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minue622님이 고종의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인용하셨다.


 

" 고종은 즉위하자마자 내린 첫 어명이 “궐 문 밖의 군밤장수 아무개를 죽여라. 그놈은 나에게 단 한 번도 군밤을 공짜로 주지 않았느니라”라는 황당한 발언이었다. 이는 정환덕의 ‘남가몽’에 담긴 일화사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즉위 당시 고종의 나이가 열두살임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어명도 아니다. """


상기 출처 설명 중 빨간색 부분에 유의해 보자.


"즉위 당시 고종의 나이가 열두살임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어명도 아니다"


 

아마도 야사에 전해지는 일화같은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면 상기 기술은 틀렸다. 상기 기술은 고종의 나이를 들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 부분은 당시의 역사를 판단한다면 '틀렸다'라는 것이다.


 

성인이 된 고종은 일단, 망해가는 나라의 '슬픈 처지의 우유부단한 왕'이었을지언정 '폭군으로 판단할만한 정치적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종이 즉위 당시 저런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한 이유는 나이나 성정보다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고 그 '추측'은 고종이 임금에 즉위한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종은 철종의 다섯번째 아들로 위의 네 형제가 요절을 하자(이 부분 하하하님 지적대로 철종이 흥선대원군이라는 말도 안되는 실수이므로 수정하되, 대원군이 정치 파워게임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급급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고 촌수 기록하려면 또 한참이니까 걍 넘어가주셈 ㅠ.ㅠ;;;) 임금에 오르는데 그 임금에 오르는 이유가 당시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김씨 일파가 철종을 강화도에서 데려와 벼락 임금을 시킨 것과 같은 맥락, 즉 '허수아비로 만들어 이용해먹기 딱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이 망한 여러 이유 중에 왕권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인데 집안이 변변치 못한 철종 그리고 다섯번째에 불과해 임금이 전혀 될 가망성이 없었던 왕자가 아들이 된 것이다.


 

따라서 고종은 '군왕의 덕목'을 배웠을리도 없고 평민과 비슷한 왕족.............의 후예로 벼락같이 임금이 된 철종(이 부분 하하하님 지적대로 철종이 흥선대원군이라는 말도 안되는 실수이므로 수정하되, 대원군이 정치 파워게임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급급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 부분만 바꿈)같이 벼락 임금이 되었고 그 것도 겨우 열두살이었으니 상기와 같은 야사가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고종이 차기 왕의 신분인, 세자였다면 저런 야사가 전해졌을까? 최소한 고종이 성인이 된 후의 통치 행위와 '군왕의 덕목'을 배운 상태였다면 저런 막가파식의 일화는 없었을 것이다.


 

즉, "즉위 당시 고종의 나이가 열두살임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어명도 아니다"이라는 주장은 "벼락 임금이 된 고종의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불가능한 어명도 아니다"로 바뀌어 주장되어야 맞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역사의 사실들로 판단해보자면, 저 야사는 아마도 조선점령을 합당케 하기 위한 일본측 진영에서 퍼뜨린 말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 부분은 long long story이고 기술하기에는 좀 양이 많으니 생략!


 

그런데 세종대왕과 관련된 비슷한 야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 것은 내가 한두번 언급한 부민고소방지법이다. 부민고소방지법의 상세는 검색해보면 그 과정이나 역사적 배경들은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부민고소방지법은 바로 백성들이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바로, 부모를 고소하는 법을 금지시킨, 중국의 당나라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법인데 그런 법의 취지를 관료들에게도 확대, 적용시킨 것이 이 법의 취지이다.


 

이 법 때문에 지방관리들의 '토색질'이 가능해졌고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가렴주구'라는 표현을 상회하는 지방관리의 토색질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정사이다.


 

정사에서는 세종대왕이 한 신하의 주청을 받아 이 법을 실행했다고 적혀있는데 야사에는 '책을 읽기 좋아하는 세종대왕은 지방관리들을 고소하는 상소문이 폭주하자' 책을 읽는 것이 방해가 되었고 그래서 부민고소방지법을 제정,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뭐, 야사에 전해지는 말이니 그 신빙성이야 각자 판단할 몫이지만, 세종대왕의 경우에는 설사 야사에 전해지는 내용이 100%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백성을 사랑한다는 세종대왕이 부민고소방지법을 제정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판단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어쨌든, 야사로만 보면, 세종대왕은 bibliomania(서적광) 고종은 the very picture of babyish(유치대마왕)인데 어느 쪽이든 통치권자들은 평균값에 근접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위민무탈'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이고, 여전히 그에 둘러쌓인 의혹들이 불거져도 내 판단은 마찬가지인데 결국, 사회는 평균값, 그러니까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때가 국민들로서는 가장 좋은 것 아닐까? 당연히, 0.1%에 들어가는 안철수가 공적개념에서는 사회의 상식범위를 넓히는데는 공헌하겠지만 내 정치적 이익과는 부합되지 않을 것이니 '지지는 할 망정', '투표는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지금의 내 판단이지만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