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이상헌 교수가 <경향신문>에 통섭과 진화 심리학에 대한 짧은 글을 썼다.

 

[인문학에 던지는 12가지 질문](11) 인문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이상헌 |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입력 : 2012-08-10 19:53:47ㅣ수정 : 2012-08-10 22:05: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101953475&code=900308

 

이런 것을 글이랍시고 쓴 이상헌 교수나 이 따위 글을 실어준 <경향신문>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논리실증주의는 지식의 유일한 토대로서 경험을 강조하며 과학적 방법에 의한 방법론적 통일을 주장하였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은 지식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형이상학은 물론 종교, 윤리학, 문학, 예술 등은 더 이상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인문학이 학문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은 사회과학 혹은 생물학의 한 분과로 환원되는 길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에 고무된 환원주의자들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소렐(T. Sorell)의 말처럼 과학적인 것만이 오직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무한히 발전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간의 지식과 학문은 최종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학문으로 환원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과학이 인문학을 몽땅 삼켜버리려는 과도한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은 어떤가? 통섭 주창자들이 인문학을 몽땅 과학의 지배하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나? 아니다.

 

윤리학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윤리학에는 도덕 철학과 도덕 심리학이 있다. 도덕 철학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 탐구한다. 반면 도덕 심리학은 도덕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다. 도덕 철학은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는 반면 도덕 심리학은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이 중에서 진화 심리학이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도덕 심리학이지 도덕 철학이 아니다.

 

과학 명제에서 도덕 철학의 명제를 함부로 이끌어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르며 절대다수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물론 최재천 교수처럼 이상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도덕 철학이 과학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예술 비평이나 도덕 철학처럼 과학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인문학 분야가 있다. 누가 이런 것들의 가치를 무시하나? 누가 이런 것들을 과학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이 현상을 설명한답시고 엉터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싫어할 뿐이다. 즉 과학의 교권에서 놀면서 과학의 교권의 규칙인 논리적 일관성과 실증을 개무시하는 사람을 과학의 이름으로 망신 주려고 할 뿐이다.

 

 

 

윌슨은근래 자연과학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로 그 범위를 확장하며 세 영역을 한데 묶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제 학문의 환원적 통일을 자신의 사회생물학적 연구 성과와 최근 등장한 진화심리학을 내세워 다시금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환원주의는 과학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아가치(E. Agazzi)의 말처럼 참된 과학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등장과 더불어 거시적 대상에 대해 타당한 법칙이 미시적 대상에까지 확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환원주의는 신뢰를 받기 어려워졌다.

 

환원주의는 온갖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타격을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조악한 종류의 환원주의다. 통섭주의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런 가장 조악한 환원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을 한 번 보여줘 봐라. 당신이 그것에 성공하면 나는 당장 진화 심리학 공부를 때려치우겠다.

 

이상헌 교수는 참 세상을 쉽게 산다.

 

1. 가장 조악한 환원주의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2. 통섭주의자들이 환원주의을 옹호하기도 한다.

3. 그러니까 통섭은 틀렸다.

 

이것이 그의 삼단 논법이다. 통섭이 틀렸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통섭은 가장 조악한 환원주의다”라는 전제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최근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에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에 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연구 성과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해석에 언론의 과장이 더해지면 과학으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사랑의 호르몬이 그런 것이다.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매우 높은 수치로 측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랑이란 호르몬의 장난일까? 사랑의 호르몬을 먹으면 사랑을 하게 만들 수도 있나?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인간의 사랑에서 호르몬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하나 해보자. 철수에게 사랑의 호르몬을 주입하고, A, B, C, D 네 명의 여성을 만나게 해보자. 철수는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 A일까, B일까, C일까, D일까? 아니면 네 사람 모두일까?

 

물론 호르몬이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가 호르몬이 사랑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나? 호르몬 연구가들은 호르몬이 사랑과 관련하여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뇌과학이나 진화 심리학으로는 사랑을 몽땅 다룰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호르몬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호르몬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한 신경 회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 대상 선택에서 신경 회로가 막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뻔해 보인다.

 

물론 신경 회로에 대해서 몽땅 안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이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경 회로에 입력되는 값들도 중요하다. 그 입력 값은 그 사람의 주변 환경에서 유래한다. 어쨌든 사랑과 관련된 신경 회로와 호르몬 등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면 그 입력 값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과학자들은 신경 회로, 호르몬, 입력 값들의 역할 등을 모두 고려하여 심리 현상을 해명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호르몬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글의 말미에서 그는우리가 헌혈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이 피를 내줄 만큼 헌신적인 사람임을 남에게 알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심리적 이기주의의 관점을 드러낸다. 심리적 이기주의에 내포된 지배적 가설의 치명적인 문제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심리적 이기주의에는 은혜니 은혜갚음이니 하는 말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헌혈의 궁극적 이유에 대한 논의는 궁극 원인(ultimate cause) 즉 자연 선택에서 작동하는 선택압에 대한 논의이다. 따라서 심리적 수준의 이기주의 즉 심리 기제 수준의 이기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론에 따라 궁극 원인의 수준에서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경우에도 심리 기제의 수준 즉 근접 원인(proximate cause, proximate mechanism)의 수준에서는 “이타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심리 기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 봤자 이상헌 교수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덕하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