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은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를 과학인 것처럼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진화 심리학을 비판한다기보다는 비난한다. 나는 그들의 비판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점성술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점성술이 진짜로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진짜로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라면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면 끝이다. 나는 진화 심리학은 엉터리가 아니며 오히려 진화 심리학을 적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이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이 엉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논리적, 실증적 이유 말고 다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 특별한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평화와 평등에 대한 소망과 진화 심리학의 발견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약 여자와 남자가 정신적으로도 서로 다르게 진화했다면 완전한 남녀평등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남자에게 강간 기제가 진화했다면 강간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외부인 혐오 기제가 진화했다면 민족 갈등이나 인종 갈등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설계되었다면 공산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공격 기제가 진화했다면 폭력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살인 기제가 진화했다면 살인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약 서열 기제가 진화했다면 완벽히 평등한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자유, 평등, 평화에 대한 소망 때문에, 또는 억압, 불평등, 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간 본성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을 매우 싫어한다는 설명이다. 그들이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망적 사고란 증거나 합리성에 호소하는 대신 어떤 것이 상상하기에 기분이 좋으냐에 따라 믿음을 형성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Wishful thinking is the formation of beliefs and making decisions according to what might be pleasing to imagine instead of by appealing to evidence or rationality).

http://en.wikipedia.org/wiki/Wishful_thinking

 

 

 

나는 위안을 주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다는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요지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미신 없는 세상을 위하여 - 위안을 주기 때문에 믿는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25

 

그 글에서 썼듯이 소망적 사고를 하는 동물은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다. 나는 인간이 소망적 사고를 하도록 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위안을 주기 때문에 믿는다는 설명이 잘못되었다면 진화 심리학이 불안을 주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설명 역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야기를 제시하고는 증거를 댈 생각도 안 한다. 이것은 못된 버릇이다.

 

물론 진화 심리학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소위 엉터리 이론을 내는 이유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마치 확실하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한다. 예컨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런 이론들이 탄생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논적들이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 황당함까지 따라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는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해야 한다.

 

아직 사람들이 진화 심리학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들이 제시되었을 뿐 어느 하나 제대로 입증된 것은 없어 보인다. 정말로 이런 현상을 제대로 해명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제시된 가설들을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덕하

201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