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하고, 문재인은 박정희가 독도를 폭파시켜버리겠다고 말했다면서 박정희는 독도 수호 의지가 없었다고 비난하고, 박종우는 올림픽 한일전에서 관중석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피켓을 건네받고 세레머니를 해 동메달 박탈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김미화는 IOC와 대한체육회를 탓하면서 박종우의 기를 죽이지 말라고 설레발 치고 있고, 네티즌들과 여론은 박종우 영웅 만들기에 나서고 있죠. 대선 때문인지 한겨레 등 자칭 진보언론은 “독도밀약”을 꺼내들며 박정희의 독도 수호 의지를 의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갑자기 독도가 국내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독도를 둘러싼 개인과 (정치)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국민들을 혼동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박종우야 어려서 철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독도문제를 정치쟁점화하는 것이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문재인, 독도 방문으로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개인적 사욕으로 한일간 외교 경색, 한류에 찬물 끼얹기, 일본 관광객 감소를 자초한 이명박, 그리고 박종우를 옹호한답시고 나대지만 오히려 박종우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김미화, 독도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고는 쥐꼬리만한 관심도 없으면서 거저 국민들의 반일감정에만 의존하여 기사를 써대는 언론,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이슈도 쟁점화하려는 야권과 진보진영, 일본 극우와 쌈쌍둥이와 같은 형태로 대응하는 국내 보수파들, 냉정하고 객관적인 접근보다는 즉흥적 감정에 휩싸여 부화뇌동하는 네티즌들은 정말 보아 주기 힘듭니다. 이들은 독도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벌어진 독도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이들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독도가 왜 분쟁지역이 되었는지, 일본은 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지, 과연 독도는 우리 땅인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제가 취득한 독도와 관련된 사실들을 주제넘게 기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할 역사적 사실, 문헌적 자료가 1906년까지는 우리는 전혀 없는 반면, 일본은 반대로 수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독도를 60년 가까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과 1947년의 연합국포고령에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한 사실이 있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명분은 있습니다.

제가 독도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는 너무 fact를 무시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 객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대로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국제 무대에서 외면 받고 자칫 망신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부터 우리 식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고 허무한지 살펴보겠습니다.


1.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의 노래 가사 중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나오는 부분만 발췌해 봅니다.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이라는 가사는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13년조, 권44 열전 이사부전과 <삼국유사> 권1 기이제 지철로왕조에 나오는 것으로 지증왕 13년(512년) 6월 신라 하슬라주(何瑟羅州: 현재의 강릉)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 정벌했다는 내용입니다.『삼국사기』에 우산국은 명주(溟州 正東)의 해도(海島)로 울릉도(鬱陵島)라 불리기도 했다고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같은 기사에 ‘于陵島(今作羽陵)’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이사부가 울릉도(우산국)를 정벌했지 독도를 정벌했거나 신라의 관리하에 두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이사부는 독도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보여지고, 그리고 당시에는 독도를 관심에 둘 이유도 없었겠지요. 이런 판국인데 삼국사기의 이 내용을 두고 우산이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가 됩니다. 어떻게 섬의 크기도 훨씬 크고 사람이 많이 사는 큰 섬인 울릉도를 두고 조그만 한 돌 섬에 사람도 살지 않는 섬 이름을 삼아 나라의 이름인 우산국이라 지었겠습니까?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우산국(도)은 울릉도를 이르는 말이지 독도를 지칭할 수가 없지요.


다음은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에 무어라고 나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해석 : 우산과 무릉이 현의 정 동쪽 동해에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으며,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역시 독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우산이 독도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우산과 울릉은 거리가 멀지 않다고 기술하고 있어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가 200리나 되는 먼 거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산을 독도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지요. 동해안에서 울릉도까지 거리가 300리인데 200리를 멀지 않은 거리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산은 울릉도 동쪽 2.8km에 있는 지금의 竹島라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은 울릉도를 동해안에서 보면 보인다는 뜻이지,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고 한 말이 아니지요. 기록자의 기준(울릉도에 살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내륙의 관점에서 기록)으로 해석한다면 저렇게 해석할 수가 없지요. 우산국이라 칭하고 울릉도라 부른 것은 우산국이 울릉도이고 무릉은 울릉도 부근에 있는 부속 섬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지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으며, 애초에 독도 존재 자체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역설적이게도 신라장군 이사부가 이 노래를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군요. 물론 전두환 정권이 이 노래의 가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에게 되치기 당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고 하여 금지시켰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독도 논쟁에서 우리에게 절대 불리한 노래임은 사실입니다.


2. 독도의 “이사부 길”, “안용복 길”은 역사 왜곡이다.

우리 정부는 독도에 “이사부 길“과 ”안용복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사부에 대해서는 앞서 독도와 관련 없는 인물임을 알려드렸고, 우리가 독도의 지킴이로서 역사적 인물로 알고 있는 안용복이 독도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한국), 에도(일본)시대의 울릉도 분쟁은 조선 어민이 울릉도에 넘어와 일본측이 문제 제기를 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상당히 다르지요. 지금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당시에 울릉도를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분쟁을 했다니 믿기지 않지요? 그러나 이건 사실입니다. 당시 조선은 울릉도의 空島化, 無人化 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 울릉도로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고 울릉도가 멀고 험해 별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조선의 정책 때문에 일본인(倭)이 울릉도로 들어와 살고 고기도 잡았습니다. 숙종 때 안용복이 조선의 울릉도 공도화 조치를 위반하고 울릉도에 密漁를 하다가 일본인에게 붙잡히게 되고 이를 일본이 조선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안용복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 사과하고 안용복을 죄인으로 다루고 처벌까지 하였지요. 그러다 조선의 정책이 바뀌어 울릉도가 동해안에서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울릉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조선은 울릉도 무인화 정책을 유지합니다. 이런 사이 안용복은 가벼운 처벌로 풀려나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로 밀어를 하게 되고 역시 일본에 붙잡히게 됩니다. 대마도를 통해 안용복을 인수받은 조선은 안용복을 취조하게 되는데, 이 때 안용복은 자기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받고 왔다고 진술합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마츠시마(松島)를 조선 땅으로 인정 받았다고 했는데 당시 마츠시마는 일본에서 독도를 칭하고 있어 현재 우리는 이를 들어 일본이 독도를 양허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우리의 주장도 신빙성이 부족합니다. 안용복의 진술내용은 조선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을 더 상세히 들여다 보면 이 중에 안용복이 마츠시마(松島)에 살고 있다는 일본인과 대화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안용복이 마츠시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울릉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마츠시마를 독도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더 곤란해 지게 됩니다. 안용복은 마츠시마에 산다는 일본인과 대화했다고 했는데 마츠시마가 독도라고 하면 일본인이 이미 그 때(숙종)에 독도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투는데 일본인이 숙종 때 그 곳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앞서 살폈듯이 안용복 사건은 안용복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만든 사건이 아니라 안용복이 조선 법령을 위반하고 울릉도에서 밀어를 하다 일본에 잡혀가게 되고 조선-에도 막부간에 외교분쟁으로 비화한 사건일 뿐이며, 조선은 안용복을 죄인 취급하였던 사건입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두고 볼 때 독도에 “안용복 길”을 만든 것은 낯 뜨거운 일이지요.

안용복 사건을 보면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기 땅이라 우길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울릉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100년 이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시비를 걸 수 없을 것입니다.


3. 울릉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고종 때이다

앞서 조선이 울릉도의 공도화 정책을 실시했다고 말씀드렸고 그 사이 일본(倭)인이 들어와 살면서 고기잡이를 하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울릉도에 대거 살고 있는데 언제 다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일본 막부는 조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울릉도에 조업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막부 시절에는 일본판 안용복 사건이 있기도 하였죠. 울릉도 도해 허가를 받지 않고 울릉도까지 조업을 하다 막부에 발각되어 재판 받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이 울릉도 공동화 정책으로 울릉도 밀어를 한 안용복을 처벌했듯이 일본 막부도 조선과 관계를 중시하여 울릉도 도해를 금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를 어기고 도해한 사람을 처벌한 기록이 있는데, 이 사람이 마츠시마(독도, 당시 일본은 독도를 마츠시마로, 울릉도를 다께시마로 칭했습니다) 도해 허가를 받고는 다께시마(울릉도)까지 도해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 때 이미 독도(마츠시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정확히 묘사한 지도도 있었으며, 독도에서 강치(물개) 포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다시 울릉도 문제로 돌아와서, 일본은 막부시절을 마감하고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인이 울릉도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에 조선(고종)은 더 이상 울릉도를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공도화 정책을 폐지하고 울릉도에 사람을 이주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울릉도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울릉도 사람들은 80%가 전라도, 20%가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며, 그 역사는 겨우 100년을 조금 넘긴 상태입니다.


4. 우리는 1906년까지 독도에 관한 기록이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측 자료에는 독도에 관한 기록(행정구역에 편입했다거나 독도에서 조업을 했다거나 독도를 알고 있었다는 기록)이 1906년까지 전혀 없으며, 고지도 뿐아니라 한일합병이 될 때까지의 근대까지도 우리가 만든 지도에는 독도가 나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우산도가 독도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기록이나 지도만 가득할 뿐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우산도를 독도라고 박박 우기고 있지요. 한심한 일입니다.


1)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나 죽도라는 기록들

조선왕조실록 홈피에 들어가 “우산 무릉”으로 검색하면 우산과 무릉은 울릉도나 죽도를 의미하지 독도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수한 기록들이 올라옵니다. 단 한건도 독도를 의미할만한 기록들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dntks+anfmd&keyword=dntks+anfmd


2) 우리나라 지도에 나타난 울릉도, 우산도(죽도) - 독도를 나타낸 지도는 없다

우리나라의 고지도는 지도라고 할만 것이 없으니 독도가 표기된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고, 19세기 지도들에도 독도가 표시된 것은 없으며, 우산도가 울릉도 바로 옆의 죽도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보입니다.

*19세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history&no=29bcc427b78177a16fb3dab004c86b6f5737608fe2a8730c422325924f70136ba6527e1a9ba91deb86abfc456c17467137115a555b65a416554829dea36056&f_no=29b9d422e19c32b669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보입니다. 지금의 죽도이지요.


*19세기 '전도'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history&no=29bcc427b78177a16fb3dab004c86b6f5737608fe2a8730c422325924f70136ba6527e1a9ba91deb86abfc456c45407963d9cca3b88cbc62f014ea&f_no=7ff3da36e2

역시 지금의 죽도가 우산도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조선여지도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history&no=29bcc427b78177a16fb3dab004c86b6f5737608fe2a8730c422325924f70136ba6527e1a9ba91deb86abfc456c15452c601380f741cc0806b9ff6a&f_no=7ef3da36e2

죽도는 표기되어 있지만 독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외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history&no=29bcc427b78177a16fb3dab004c86b6f5737608fe2a8730c422325924f70136ba6527e1a9ba91deb86abfc456c14177e86cf1547e58e151f830735&f_no=7ef3da36e2

모두 죽도를 우산으로 표시해 놓았죠.


*19세기 팔도전도 : 심지어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나타나 있다..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history&no=29bcc427b78177a16fb3dab004c86b6f5737608fe2a8730c422325924f70136ba6527e1a9ba91deb86abfc456c154a7b659b92d06a229eb53d3b44d277f1

3) 독도연표에는 독도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독도의 이력을 만들어 보여주는 독도연표에는 정작 독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고 울릉도와 죽도와 관련된 이야기뿐입니다. 제가 링크하는 독도연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고 1900년 이전의 자료에서 독도와 관련되는 기록이 있는지 찾아 보십시오. 불행하게도 죄다 울릉도, 죽도(우산도) 이야기만 있을 뿐 독도와 관련된 기록은 없습니다. (독도연표1부터 독도연표6까지 모두 읽어 보세요)

<독도연표> http://durtkrnltls.blog.me/110136915330


5. 일본측에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자료가 너무 많다

우리가 독도와 관련된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한 반면에 일본은 자료가 너무 많습니다. 자료가 많다보니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명기된 것도 나오고 우리가 역으로 공격할 소재가 많이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우리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의 8할은 일본에서 나온 자료들입니다.

일본측 자료에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 일본이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인정했다는 것이 다수 나오기는 합니다만, 이것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우리 측 자료에도 독도가 우리 영역으로 표시되지 않은 자료가 다수 있기 때문에 무리가 따릅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할 자료가 있지만,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역사적 근거가 1900년까지는 전무하니 이런 역사적, 문헌적 자료로 일본측과 싸우는 것은 백전백패입니다.

* <1947년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과 2007년 교과서>

http://the3rdman.egloos.com/4246903

일본은 1600년대에 이미 독도(다께시마, 마츠시마)를 동도와 서도를 실제와 비슷하게 묘사한 지도를 갖고 있었고, 강치(물개) 포획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독도를 지나 울릉도에 살면서 어업을 하다가 안용복을 잡아가 조선-에도간의 외교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측(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일본측의 기록물과 지도들은 무수히 많아 여기에 올리는 것을 생략하고, 일본측이 주장하는 바를 아래에 링크하오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 링크된 글을 보면 일본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주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국제법상 시마네현이 독도를 편입한 것이 적법하다는 일본측의 주장>

http://gall.dcinside.com/list.php?id=dokdo&no=6620&page=1&bbs=




6.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1906년 일본의 관측선이 울릉도로 들어와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관측을 하겠다는 일본 행위에 대해 당시 울도(울릉)군수인 심흥택이 조정으로 보낸 보고 내용과 그리고 의정부의 지시내용입니다. 여기에 처음으로 독도라는 명칭이 나오고 독도를 우리가 관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1906년 3월 28일 울도(울릉도) 군수 심흥택은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관민 조사단으로부터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강원도 관찰사와 내부(內部 :현재의 행정안전부에 해당)에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심흥택 군수의 보고를 받은 강원도 관찰사서리 춘천군수 이명래는 1906년 4월 29일 의정부에 이를 보고하였습니다.

 

번역문_ 보고서 호외 울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내에, 본군(本郡 : 울도군) 소속 독도가 먼 바다 100여리 쯤에 있더니, 이달 4일(3월 28일) 진시(辰時 : 오전 7-9시)경 배 1척이 울도군 도동포(道洞浦)로 와서 정박하였는데, 일본 관리 일행이 군청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독도가 이제 일본 영토가 되어 시찰차 섬을 방문하였다”고 하고, .. 먼저 가구 수, 인구, 토지 및 생산량을 묻고 다음으로 인원 및 경비가 얼마인지를 물으며 제반 사무를 조사할 양으로 기록하고 가기에 이에 보고하오니 형편을 살펴 아시기 바란다고 하는 까닭에 이와 같이 보고하오니 살펴 아시기 바랍니다.

 

원   문_報告書號外 欝島郡守 沈興澤報告書內開에 本郡所屬獨島가 在於外洋百餘里 外 이삽더니 本月 初四日 辰時量에 輪船一雙이 來泊于郡內道洞浦 而日本官人 一行에 到于官舍야 自云 獨島가 今爲日本領地 故로 視察次 來到이다 이온바... 先問戶總 ∙ 人口 ∙ 土地 ∙ 生産 多少고 且問 人員 及經費 幾許 諸般事務을 以調査樣으로 錄去이기 玆報告오니 照亮시믈 伏望等 因으로 准此 報告오니 照亮시믈 伏望

이에 대해 대한제국의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는 같은 해 5월 20일 아래와 같은 지시를 내렸습니다(「지령 제3호」).

 

번역문_ 지령 제3호 보내온 보고는 읽어 알고,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으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다시 조사 보고할 일

 

원   문_指令第三號 來報 閱悉이고 獨島領地之說은 全屬無根니 該島 形便과 日人 如何 行動을 更爲査報 事

 

 출처 : 외교통상부 독도 : http://dokdo.mofat.go.kr/page.do?page=0020109


또 하나의 확실한 근거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 사령부가 독도는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한다는 SCAPIN 제677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를 통해 독도를 일본의 통치∙행정범위로부터 제외하였습니다.

동 각서는 제3항에서 일본이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은 “혼슈(本州), 큐슈(九州), 홋카이도(北海島), 시코쿠(四國) 등 4개 주요 도서와 약 1천 곳의 인접 소도서”라고 하고, 일본의 영역에서 “울릉도, 리앙쿠르섬(독도)과 제주도는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SCAPIN 제677호(1946.1.29) 일본으로부터 일정 주변지역의 통치 및 행정상의 분리(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에 관한 각서

 3. For the purpose of this directive, Japan is defined to include…excluding (a) Utsuryo (Ullung)
     island, Liancourt Rocks and Quelpart (Saishu or Cheju) island...

 

또한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1033호도 일본의 선박 및 국민이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SCAPIN 제1033호(1946.6.22) 일본의 어업 및 포경업 허가구역(Area Authorized for Japanese Fishing and Whaling)에 관한 각서

 3. (b) Japanese vessels or personnel thereof will not approach closer than twelve (12) miles to
     Takeshima(37°15′ North Latitude, 131°53′ East Longitude) nor have any contact with said island.

 

출처 : 외교통상부 독도 : http://dokdo.mofat.go.kr/page.do?page=0020112


* SCAPIN677호를 가지고 독도가 우리 영토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SCAPIN677호의 부속6항에 “이것은 최종적인 영토 규정은 아니다”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일본측은 이 단서 조항으로 SCAPIN677호를 가지고 독도를 한국 땅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7. 독도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 방향

많은 문헌적, 역사적 사실들에서는 우리측 자료가 워낙 없기 때문에 불리하기는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고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일본의 주장을 무시하고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적 자료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두고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고가 될지 모르지만 결정적 근거로 내세우기 힘듭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 영유권을 주장한다고 하면, 유럽과 중동, 북 아프리카가 과거 로마제국의 영토였음으로 이탈리아는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우리도 요동이 옛 고구려 땅이었으니 중국에게 요동을 반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겠지요.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법이 통용될 수 있는 근거로 무주지에 대한 행정권 편입 선언과 국제적 공인, 그리고 실효적 지배입니다. 그래서 일본도 1905년 시네마현이 독도(다께시마)를 행정구역에 편입하고 일본 영토임을 선언한 사실을 가장 강조합니다.

우리도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에 나타난 울릉도 관할범위에 석도가 들어 있음(http://dokdo.mofat.go.kr/page.do?page=0020108)을 내세우고, 이 석도가 지금의 독도이며, 이에 근거하여 1906년 심흥택이 일본 관측선의 울릉도 방문에 대해 보고한 내용에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명시하는 문구를 강조해야 합니다. 허울뿐인 대한제국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근대국가의 모습을 보였고 대한제국 칙령은 근대 법에 준하는 것으로 국제법의 적용 대상임을 주장해야 합니다. 여기에 현재 60여년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되, 가능한 독도가 쟁점화되어 분쟁지역으로 거론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정에만 매몰되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억지 주장을 하거나 근거도 되지 않는 자료를 내밀어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8. 역대 정권의 독도문제 대응 방법과 이명박의 독도 방문

1) 이승만 정권

이승만은 1952년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독도를 우리 영토라고 선언합니다. 그 근거는 1945년 연합국 사령부의 SCAPIN제677호가 될 것입니다. 이승만은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독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일본 어선과 어부들을 나포하고 억류합니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사망도 다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승만이 일본 어선을 나포한 것은 향후 일본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일부러 그랬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승만의 이런 행위의 도덕성을 차치한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승만은 영토 확장에 큰 공을 세운 것이죠.

2) 박정희 정권

박정희 정권은 한일조약을 체결하고 보상금을 받아 경제개발에 투여할 입장이라 독도문제가 한일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것을 꺼려했을 것입니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한일협상에서 거론하였고, 박정희는 독도문제를 한일협상에 끼우는 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하지만 1965년 정일권 국무총리와 일본의 우노 소스케 자민당 의원간에 “미해결을 위한 해결”이라는 대원칙하에 한일기본조약의 걸림돌이던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약을 맺습니다. 이 “독도밀약“은 ①독도를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는 자국 영토라 주장한다.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②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때, 독도를 공동 수역으로 설정한다. ③현재 대한민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단 인원의 증강이나 시설물의 신설, 증축은 하지 않는다. 라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서의 제가 설명한 독도와 관련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잘못된 독도 관련 역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 독도밀약을 보고 박정희가 독도수호 의지가 없으며, 독도를 일본에 팔아 먹은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가 전한 정보를 아신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점거를 유지하는 것에 일본의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난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 독도밀약 때문인지 모르지만 향후 한일간에는 독도를 중간수역으로 하는 어로협정을 체결합니다.

3) 전두환, 노태우 정권

독도문제는 가능한 쟁점화되지 않게 조용히 넘길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금지한 것은 일본측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우리측도 논란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나온 조치같습니다. 

4) 김영삼 정권

겉으로 강경한 듯 나대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일본측의 반발을 걱정한 듯합니다.

5) 김대중 정권

김대중은 일본과 독도를 공동수역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습니다. 대체로 박정희와 스탠스를 비슷하게 취했죠. 혹자는 독도를 공동수역으로 한 김대중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저간의 역사적 사실과 역대 정부간의 협상 사실을 간과한 것이죠. 김대중도 가능한 독도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대체적으로 역대 정권은 독도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는 것을 꺼리고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면서 시간 끌기를 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뜬끔없이 독도를 방문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의 통화스왑 중단을 검토하고 있고 일본내 한류 열풍과 일본 관광객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임기말의 레임덕에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개인적 행동이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명박은 의식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고도의 정치외교적 행보였을까요? 


9. 독도문제와 동해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현재 일본과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독도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해의 국제적 명칭을 두고 우리는 “East Sea", 일본은 "Sea of Japan"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해의 국제적 명칭문제는 일본측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다를 국제적으로 이름 짓는데 ”East Sea“라고 하면 세계인들이 그 이름만 보고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Sea of Japan"이라고 하면 금방 일본 근해임을 알 수가 있지요. 또 지금 논쟁이 되는 바다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의 바다인데 “동해”는 한반도의 동쪽 바다일 뿐 일본 열도 인근의 바다 전체를 포괄할 수 없습니다. 홋카이도 근해는 “동해”로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 지역만 “일본해”로 따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우리가 결정적으로 “East Sea"로 주장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서해는 ”West Sea"가 아니라 황해(Yellow Sea), 남해는 “South Sea"가 아니라 ”남중국해“로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해와 남해는 저렇게 인정하면서 유독 동해만 ”East Sea"로 고집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차라리 한국 해(Sea of Korea)로 주장한다면 검토의 사유가 되겠지만, 동해(East Sea)로의 표기 주장은 어딘가 비논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동해의 국제적 표기는 “Sea of Japan"으로 해서 일본에 양보하고(우리는 국내적으로는 그냥 ”동해“라고 부르면 됩니다) 독도는 우리가 점유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일본이 인정하고, 독도 부근 바다는 공동관리구역으로 하는 것으로 한일 양측이 합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독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양심있는 학자나 지식인들, 그리고 객관적이며 합리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한국인들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역사교육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구요.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면서 우리의 역사 왜곡이 더 심한 모순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