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그것은 최소한의 연역적인 가치와, 최대한의 귀납적인 영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단순한 대상을 구도 내의 중심으로 놓고, 그곳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것, 이것을 통해 감상자는 원근법적인 체험에 도달할 수가 있다.  원근법적인 체험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그 대상에 도달하는 경험과 동시에 그 대상을 넘어가는 초월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감정의 깊이'가 형성될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우연치 않게도, 이것은 타인이 접근할 수 없는 자신의 병적인 심연을 바라볼 때 인간이 체득하는 원초적인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들은 대상이 아니라, 이렇게 대상을 통해 대상을 초월하는 체험, 즉 대상이 아닌 자신을 신적인 무한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전환의 순간 속에 존재한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외부적인 대상 안에 속한 속성이 아니라, 대상이 열어 제치는 주체의 무한성의 전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무한성의 감정 속에서 인간은 어떤 신과 만나고, 그 신을 통해 자신의 신이 된다. 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절대적인 심연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촉발하는 대상이나 가치는 최대한 단순해야 하고, 동시에 최대한 멀리서 은폐되어야 한다. 무한히 펼쳐지는 관조 속에서, 중심은 최대한 축소되고 단순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될 때 대상은 미적인 가치가 아니라 제의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말도 못할 정도로 처절히 아름다워서, 마치 백 년에 한 번 베일을 벗고 나타나는 성모의 신비한 초상화와 같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기다려지고 기다려온 모든 것들이 마침내 실현되는 인간의 문법적인 상상과 같다. 바하의 음악은 이러한 기다림의 원초적인 문법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내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움을 철저하게 숨김으로서, 인간이 외부적인 환경에 상관 없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목마를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