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갖게 돼, 한가롭게 정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한다.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를 짓는,  국회의원까지 지낸 한 원로를 올봄에 만났을 때 그가 나한테 물었다.


“김 선생, 안철수가 어떤 사람이야? 대권후보로 지지율이 높다는데, 대통령으로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그 질문이 올바른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질문에 답을 해야 했기에 나름대로 대답을 했다.


“글쎄요..... 근데, 박근혜가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라고 하는 판인데, 안철수가 안 괜찮은 게 뭐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상투적이고 지나가는 질문에 그져 간략하게 답변을 해서 얘기는 거기서 짧게 끝났지만, 그의 질문이 나에게 뭔가 여운을 남겼다.


즉, 사람들이 후보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실제 지지율과는 동떨어진 후보로서의 기준에 너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일을 많이 본다. 아크로에서 일어나는 안철수에 관한 논쟁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국에서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사람들이 당위적으로 생각하듯이 후보의 도덕성이나 쏟아내는 공약들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도덕성이나 정책적 공약들은 단지 자기가 반대하는 후보들에 대한 공격용으로, 혹은 반대에 대한 근거의 합리화로 사용될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대선후보의 자격은 도덕성이나 능력 등 후보의 자질이 아니라, 상대후보를 꺾을 수 있는 경쟁력이다. 따라서 그 원로는 안철수는 당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어야 적절했다.


지금 새누리당의 공천헌금문제로 박근혜 후보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는데, 그건 반새누리당 진영의 느낌일 뿐이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지지자들이 언제 그들의 도덕성이나 자질을 보고 지지했었나? 그거보다는 혹시 박근혜가 종북주의자, 반미주의자, 반영남주의자, 또는 반기독교주의자인 게 드러난다면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다.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안철수의 지지율은 안철수가 대통령으로써 완벽한 도덕성과 자질을 갖춰서 생긴 게 아니다. 단지 여당의 유력한 대권후보 박근혜에 대한 여타 야권후보보다 우월한 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가 과거에 저지른 사소한 도덕성 문제로 안철수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야권 지지자들은 안철수가 아무리 많은 문제를 앉고 있더라도 박근혜보다 도덕성이나 자질에서 못 하지 않는 한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안철수나 야권 후보들이 아무리 도덕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박근혜나 여타 여권후보보다는 낫고 도덕성이 그들에게는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는 과거 정권들의 학습효과를 통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때가 됐다. 다시 말하지만, 선거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가장 완벽한 후보를 뽑는 장치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선거는 단지 최악의 후보를 걸러내는 행사다 (최악의 후보를 걸러내지 못 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지만). 따라서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 도덕성이나 자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요즘 정치권에서 안철수가 가장 많은 초점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도덕적으로 완벽해서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정치인도 아니고 대선출마를 선언하지도 않은 그가 대권후보로 인기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렇기에 새누리당은 안철수를 향해 연일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소위 정당이, 그것도 정권을 쥔 여당이 모든 정치활동을 한 자연인을 향한 공격에 집중하는 게 공당으로서 올바른 일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물론 안철수는 잠재적 대권후보고,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 그 자신은 대선에 나오겠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안 나올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그런 안철수를 보고 반대자들은 그가 간을 보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이미 출마결심을 했고, 출마 스케줄에 따라 출마선언을 할 것 같다. 출마선언의 시점은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이기 때문 전략상 가장 적합한 때로 맞췄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가능한 늦추는 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