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를 만나러 20일 모스크바로 떠난다. 2005년도에 라쟌의 가브리노 마을에서 만났던 니나,

꼭 7년만의 해후가 된다. 나는 그때 가브리노를 떠날 때 니나와 약속했었다. 반드시 가브리노로

다시 돌아와 니나를 만나겠다고. 니나는 내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지만 암튼 무척 즐거워

했다. 헤어질 때 우리는 악수를 했는데 니나가 갑자기 내 손을 확 뿌리치며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남자 손이 이렇게 고운가 하고"

평생 밭농사를 일구어온 니나 손은 머슴 손처럼 투박하고 거칠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꾸러워

한 것은 아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살아온 내력이 다른데 어쩌랴.

니나는 다시 내 손을 꼭 잡고 자기가 기다릴테니 반드시 다시 놀러오라고 당부했다.

다스비다니아!

러시아 시골의 순박한 할머니 니나를 뒤로하고 나와 아나톨리는 모스크바로 향했다. 내가

니나가 뭘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아나톨리는 시계, 특히 탁상시계나 벽시계 같은 걸 좋아한

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그런 탁상시계 같은 건 흔하고 값도 싸다. 나는 다음에 올 때 탁상시계

를 몇개라도 사가지고 오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생각했던것처럼 러시아 여행이 빨리 이뤄지지는 않았다. 엄청난 삶의 굴곡을 거쳤고

7년만에 겨우겨우 러시아행 항공 티켙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브리노에는 아나톨리 김의 다차가 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니나네 집에 자주

눌러갔다.니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은 계란을 소쿠리에 가득 담아 내오곤 했다. 집단사육이

아니고 밭이나 들에 놓아 기르는 닭의 계란은 우리가 어릴 때 먹던 계란처럼 맛이 일품이었

다. 나는 한꺼번에 다섯개도 먹어치웠다. 그런 나를 보며 니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니나 남편은 제대후 병으로 일찍 타계했고 자손이 없는 니나는 남동생 발로자 내외와 함께

밭을 일구며 산다. 그런데 발로자가 술꾼이라 늘 말썽을 일으킨다.그게 니나의 유일한 고통이

었다.

 

내가 그곳을 다녀온 뒤 삼년째엔가 아나톨리가 서울에 와서 슬픈 소식을 전했다. 니나가

위암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자기가 도울려고 애썼지만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니나는 북망산에 묻혔어"

아나톨리가 쓸쓸하게 말했다. 나는 니나 유택으로 성묘를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한 뒤

또 몇해가 지나고서야 이제 겨우 니나를 찾아가게 되었다.

소주 한병을 차고 아나톨리의 안내를 받아 니나의 유택을 찾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버섯을

따러 다니며 그 북망산을 몇차례 지나다닌 경험도 있다.

니나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치 니나가 살아있어서 나를 반겨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 소개된 라트비아 태생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칼 다비도프(1838-1889)의 <무언의 로망스>

는 신선한 전원풍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곡으로 내가 니나와의 해후를 생각하며 찾아낸 소품이다.

 다비도프는 모스크바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한창 때 '첼로의 왕자"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로 첼로음악과 각별한 관련이 있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 내가 페테르부르그의 네브스키 대로에 있는 악보점에서 이 곡의 악보를 구입

했는데 곡이 마음에 들어 동명의 음악칼럼집을 낸바도 있다. 이 곡이 내가 니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주제곡이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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