그것의 현재 상태에 대한 최종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윌슨은 “유전자들은 문화의 고삐를 쥐고 있다”16 고 진술한다. 그 고삐는 얼마나 긴가? 문화 또한 유전자들의 효과를제한하고 방향 변경시키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는 그의 은유를 뒤집어 오늘날은 문화가 [유전자들의] 고삐를 쥐고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를 비교해 보자. 나는 전자는 오늘날 [과거]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양자 사이에는 유사점도 있지만 중요한 차이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문화적 혁신이 가변성의 원천으로서의 변이와 유전자 재조합을 대체한다. 그러한 혁신들은 일정하게 의도적이며 방향성을 갖는다. 그것들은 분명 무차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관념들, 제도들, 행동형태들은 종종 사회적 문제들이나 위기들에 대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반응들이다. 인간 역사에서의 사건들의 일회성과 예측불가능성은 여기서 자명하다. 언어적 의미들과 관념들과 행위주체들의 이유들은 우리가 6장에서 본 바와 같이 인간 역사의 특징적 모습이다. 우리는 특정한 문화적 역사들의 산물이다.


다음으로, 관념들이 경합하는 경우, 선택은 사회적 경험과 강화를 통해서 일어난다. 가장 유용한 관념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존속되지만 성공의 사회적 판단에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여기서 선택은 생물학적 선택보다덜 거친데,  관념들은 그것들을 주장하는 개인들의 죽음 없이도 거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정보의 전달은 유전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억, 언어, 전통, 교육, 사회제도들을 통해 일어난다. 이 단계들 각각에서,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에서보다 더 신속하고 더 의도적이다. 주요 변화들은 몇 세대 안에서 또는 심지어 한 세대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다른 한편, 낡은 아이디어들은 다시 등장해 부활할 수 있으므로 멸종한 종들의 유전자들처럼 영원히 소실되지 않는다. 


과학은, 다른 문화적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적 의미에서 진화의 산물이다. 그것의 방법들은 오늘날 영장류에서 보이는 단순한 형태의 문제해결 능력과 귀납적 및 연역적 추론의 세련화이다. 그러한 지적 능력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생존에 기여했으며 선택은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선호하게 했다.17 그러나 과학은 오늘날 생물학적 진화의 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진화론적 인식론의 몇몇 최근 주창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툴민(Stephen Toulmin)은 과학 공동체에서 다양한 이론들이 인정받기 위해 경합하며, 가장 성공한 이론들이 선택되고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학적 요인들과 형이상학적 가정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변이와 선택의 큰 윤곽은 진화의 역사에서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한다.18


칼 포퍼(Karl Popper) 또한 과학과 진화 사이에 평행선을 그었다. 과학자들은 다수의 가설들을 정식화하며 적합하지 않은 것들을 비폭력적으로 배제하면서 경험적 증거에 의해 그것들을 논박하거나 반증하려고 시도한다.가설들을 정식화하는 데는 아무런 논리도 없지만 그것들을 시험하고 제거하는 데는 논리가 있다.19 도날드 캠벨(Donald Cpmpbell)은 과학공동체보다는 개별 과학자를 주목한다. 한 이론이 공개적으로 제출되기 전에 무작위적인 시행착오를 통한 아이디어들의 탐구와 선별이 과학자의 마음속에서 행해진다.20 나는 과학과 진화 사이의 평행선은 제한되어 있는 편이라고 응답할 것이다. 과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에 대한 탐구는 무작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한 이론들의 수는 무작위적으로 시험하기에는 너무 많다. 페니실린의 발견처럼 일부 경험적 발견들은 우연적이지만 이론들의 정식화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의도된 것이고 지향된 것이다. 나는 앞에서 그것은 종종 독창적인 유비나 모델에 토대한다고 주장했었다. 과학의 목표는 아이디어들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 사이의 차이들의 그것들의 유사성보다 더 중요하다.    



3) 마음의 지위



(1) 이원론


(2) 유물론


...


부수현상론은 유물론의 한 변형인데, 그것은 마음 현상은 존재하지만 인과적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림자가 움직이는 대상들에 영향을 미침 없이 그것들에 동반되듯이, 마음 성질들은 신경 사건들에 영향을미침 없이 신경 사건들에 동반된다. 인과적 연결은 물리 사건들로부터 마음 사건들 (또는 다른 물리 사건들)로 일방적으로만 존재하며 결코 마음 사건들로부터 물리 사건들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세계는 하나의 자율적 체계로 이해되며 그것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사건들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29 그러나 의식이 생물학적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의식이 전개될 수 있었을까? 의식이 생존과 무관하다면 어떻게 의식이 선택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관념이나 동기 같은 마음 개념들(mental concepts) 사이의 관계는 오늘날 인간의 행동 대부분을 이해하는데 신경 활동의 개념들보다 더 유용하지 않은가? 



(3) 이중국면 이론


(4) 다수준 이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