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heacro.com/zbxe/613013

 

 

 

어젠가 그젠가 무료 신문에서 코블렌츠님이 언급하신 그 기사를 잠깐 보았을 때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기사 내용을 쑥 훑어읽어배려갔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코블렌츠님의 글을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또 코블렌츠님의 애독자입니다!^^)

 

짧막한 기사는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침을 뱉었다고 나무랐고, 중학생 아이가 걷어찼고,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 껴들여서 말리다가 팼다는 이야기는 이야기 전개가 너무나 이상스러웠습니다. 아무튼 기사 내용대로만 이해를 하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생각을 했지요.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니 참으로 끔찍하고 소름이 끼쳤답니다.

또한 제 아이가 저런 일을 저지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쓰였지요.

 

그런데, 어른과 노인으로 댓글 토론이 있는 걸 보고, 전에 노인과 어른에 대해서 제법 진지하게 썼던 글이 생각나,,, 그 글로 댓글 토론에

참여하려다가 일이 크게 되고 말았습니다.

쓰기는 분명히 썼었는데, 어느 곳에 어떤 주제로 썼는지 몰라 제홈피와 블로그에서 그글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저의 많은 글을 검색하다가  아래 박스글을 옮겨 놓게 되었습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말았네요. 시간 엄청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새롭게 댓글을 쓰고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네요.

 

저는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한답니다.

따라서 세월에 흐름에 따라 저절로 나이 많아져 되는 노인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답니다.

나이먹음에 대해 존경이나 공경의 의미를 더하는 '예'는 웃기는 문화 혹은 전통이라 생각을 하구요.

아무튼 나이를 먹어도 곱게 잡수시지 않으면 정말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주제넘게 충고나 훈계를 하다간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큰코 다치기 십상일 것입니다.

슬픈 일이라 생각합니다.

 

나이에 대한 관념이 잘 드러나는 책이 있더군요.

무탄트 메세지에 보면, 정말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더군요.

워밍업에 너무 힘을 빼서 본글을 쓸 기력이 다 쇠진하여군요!^^

링크나 걸고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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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부족은 자연에 순응해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느끼면 사는 삶을 영위한다. 그들 삶 속에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은 없다. 그곳에 소유란 없으며 욕망이란 그저 행복하게 사는 최소한 것이며,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산다. 그들은 영적 성장을 인생의 목적으로 한다. 의식이 성장했을 때는 부족들에게 알려주고 축하를 받는다. 비록 그들의 삶의 양태는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나, 정신세계는 드높아서 우리 무탄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통념은 산산히 부서진다. 나이, 지식 모든 것이 소용이 없다. 원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주인공의 오감은 최대한 깨어난다.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나이, 성장, 질병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알아보자.

 

 

-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주지만,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어려서 받은 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들 원주민의 관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각자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진 지혜와 창조성과 삶의 목표도 더 뚜렷해진다면 당연히 그는 일생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이름을 바꾸게 될 것이다. (70p)

 

-          또 같은 세대에 태어난 같은 성별의 사람은 모두 한 가족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모두가 여러 명의 부모와 형제 자매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71p)

 

-          내가 생일 파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케이크와 축하 노래, 생일 선물 등을 설명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케이크 꽂는 양초의 수도 하나 더 늘어난다고 이야기 했다. 그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뿐이지요.나는 그 말을 깊이 명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17p)

 

-          나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는 주장에는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자신이 오래 전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병마와 싸울 때, 환자를 치료하는 근본적인 힘은 오직 한 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몸에 침입한 병균을 죽이고, 주사를 놓고, 어긋난 뼈를 맞춰 줌으로써 환자를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환자의 몸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확신한다. 사람들 각자의 병을 고치는 치료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치료사를 갖고 있다. 의사들은 기껏해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개발하고,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135p)

 

-          …… 새로운 주제, 다시 말해 인간의 느낌과 감정이 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진정으로 우리 존재에 새겨지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사물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 몸의 세포, 인격의 중심, 마음 속,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자아 속에 기록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어떤 종교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만, 참사람 부족은 중요한 것은 음식과 물 그 자체가 아니라고 여겼다. 또 그것이 누구에게 가는가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새겨지는 것은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갖고 아낌없이 베풀 때 경험하는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에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가를 기록한 성적표를 갖고 이승을 떠난다. 훌륭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을 구별해 주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형의 감정이다. 사랑의 행동은 단지 감정과 의도를 실제로 표현하고 경험하는 수단일 뿐이다.  (141p)

 

-          그날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맞출 때, 두 명의 원주민 치료사는 환자의 육체에 스스로 완전하다는 생각을 보냈다. 그들은 손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치료를 했다. 환자는 마음을 열고 건강해진다는 말을 받아들였으며, 당장에 완전하게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을 원주민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 원인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고통받고 희생을 당하고 있는가. 물론 그것은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도 없다. (142p)

 

-          미국 의사들이 약의 효과를 믿는 것만큼 인간의 몸이 가진 치유 능력을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차츰 나는 의사와 환자의 유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의사 자신이 어떤 환자가 나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 내가 오래 전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환자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이 아니라, 의사가 받은 교육과 경험 속에서는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치료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환자가 똑 같은 병을 이겨냈다면, 인간의 육체는 분명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142p)

 

-          주술사와 여자 치료사와 긴 시간 토론하면서, 나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믿기 어려운 개념을 발견했다. 그들은 말했다. 치료는 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질병과 치료는 둘 다 한 순간에 일어납니다. (142p)

 

-          142p: 참사람 부족은 아무나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인간의 육체는 보다 높은 차원의 영원한 의식이 개인의 의식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병에 걸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치료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상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상처 입은 관계, 우리의 신앙에 뚫린 구멍, 깊이 감춰진 두려움이라는 종양, 서서히 무너져 가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냉정한 마음 등이 우리가 진정으로 치료해야 할 상처들이다 (142p)

 

우리 인류는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모두 병든 환자이다. 몸이 건강하다고 해도 정신은 하나 같이 다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잃어버린 돌연변이인 셈이다. 결국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돈을 버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는가.

 

얼마나 더 타락을 해야지 우리 인류가 반성을 하고 삶을 돌아보게 될까. 왜 말도 안 되는 사악한 사고에 속아 인류는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우리는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숭고한 사상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결국 행복을 목적으로 두고 살아간다. 그런데 경제학이 주장하는 논리는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재화를 더 많이 소유하거나 제품을 더 많이 소비해도 행복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터무니 없는 논리에 매어 있어야만 하는가. 한번 치밀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돌려보자.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자. 진실로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배우자.

 

그리고 그들은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는 걸 축하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282p)

 

우리도 적어도 지적으로 성장하는 삶, 나아가 의식이 성장하는 그런 지혜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진심으로 축하고, 격려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학교 공부, 나아가 인생 공부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참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문]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read&premode=list&page=5&ftype=&fval=&backdepth=&seq=618&num=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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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5.

00:57

 

 

노인과 어른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하는

참 사랑

 

 

노인과 어른

유교사상이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른에 대해 예의를 잘 지키라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어느새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어른을 무시하거나 공경하지도 않는다.

일을 특성상 전철을 타고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참 많은 경우를 보게 된다. 노인분들께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리고 늙었다고 안하무인 격으로 자리를 내 달라고 하는 노인 분들도 많이 본다. 어느 모로 보나 아름답지 못한 광경이다.

반면에,,, 아직도 어른들을 보면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도 가끔 눈에 띄고, 노인이라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자리를 양보 받으려 하지 않는 분들도 간혹 눈에 띈다.

전자의 경우에는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후자의 경우를 보면 내 마음까지 밝아진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나이가 그 사람의 사람됨을 나타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개인 스스로가 성장.발전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부터 전철의 노약자 석에는 절대로 앉지 않았다. 서 있는 노인이나 약자가 전혀 없어도 노약자석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아무도 없는데 앉았다가 노인들이 타게 되면 일어서면 될 것이 아니냐고 고지식한 내 태도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만난다.

나는 아직 젊었거니 얼마든지 서서 갈 수 있다는 생각도 있어서겠지만, 나에게는 노약자석으로 지정된 자리는 아예 없는 것으로 여긴다. 잠깐 이라도 앉았다가 노인분들이 타셨지만 깜박 졸기라도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늙으신 내 어머니 아버지가 차를 타시게 되면 당연히 비워 놓아야 할 자리인 것처럼 낯 모르는 어른들도 그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일 것이기에 똑 같이 비워 놓아야 할 자리가 틀림이 없는 것이다.


[전문]: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read&premode=list&page=1&ftype=6&fval=공경&backdepth=&seq=147&num=4



 

경험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노인네다.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현명한 어른'이다.

경험을 이야기 하며, 제 잘났다고 자랑하는 노인은 망령난 거나 다름이 없다!

쯧, 망령난 노인네!

어디서 교육 잘못되었다고 타령을 하고 있어!

[전문]: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어른들이라고 하는 노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놀랬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녕 우리나라에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없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저열한 생각만을 갖고 있는 한 아무리 나이를 드셨어도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 값을 못하는데 공경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오래만 살았다고 대접을 해야 한다면 인간보다도 수명이 긴 동물이 있다면 동물들도 공경을 해야겠는가?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5966526


 

우리나라엔 어른이 없다.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한 노인들은 있겠지만 어른다운 어른은 없다. 노인은 많지만, 바른 생각을 갖고 있어 젊은 사람 혹은 후학을 가르칠 수 있는 어른은 없다는 말이다. 노인이라고 모두가 현명하고 지혜로울까? 그렇지 않다. 노인은 경험으로 대접을 받을 수는 있다. 나이가 먹고 오래 살다 보면 저절로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이 많아지게 된다. 그런 경험에서 우러난 가르침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지만 경험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고 만다. 매우 조심해야만 할 일인 것이다. 경험을 많이 쌓았으되 경험을 넘어서는 통찰력과 지혜를 가질 때 우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된다. 그만큼 현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많다고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구태의연한 삶을 살면서 엄청나게 변한 세상에 큰 소리를 내려고 한다. 비록 당대에는 지식을 갖고 사회를 리드했을지는 모르지만 지혜가 전혀 없는 자들이 자신의 고정된 인식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를 내며 야단을 치고 있다. 먼저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을 해야만 한다. 그런 연후에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이라고 할만하다면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일이다. 그렇지도 못한 자들이 의식이 성장한 젊은이들을 경험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웃기지 않는가! 그러므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배우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5098529



 

어떻게 교육을 해야만 하는가. 전인교육을 해야만 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유치한 수준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양을 쌓도록 해야만 한다. 단순 지식을 외워서 얻을 수 있는 점수의 고저로 인간을 판단하는 방식을 과감히 버려야만 한다. 대화하고 토론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훈련을 시켜야만 한다. 봉사, 희생 정신을 가르쳐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은 방식을 버리도록 엄하게 훈육해야만 한다.

어른이라도 어리석은 사람은 창피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나이만 많다고 존경할 일이 아니다. 누구나 세월만 흐르면 나이는 먹는 법인데 나이가 많다고 어른 대접을 해야 할까. 젊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귀감이 되고,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는 인격을 갖췄을 때 존경을 하고 어른 대접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이 많은 노인이라도 그에 합당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부끄럽게 생각하는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배우려고 겸손하게 노력할 것이며 솔선수범하려고 할 것이 아닌가.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4260110



 

아무튼 나는 일찍 선거를 마쳤다.

기념으로 셀카도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다가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 부부를 만났다. 전에 없이 투표를 마친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눠준다. 할머니가 한장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2장이나 갖고 계신다. 이게 뭐여, 돈이나 주지 않고? 왜 그걸 2장이나 갖고 계신지 모르겠다. 내가, 그게요 돈과 같은 것입니다! 각종 시설에 입장할 때 2,000원을 할인해주는 할인권이다. 써먹기만 하면 2,000원을 벌 수 있으니 이게 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노인은 표 2장을 꼬기작꼬기작 접더니 주머니에 집어 넣고 돌아가신다. 뒷모습 아름답다기보다 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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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 절망했다.

선거는 무슨 선거며, 민주주의는 무슨 소용인가. 주인이 주인됨을 포기하니 종이 설치지 않는가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 개개인인 우리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살아갈 때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리는 법이다. 사사로히 정에 얽매이거나 퀘퀘묵은 지역주의 정서에 빠져있고 혈연.지연.학연에 매어있을 때 민주주의는 썩고말 것이다. 어린 자식들에게 부끄럼 없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도덕심, 양심, 선량한 마음을 가진 훌륭한 민주시민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기본으로 추구하여야만 할 일이다.

 

어제 만난 아름다운 젊은 연인에 희망을 걸고 싶다.

미래에는 그들이 이 나라의 중심축이고 주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차차로 밀려나듯 바다에 닿듯이 썩은 정신을 가진 구세대들이 밀려나고 깨끗하고 착한 신세대들이 세상에 주인이 될 때에나 이 세상이 희망에 가득 찬 나라가 될 것이다. 무엇이든 제게 이로운 돈만을 생각하는 노인들이 그들의 길을 가고, 함께 사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걸어나올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4397678



 

책방에서 들어서자마자 가게를 보시는 사장님께 ‘옛책 그 언저리에서’ 라는 책을 구하러 왔다고 말씀을 드렸다. 집에 책이 4권이 있다고는 하셨다. 희망이 생기긴 하였다. 하지만 어찌 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겠는가. 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았던 것이니깐 크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책 구경을 했다. 내가 원하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찬찬히 구경을 하다가 찾고 있던 책을 찾았다. 누군가가 쓴 글에서 공씨책방은 작지만 좋은 책을 만나곤 했다는데 그 말이 맞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인연이었을까, 서점에 연세 드신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어찌하다가 한자 이름까지 밝히게 되었는데, 내 이름 욱자에 대한 뜻에 대해 선생님의 고견을 듣게 되었다. 욱(頊)자가 요즘 자전에 보면 멍할 욱이라 나왔는데, 명상을 할 때의 그 푸르고 맑은 상태가 바로 멍한 상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딴은 그랬다. 내가 몇 년째 명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명상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인터넷 카페를 소개해 주시고 별호까지 지어주셨다. 푸른뫼라니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이리하여 고서가 푸른뫼(靑山)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1858154


 

노무현 대통령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 있어서 아빠의 권위와, 회사에 있어서의 사장의 권의와, 대통령으로서의 권의 등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것을 실천하고 있다.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 유교주의적인 관습, 남녀의 구분 등 모든 불완전한 의식은 과감히 버려야 할 때이다. 과거의 역사는 과거로 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백성은 충성을 해야한다는 봉건 왕조적인 인간상을 버리자고 하는 것이다. , 관료 등의 지배자와 학자 지식인들을 똑 같은 인간으로 내려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의 실현인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인간존중의 사상인 것이다. 분명 큰 생각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나이든 분들을 공경하고, 제사를 모시고 하는 유교주의적 종교관은 버려야 할 때이다. 이것은 나이와 관계를 따진 일방적인 관계관에 지나지 않는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강조해야만 할 사항이 아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부. 모를 존중해야만 한다. 나이든 어른이라면 이웃집 사람이라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 마땅한 것이다. 내 부모라서 존경해야만 한다면 다른 사람의 부모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부모는 남이라 생각하고 소홀이 하고 심지어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기도 한다. 나의 것만을 주장하는 이런 생각은 버리고 내 부모를 사랑하듯 내 아이를 사랑하듯 이웃의 부모와 아이도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야만 할 것이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아이도 존경해야만 한다. 단순하게 나이로만 따져서 어른이라고 공경해야 한다면 어른이라고 해서 잘 못했는데도 봐주어야만 하는가? 그건 그렇지 않다. 어른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켰을 때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전철을 타거나 할 때 보면, 나이드신 어른들은 줄서기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차에 오르곤 한다. 이것은 너무나 민주적이지 못한 잘못된 행동이다. 이제는 어른도 아이도 건장한 중년도 다~아 질서를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어른들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질서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언행에 주의를 하지 않는다면 절대 어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철 안에 들어가서 힘들고 어려운 어른을 보면 나의 부모를 대하듯 그들을 대접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바른 행동일 것이다. 어른이 공경을 받아야 하면, 청년도 . 장년도 다 마찬가지로 존중을 받아야만 한다. 이건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배워야 할 생각이다.

[전문]: http://blog.daum.net/myinglife/15966564


 

나에게 정신적, 영적 스승이 되시는 분들이 몇 분 있다. 이순을 지난 분, 불혹을 넘긴지 좀되신 분도 있다. 모두 훌륭하신 분이다. 물론 나는 때때로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운다. 심지어는 간난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깨달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우리는 유교사상에 의해서 나이가 많은 분들을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공경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해도 정작 배움을 게을리 하여 인격을 갖추지도 못하고 세상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그런 분들을 나이만 많다고 해서 공경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물론 나이가 먹어가면서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자연히 깨치게 되겠지만 그렇게 별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삶의 지식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할 지는 의문이 든다.

전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어떤 나이드신 분들은 나이 먹은 게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젊은 사람들을 나무라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심지어 술이 잔뜩 취해서는 무조건 젊은 분이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호통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 분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 배가 만삭인 임산부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드셨는지 모르지만 그에 합당한 인격은 갖추지 못하신 분이다. 나이가 많으니 무조건 대접받고 공경을 받아야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안쓰럽기조차 하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배움을 지속하지도 않고 그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거저 들어가는 나이를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해할지 몰라 첨언하면, 물론 우리는 나이드신 분들을 노약자로 알아모셔야 할 것이다. 몸이 아프고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양보를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사람이 할 갖고 있어야 할 시민 정신일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나이만 먹기를 두려워 해야 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식이 충만해지고 또한 지혜로워져서 뭇사람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나이가 적고 많고를 떠나서 공경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옛 선조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어는 누구도 삶의 사표가 될 만큼 어른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려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어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고, 장성하여서는 스스로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자식들을 무조건 공부만을 잘하게 가르치려고 한다. 그렇게 공부를 잘 한 사람들이 공직에 서게 되거나 사회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성공을 하고도 부정을 부패를 저지르게 되어 결국은 형편없는 인간으로 한없이 추락을 하게 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가리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 부모들도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에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는데다가 자식들 스스로도 배우는 법을 모르고 소홀히 하면서 살게 된다. 그래서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 교육은 출타중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욕하겠냐만은 서양의 개인주의 사상이 침투하여 더욱 문제가 심각하게 변하고 말았다. 이제는 인격이고 나발이고 나이고 자시고 따질 필요가 없이 그저 잘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가 판을 친다. 자유시장경제인지 뭔지 하는 알량한 사상에 모든 정신을 팔고 말았다. 우리는 결국 노예가 되고 말았다. 돈에 영혼을 팔고 말았다. 그러나 깨어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바보 짓이다. 미친 짓이다.


[전문]: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read&premode=list&page=1&ftype=6&fval=공경&backdepth=&seq=301&num=5



 

노인들이 지혜롭지 않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배움을 지속하지 않는데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가 있겠는가.

경험을 통한 배움을 통해 지혜를 터득해나가야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배움에 열심이지 않다.

 

그렇다면 젊은들은 똑똑할까? 아마 노인들에 비해서 좀 똑똑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충분히 배우기 않기 때문에 잠깐 똑똑하고는 그만이다.

 

여기에는 지혜로운 비밀이 하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배움을 지속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똑똑해지지도, 지혜로워지지도 않는다.

 

지혜란 경험이나 배움을 통해서 세월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은 원리, 원칙, 진리, 통찰력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실험 결과를 보고, 어른들 혹은 노인들의 경륜을 무시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똑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장담컨데 그렇다.

 

그러므로 지혜로워지고 싶거든, 마음을 열어놓고 계속 배우고, 경험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유를 하고 통찰력을 길러야만 한다.

지혜는 닦아야할 덕이다!

[전문]: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2&mode=read&premode=list&page=3&ftype=6&fval=노인&backdepth=&seq=917&num=33


 

성대역에서 훌륭하신 노인분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나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신문가판대 앞에서 기사를 읽곤 한다. 오늘도 가판대를 보며 기사를 읽고 있는데 낯이 익은 어른이 다가오셨다. 전에 그곳에서 큰 소리로 바른 소리를 하시던 어르신이셨다. “어디를 가시냐며 말을 걸어 인사를 드렸다. 어제는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쌍소리와 함께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난하는 노인분들과 조우했는데, 오늘은 훌륭한 정신을 가지신 어른을 만나서 반가웠다. 함자를 알려달라고 했고, 사진도 한장 찍었다. 나도 명함을 한장 드렸다. 금정역까지 교육, 정신, 교수 등에 관한 말씀을 나눴다. 특히 어렸을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에 나도 에밀을 이야기 하며 공감을 했다.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서 가끔은 훌륭하신 어른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큰 위안을 받는다.

[전문]: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39&mode=read&premode=list&page=1&ftype=6&fval=노인&backdepth=&seq=362&num=19


 

벌써 오래 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이제 나라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 나라에 큰 어른이 없으니 후세들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더욱 사람들은 잘못을 모르고 교만해지고 거만해진다고... 자신부터 칼날처럼 바르게 세우고 나서야 어른다워질 수가 있는데,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니 추상 같은 가르침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적당한 타협과 관용만을 미덕으로 알고 더 이상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화두로 넌지시 던지는 화두는 추상과 같은 꾸짖음이다. 사물의 진실을 바르게 보라고 엄하게 가르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물들지 말고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하는 통찰력을 기르라고 점잖게 타이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외로운 선비의 호통을 듣는다. 나는 귀를 기울여 마음을 모으고 단정한 자세로 듣고 있다. 한 줄의 가르침이라도 놓칠세라 경계하면서


 

알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알지 못하면 생각하고 판단할 힘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살면서 중요한 문제는 모두가 배워야만 한다


 

의식의 크기

물론 의식은 경험에서 넓어지고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때 필요한 것이 지혜로운 사고의 힘이다. 자신이 집적 경험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타산지석이라고 남들이 경험한 것을 통해, 혹은 역사적 교훈을 통해, 때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통해서 보다 너른 생각,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워하지만 나이가 들면 유치하게 여겨 멀리 하듯이 사람도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면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다르게 된다. 의식이 커지는 것이다. 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저만 잘 살고자 하지 않는다. 자연과도 조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며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남용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다 못해 동물들도 존엄성을 갖고 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다운 어른이나, 지혜로운 성인이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가 보라. 절대 그렇지 않다. 사물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운 지식인만 되어도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순리를 따르는 법이다.


[전문]: http://blog.naver.com/myinglife/70067947764



 

또한 자기 자신의 흔들림 없는 가치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꼭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인생철학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러한 변화무쌍한 시대에 자신을 지켜낼 수가 있겠는가. 나이 드신 어른이라고 해도 어린 사람에게 모범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 어른 노릇을 할 수가 있겠는가. 나이로 가르침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확고부동한 가치관을 갖고 정신적인 삶으로 가르침을 주지 못한다면 누가 존경할 수 있겠는가. 책을 읽고 배우지 않는다면 어찌 가르칠 수가 있을까.



 

며칠 전에 전철을 탔는데, 연세 지긋하신 분이 신문을 보면서 막 욕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찌나 심하게 화를 내는지 얼굴을 쳐다보고 웃었다. 한동안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전철에서 내릴 때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웃으시면 말을 거셨다. 어제도 전철에서 젊은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를 거론하면서 열을 내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 누구든지 구리지 않은 사람이 있냐?며 마치 예수님처럼 아주 확신에 차 얘기를 한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에게 화를 내는 군중들을 보고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은 저 여인을 돌로 치라고 외쳤던 것 같이 열을 내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한국은 공개적으로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게 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편의점 가게 사장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다.

저희가 죄인입니다. 저희가 자식들을 잘 못 가르쳐서 나라가 이 꼴이 되었습니다. 고 한탄하시면서 진실로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시는 게 아닌가! 그저 잘 먹고 잘 살라고만 가르쳤기에 잘못이라고 뉘우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난하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저만 잘먹고 잘 살려고 온갖 불법, 탈법, 편법을 저지르며 남을 찍어누르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잘못 가르쳐서 죄송하시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평범해 보이시는 분께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이분이야말로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도대체 성장하지 않는다. 길가에 자라는 나무들도 매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성장을 하는데 인간만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성장하는 것을 딱 멈추어버리고 만다. 여기서는 몸의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쩍부쩍 자라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하면서도 자신이 성장할 생각을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자. 깊이 잘 생각을 해보자.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때까지 배운 것 말고 더 무엇을 배웠는가 말이다. 그 때까지 배운 것도 대학교 진학하는 데 필요한 쓸데없는 지식을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책을 딱 덮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쓰레기 같은 지식 조금 배워놓고 영원히 배우기를 멈추는 것이다. 성장? 그러니 성장이라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몸뚱이만 자란 아이 같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폼잡고 있다. 그러니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불끈하지 말고 생각을 해보라.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난 유일한 점이 생각할 수 있다는 힘이다. 그런데 불끈하고 화를 내는 것은 동물과 같이 반응하는 것이다. 제발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해보라. 자신이 배운 것이 어떤 것이었는가, 얼마를 배웠는가를 말이다. 깨달은 바가 있는가?


[전문]: http://blog.naver.com/myinglife/70020503930


 

 

-         가족마다 그 성숙도는 다르다. 이는 가족이 상호 작용하는 방법과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20p)

-         부모는 가족의 건축가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창조적이며 정서적인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과 지식 필요하다. (20p)

-         부모는 자신이 도달한 깨달음의 수준까지만 아이를 이끌어줄 수 있다.(20p)

-         사실, 어른들 중에 자아에 대한 인식이 튼튼한 사람을 찾기란 무척 힘들다. 그만큼 만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집에서 부모에게 억눌린 경험을 많이 한다는 의미다. (22p)

-         무지하고 눈먼 사람이 자기 배우자는 물론 우리 사회의 앞날인 아이들의 운명을 망쳐 놓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목격한다. 그러한 무지함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 눈먼 폭력의 희생양들은 커서 또다시 눈먼 가해자가 된다. 그런 아이들은 커가면서 다른 사람이나 재물에 해를 입히고 결국 자신의 삶까지 스스로 파괴하고 만다. 이렇게 슬프고도 걷잡을 수 없는 굴레는 대를 이어 계속된다. (22p) ~

[전문]: http://blog.naver.com/myinglife/70067947635


 

어제도 퇴근길에 사당역에서부터 과천청사역까지 연설을 했다. 막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술취한 어른이 시끄럽다며 방해를 한다. 정치 얘기를 하려는 것이냐, 무슨 소리를 할려고 하는데 서두 기느냐 하시며 연설하는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죄송하다며 잠시만 참아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연설을 계속했다. 연설을 마치고 독서에 관한 유인물을 나눠드렸다. 또 인덕원역에서 젊은 남자분이 내리면서 나를 바라보더니 목례를 하고 내린다. 노인분께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렸다. 과천청사역에서부터 금정역까지는 여늬 때와 다름없이 책을 읽었다.

 

금정역에서 의왕역까지 또 연설을 했다. 젊은 아가씨가 손바람을 일으키며 박수를 친다. 유인물을 나눠주는데 술 드신 노인이 뭐냐고 역정을 내신다. 한두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을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는데 앞에 서 계시던 중년 남자분이 아는 체를 하신다. 눈을 껌뻑이고 바라보니 전철 안에서 얘기를 들었다고 하신다.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눴다. 춘천에 등산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신다. 박스를 들고 계시길래 뭐 맛있는 것을 사가지고 가시냐고 하니 춘천 닭갈비를 포장해 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가족에게 미안해서 사가지고 오시는 것이란다. 화두를 건강으로 옮겨 식초건강요법에 대한 얘기를 해 드렸다. 버스에 올라 타서 바닥에 내려 놓은 박스를 보니 내가 나눠주었던 유인물이 끈으로 묶은 박스 위에 끼워져 있었다. 마을 앞까지 얘기를 나누며 왔다. 그 분께는 도움이 되는 얘기를 두 가지나 해드린 셈이다. 참으로 보람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전문]: http://blog.naver.com/myinglife/70024290076


 

동생과 나는 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엔 자리마저 붙어있어 늘 함께 지낸다.남들은 자랄 때 한 이불을 덮고 자라지만 어른이 되면 남남처럼 지내기도 하는데 우리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책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몇 년 전에 동생에게 책 읽기를 권하고 책도 선물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나보다도 책을 더 좋아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동생이 독서를 통해서 계속 성장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그런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 받은 것이다.




 

<내 조상의 성>   집안의 어른들이 독서를 해야 아이들도 본받아 독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