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동북아시아의 조선, 청나라 그리고 일본의 막부세력에게 닥친 '개방'이라는 역사적 시련에 대하여 세 나라는 각각 다른 이유 때문에 쇄국을 하거나 개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결정하게 된 요인은 '자신감' 또는 '두려움'이었다.

청나라가 쇄국하게 된 것은 두가지의 역사적 사건, 한문을 엉터리로 배운 엉터리 통역사 홍임휘(洪任輝)라는 영국의 젊은이가 벌린 두 번의 헤프닝, 특히 두번째 벌린 헤프닝 때문이었다고 역사는 기록되어 있는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당시 청나라의 황제 건륭제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짐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교역이라는 것이 서로 필요한 것을 사고 파는 것인데 '자신이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굳이 교역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니 역사적 헤프닝과 맞물려 청나라는 쇄국을 하게 되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쇄국정책과 맞물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나 청나라의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서 쇄국정책을 택하게 된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쇄국과 개방 양쪽 다 두려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쇄국을 고집하다가 미국의 페리 장군의 무력에 굴복하여 개방을 하게된 일본은 물론, 메이지라는 걸출한 왕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서양의 속국이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서양문물을 배우면서 당시 열강의 한 축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런데 '쇄국을 견지했던 정치적 세력'과 '개방을 주장했던 정치적 세력'. 이 동북아시아 세 나라의 각각의 정치적 세력 중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최근의 역사해석에 있어서 구한말의 '쇄국파'와 '개방파'에 대한 논란 중에는 '수구 세력'은 오히려 '개방파'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 어느 한쪽을 일방 비난하는 것은 역사 해석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가장 확률이 높는 선택이다.



내가 '쇄국과 개방'의 역사를 짧게나마 기술한 목적은 바로 북한의 카바나이트라는 공법과 남한의 원자력 발전을 '쇄국정책'이라고 네이밍 했기 때문이다. '원자력 찬성론자와 가면을 쓴 원자력불가피론자들'이 '에너지 쇄국정책'이라는 표현에 발끈할 염려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역사에 있어서 언제나 '잉여집단'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편성에 있어서는 맞지만' 환경지상주의에 함몰한 일부 환경론자들도 포함된다.


단지, 환경론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 잠깐이나마 '어느 쪽이 보다 더 타당하고 진실에 가까울까?'라고 고민했던 분들이 '원자력발전'을 쇄국정책이라는 표현으로 쓴 것에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실 분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라고 설명하기 위해서다.




'환경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논란'은 쇄국과 개방이라는 역사적 선택의 직면했던 당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환경과 효율'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논점을 오해하지 마시라. 논점은 '환경과 원자력 발전'이 아니다. 논점은 '환경과 효율성'이다.


진실한 원전불가피론자들도 환경을 걱정한다. 진실한 환경우선주의자들도 효율을 판단한다. 단지, 방점을 어디에 찍을 것인지의 문제 때문에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란은 두가지이다. '원전은 더 지을 것인가?'와 '원전은 안전하고 철저하게 판단되고 관리되고 있는가?'이다. 원전불가피론자들은 원전의 효율을 환경론자들은 에너지 소비의 효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원전불가피론자들이나 진실한 환경우선주의자들이 같이 고민하는 것은 미래 에너지 수급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진실한-이하 생략)원전불가피론자들은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원자력발전소의 방법을 보다 더 안전하고 효율이 높게 개발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다. 반면에 (진실한-이하 생략)환경론자들은 새로운 모험을 주저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 것은 내가 과거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 무상의료 정책'을 지지했지만 그 실천 방법에 있어서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이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금 탈루율이 저렇게 높은 상태에서 '무상교육, 무상의료정책'을 시행했다가는 국민들의 세부담만 훨씬 가중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즉, 주장하는 바가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하는 바의 목적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며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환경론자의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실천과제는 의외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것 이외에 사회의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패지수가 세계의 상위에 링크된 우리나라, 그리고 생산성이 미국의 50% 일본의 70%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소비의 효율을 높이는 문제는 어쩌면 원자로 하나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점들을 뜯어 고쳐야할지도 모른다. 원전불가피론에 숨겨져 있는 함정 중 하나다.


원자력 발전에 관련된 논란에서 내 판단을 또 한번 부언하자면, 자본력에서도 현저히 열세고 기술력에서도 뒤쳐진 대한민국은 한발짝 뒤에서라도 국제적 추세에 맞추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케케묵은 매판자본론을 잠시 부활시켜 주장하자면,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대책을, 이미 기득권자들인 재벌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특히, 전기에 있어서는-설사 외국에 전기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고 하더라도-공급과 수요가 localization의 성격이 짙으므로 재벌들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 방식에 대하여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물고 그 로열티를 실수요자인 국민들에게 떠넘기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삼성에 대한 비야냥 중 하나였던 '또 하나의 가족, 로열티'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설마,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적겠지만, 만일 '재벌은 아쉬운 것 없다'라는 것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는 지금 원전의 효율이 가장 높다라는 확신과 그에 따른 게으름은 미래에 우리가 지구촌 국가에서 가장 비싼 전기료를 내고(지금도 전기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


이런 미래가, 만일 현실화된다면, 백년이나 이백년 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개발의 추이로 볼 때 20년 후에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 에너지 대책에 대한 게으름에 대한 아주 극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우리가 체제 경쟁을 했던 북한이다. 지금의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가 바로 에너지 공급 정책에 대한 북한의 자만심과 그 자만심으로 인한 체제 경쟁에서의 탈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우선, 사진 한 장을 보자.

충주비료공장.gif 

아마, 386 세대라면 4학년 사회과목에 깨끗한 이미지의 충주비료공장의 사진이 게재된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이 충주비료공장은 이승만 정권 때 완공되어 516 군사쿠테타 직전인 1961년 4월 29일부터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 북한과의 체제 경쟁의 상징 중 하나였던 이 충주비료공장. 그러나 충주비료공장은 북한이 당시 세계에 자랑하던 '섬유 카바나이트 공법'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것이다. 북한은 이 '섬유 카바나이트 공법'을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1인당 GNP도 1971년까지 북한이 앞서있었다.


그런 북한의 우월감은 DJ정권 당시인 2001년 금강산 대토론회에 참석했던 민화협 사무처장인 이승환이 작성한 기고문에 의하면 1978년에 절정을 달한다. 1978년에는 훗날 지구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역사가 있었다. 그 것은 '모택동의 정신은 계승하고 오류는 수정한다'는 등소평의 실사구시, 흔히 '흑묘백묘(黑猫白猫論)' 주장이다.


이승환의 기고에 의하면 1978년 이전까지 북한은 당시 중공에 비하여 체제적 우월성이 뚜렷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까지의 북한은 중공에서 배우되, 그들이 새로운 (정치적)정책을 실시하면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문제점과 오류'를 수정해서 북한 체제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78년의 등소평의 실사구시 정책 선언 이후 북한은 고립주의를 선택하게 되었다. 만일,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에 자신감이 없었다면 고립주의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하게된 이유는 바로 체제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 것은 마치 한국의 IMF 사태 전후해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 말레이지아의 당시총리가 IMF 권고안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미국을 'technically bankrupt(장부상 부도)'라고 맹공을 했던 이유가 '화교 상권이라는'-혹자는 말레이지아의 천연자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버팀목이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개방과 쇄국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 다른 길은 바로 체제 경쟁의 상징인 충주비료공장과  섬유카바나이트 공법의 미래와 맞물려 있다.


사실, 충주비료공장과 섬유카바나이트 공법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전기 잡아먹는 귀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은 수년 후에 새로운 방식의 비료공정을 도입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한 반면 북한은 섬유카바나이트 공법을 포기하지 않고 고수하다가 전기가 부족해 연변에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원자로를 건설하다가 미국에 '찍혀' 그 후에는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봉쇄' 당하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누가 알았겠는가? 구한말의 쇄국파와 개방파의 심한 갈등이 나라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북한이 세계에 자랑하던 섬유카바나이트 공법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아 체제 파멸의 장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중국 역사 상 가장 훌륭한 성군 중 한 명인 강희제 당시의 태평천국이 오히려 백성들이 일을 하기를 싫어하고 게을려졌고... 그 것이 오늘날 일하기 싫어하는 중국 국민성의 토대 중 하나가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나라 역사 상 최대의 성군이라는, 백성들을 사랑했다는 세종대왕이 부민고소방지법이라는 것을 제정한 것이 훗날 조선 지방관료들의 토색질의 단초가 되어 백성들이 수많은 고초를 당하고 결국 조선이 망하여 백성들은 이중고에 오랜 시간 동안 신음할 것을 말이다.


북한의 체제 우월감에서 비롯된 파멸. 대통령을 필두로 원자력발전이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라는 마술에 빠져 세계의 대체 에너지 찾기 주류에 참여하지 못하고 원자력발전이 최선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훗날, 우리 후손들이 우리에게 가장 무능했던 시대라고 비판할지 그 누가 알겠는가?


 10년 뒤에 인류의 생명을 30년 늘려주고 20년 후에 인류의 노화의 비밀이 완전히 풀려 인류는 어쩌면 영생의 길을 찾을지 모른다는 의학보고서에 의하면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오거나 아니면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깨어보니 신데렐라가 되어 있다'라는 표현처럼,  현실이 가장 최적의 방법이라는 생각에 빠져 보다 나은 대안을 찾는 게으름을 부리는 순간, 어느 날 문득 보니 다른 나라들은 원자력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발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역사에서 쇠퇴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가 예산의 사용처를 판단해본다면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예산 배정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니 인류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굴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


'누가 알겠는가?'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책은 현재에 대안들을 최선을 다해 찾는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이미 우리는 한참 늦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에 안주하여 미래의 경우의 수가 발생시킬 위험도를 높이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 가능성을 미리 포기한다면 아마 현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만큼 위험도를 높이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최선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현실에 안주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그로 인한 게으름은 항상 비싼 댓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 : 충주비료공장의 역사는 여기를 클릭 : http://www.ytn.co.kr/_pn/0422_201004282133342717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