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에 대한 DJ책임론, 그 사실과 허구를 '일부' 밝혀본다.


 

크게는 두가지일 것이다. YS의 DJ에 대한 비난과 1998년 1월 1일 악덕기업주 소로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DJ를 국빈 방문했다는 것.  1992년 헤지펀드를 결성하여 영국의 파운드를 공격, 불과 일주일만에 10억달러의 차익을 챙긴 소로스는 워렌버핏과 같은 '종류'인데 악마와 천사로 대비되어 인구에 회자된다. 물론, 두 사람 다 천민자본주의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유태인 출신이라는 것이 흥미롭지만 말이다. 당연히 소로스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워렌 버핏..... 그의 사회적 신념은 존경받을만한 것은 맞는데 그가 돈을 버는 동안... 그 누군가는 돈을 잃고 깡통게좌를 차지 않았을까?

전자는 IMF의 DJ책임론으로 후자는 DJ가 해외 악덕자본가들의 주구가 되었다는 맹비난의 소재가 되는데 한번 살펴보자.


 

각설하고....



 


 

시간 관계상  자료를 캡쳐하여 그림으로 올린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추가적인 정보와 함께 '신화와 비방에 휩쌓인 IMF의 베일을' 함께 풀어보자.(정말? ^^)


 

IMF와 김영삼.gif




세바스찬 말라비 저/김지욱, 이선규, 김규진 공역, “헤지펀드 열전“, 첨단금융출판사, 2011/p297-300/한국에서의 소로스
 
1997년 11월 중순에 로드니 존스Rodney Jones는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한 은행을 방문하면서 회의실이 태국기업의 자금조달 주선을 해 주고 받은 기념패들로 차 있음을 발견하였다. 존스는 차주인 기업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붕괴하였음도 알고 있었다. 그가 태국 차주들의 연체율을 질문하자 총 50%가 넘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다른 방문처로 이동하면서,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태국의 붕괴로 인해서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치명적 손상을 받았으며, 달러 부족분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조사를 더 하여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여 은행들에게 예금해 줌으로써 혼란을 수습하려 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충격적인 소식으로 이어졌다. 5개월 전에 태국 중앙은행이 그랬듯이 한국은 행도 시장을 오도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외환보규고는 570억달러였다. 그러나 손상된 은행들에 대한 지원 및 선도 시장에 약정해 준 금액을 제외하면 실제 수치는 200억달러에 가까웠다.
 
로드니 존스는 태국에서 돈가방을 보았던 것에 상당하는 상황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기 이전 보름 동안 원화는 달러 대비 4% 하락하였고, 주가지수는 약세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한국은행이 보유 외환의 2/3을 이미 소진하였다거나, 한국이 파라가가 태국에서 예측하였던 그러한 종류의 전면적인 은행 및 외환 위기의 중간에 들어서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불과 한 달 전에 IMF는 한국 경제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를 완료하였고, 한국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위기로부터 면역성을 가졌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로드니 존스는 11월 17일 소로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IMF가 잘못 평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이 위기의 성숙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외채에 대한 공식적이고 널리 신뢰받던 통계는 실제 부채보다 600억 달러나 과소 계상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중 대다수가 몇 주 내에 만기 도래할 것이었다. 재앙적인 붕괴가 임박해 있었다.(퍼온이 주(한그루) : 내가 몇번 한국 IMF가 터지자 해외에서 '이렇게 엉터리 통계를 가지고 나라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오히려 경탄할 정도'라고 언급했던 이유이다. 소로스도 한국의 엉터리 통계 때문에 'Just in Time'을 놓친 것이다.ㅋㅋㅋ)
 
다음 한 달 사이에 로드니 존스의 메모는 예지력을 발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보고서가 뉴욕에 도달한지 9일 후에 IMF의 아시아 최고 담당자가 긴급 의무를 띠고 서울로 향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회의실로 안내 받은 후 외환 보유고가 매일 10억 달러씩 줄어들고 있으며, 잔고는 90억 달러에 불과한 상태임을 발견하였다. 로드니 존스가 보고한 대로 한국 차주들의 달러 차입이 대부분 단기물이었고, 자본이탈 속도는 외환보유고를 즉각 고갈시킬 것이었다. 12월 3일에 IMF는 IMF 구제금융으로 최대 규모인 550억 달러를 황급하게 마련하여 한국에게 대출하였다. 그러나 민간 부문의 달러 차입 규모가 그 두 배에 달하였으므로 구제금융은 충분하지 못하였다. 12월 말이 되자 원화는 로드니 존스의 11월 17일 보고일 환율 대비 60% 하락하였다.
 
그러나 로드니 존스의 특별한 보고로 인해서 소로스 팀이 얻은 것은 정확히 아무 것도 없었다. 11월 17일 보고서의 강력한 논조 및 로드니 존스의 다음 날 추가 보고에 불구하고 원화를 매도하여 태국에서와 같은 이익을 취하려는 행동은 없었고, 그 이유는 불확실하다. 로드니 존스의 보고 시점에서 IMF의 고위층에서는 한국이 문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로 인해서 소로스의 팀이 다른 일에나 집중하라고 설득을 당했을 수는 있다.95) 그러나 소로스의 이중적인 모습이 이러한 기회이익 상실에 기여하였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 소로스는 국가를 흔드는 자가 아니라 정치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소로스가 한국에 관여를 했다면, 재난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구원자로서였다.(퍼온이 주 : 불과 몇 년 만에 영국 파운드를 악랄하게 공격했던 소로스를 생각한다면 이 부분은 저자나 또는 옮긴이가 잘못한 것이라는게 내 생각(한그루)이다)


 
소로스는 1998년 첫 날 한국으로 출장하였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초청객으로서 방문하였으며, 공항에는 사진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소로스는 김대중의 자택에서 같이 만찬을 나누었으며, 당선자를 다정하게 ‘DJ’라고 불렀다. 소로스는 산업계 지도자들과 만났으며, 한국의 부도난 내의 업체로부터 놀이공원을 인수할 구상을 하던 마이클 잭슨과 조찬을 가졌다. 소로스는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한국의 언론에게 거침없이 조언하였다. 그는 한국에 대해 부채를 부담시키는 IMF의 처방을 비판하였고, 회계 원칙의 개선 및 노동자 해고의 유연성을 포함하여, 산업과 금융 분야의 급진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였다. (퍼온이 주 : 결국, DJ가 YS 시절에는 금융개혁법을 반대하였다가 집권하자 악법 노동법을 심야에 날치기 처리한 DJ에 대한 아주 조그마한 변명의 구실이 되겠다.-이 것 때문에 호남네티즌들과 엄청 싸웠지. ㅎㄷㄷ) 그는 만일 한국이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한다면 자신의 퀀텀펀드는 상당한 금액을 한국에 투자할 것이며, 다른 서방 투자자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투자자들은 소로스의 선언에 한국 주식 매수로 반응하였으며, 한국의 코스피KOSPI 지수는 소로스의 방문 이후 10일간 1/4 상승하였다.96)
 
소로스는 한국에 대한 임무에서는 그 자신에게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했다. 그는 원화의 하락 시에 공매도할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그의 펀드는 다음해 10월까지는 한국의 반등에 대해서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 출장은 상이한 방식으로 보상을 해 주었다. 그의 방문에 대한 언론 보도로 인해 홍콩IMF 총회에서의 분위기와 필연적으로 대조되는 국면을 부각시켰다. 9월에는 한 아시아의 국가 원수가 소로스를 범죄자로 비판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아시아 지도자가 그에게 레드카펫의 대우를 한 것이었다. 마하티르와 김대중 간의 비교를 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 소로스는 미소로 답변하였다. 그는 “두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라고 언급하였다.



 

열린사회’함께 여는 두 거인
김대중 · 소로스, 우정 돈독… 민주화운동 분야서 긴밀히 협조
 
 [430호] 1998년 01월 22일 (목)  정희상 기자(시사저널)
 
 
경제난 극복에 골몰하는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새해 첫 행보로 조지 소로스를 만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최선의 행보라는 찬사에서부터 개인 차원의국제 투기꾼을 너무 융숭하게 대접했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어떤 시각으로 이들의 만남을 바라보든 사람들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소로스는 한국의 국가 위기와 상관없이 만날 수 밖에 없는 사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국제 사회에서‘공동 작업’을 해온 사이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소로스의 인연은 80년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철저한 국제 자본 투자가인 소로스가 일반적인 자본가들에 비해 다소‘색다른’길을 걸은 것은 영국에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를 펴낸 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고서 부터였다. 포퍼의 영향을 받은 소로스는 이후 벌어들인 돈으로‘열린사회재단’을 창설해 소련과 동유럽에 인권과 자유 시장 경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퍼온이 주 : 그러고도 1992년 악랄한 영국 파운드 공격으로 10억달러를 챙긴 소로스를 생각한다면 이 기사는 소로스와 DJ에게 너무 온정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반인권적인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던 소로스가 신군부의 탄압으로 81년 미국에 망명한 김대중씨를 눈여겨 본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미국 망명 시절 김대중씨는 열린사회재단의 각종 회의에 초대받는 등 소로스와 교분을 쌓아왔다.


 

 이후 그가 귀국하고, 한국정치 역정이 구비치는 상황에서, 소로스의 이념과 유사한 DJ의 국제교류활동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새로워졌다. 92년 대선 실패 후 DJ가 정계를 떠나 설립한 아태재단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세계평화와 한반도 통일 문제 연구에 전념하던 DJ는 아태재단 산하에 아태민주지도자회의를 결성해 아시아는 물론 동유럽 각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활동 영역이 소로스의 활동 영역과 중첩되면서 두 사람이 이끄는 재단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연대의 폭을 넓혀나갔다. 소로스는 아태민주지도자회의가 국제행사를 열 때마다 적잖은 후원금을 보내곤 했다.(퍼온이 주: 역시나, 독재국가들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런 악덕자본가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조국이 민주화가 되면 말 그대로 금노다지 캐는 금광이니 말이다. 따라서 이 것도 선의로만 해석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체코와 미얀마는 DJ와 소로스가 공동으로 민주화 지원활동을 벌인 나라이다. (퍼온이 주 : 위에  언급한 것처럼... DJ야 당연히 선의의 판단이겠지만 소로스는 과연 선의의 판단만이었을까?) 하벨 대통령과의 우정을 바탕으로 체코 민주화 기념단체인‘77그룹’공동 발기인이 된 DJ와 소로스는 지난해 1월 체코에서 열린 77그룹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 각각 기조 연설자로 초청받기도 했다. 또 미얀마 민주화 지원 기금으로 해마다 수천만 달러를 쓰는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은 아태민주지도자회의와 함께 공동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DJ가 국난에 처한 한국의 통치권자가 됨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은 새로운 시험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丁 壹相 기자 
 

참조 : 알려진 재산가들 중에 역대 제 1위는 미국 석유왕 록펠러이다. 그 록펠러..... 사후에 많은 록펠러 재단을 만들었지만 그 록펠러 재단으로 인하여 과연 록펠러가 존경받을만한 부자였는가.................? 각자 판단해 볼 일이다.

자세한 설명가 추가 정보는 나중에....... 지금 쪼께 바빠서.... ^^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