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강님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고 참으로 인간적인 분이라는거 느끼는데 좀 심한 이야기 좀 하죠. 님은 개신교에 대하여 세뇌를 당하다시피 했어요. 정말, 님과 개신교 논쟁을-논쟁도 아니라 그냥 의견 교환이지만-하다보면 다른 분야에서는 참으로 좋은 의견들을 많이 내시는 분 맞나? 싶을 정도로 꽉 막혀 있으니까요.

 

그 중 전혀 거꾸로 알고 계시는 천주교와 개신교..... 실례되는 표현입니다만, 도대체 어느 목사에게 세뇌 당했는지 궁금하군요. 내가 천주교 신자라서가 아닙니다. 흐강님의 잘못된 지식에 대하여 화가 난 것도 아닙니다. 님같은 분들을 세뇌시키는 정말 새끼라는 '표현'을 붙일 수 밖에 없는 한국 개신교 목사들 때문입니다.

 

절대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천주교는 포기함으로서 최소한 개신교보다는 다원주의에 한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무슨 뚱딴지 같은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자, 님도 '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의미는 아실겁니다.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라는 의미인데 아래 발췌글은 어느 아주 유명한(인터넷에서) 목사를 내가 심하게 비판하자 다른 목사님이 회원으로 가입, 제 블로그에서 트랙백으로 반론을 하시길래 제가  재반론한 것 중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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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리 상의 가장 큰 차이는 '믿음'과 '선행'인데 천주교는 '선행'을 제일 덕목으로 삼으면서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 개신교)는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 속의 두 사실,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1970년 (주로 개신교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갈려집니다.



그 이후로 개신교는 배타주의(exclusivism-저는 이 것을 이슬람과 비교를 하면서 maximalism, 즉 근본주의라고 해석을 했습니다만)를 표방하고 천주교는 포용주의(inclusivism)의 길을 갑니다. 세한 내용은 더 잘 아시리라 믿고 그 상세는 생략하겠습니다만 천주교의 포용주의 역시 기독교의 절대신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서 훗날 종교 다원주의(pluralism) 학자들에게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함께 비판을 받습니다.

 

(중략)

 

과연 가능할까요? 한국 개신교에서? 제가 종교적 논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유이고 님의 친절한 노력에도,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회의적인 이유입니다. 그나마 바램은 다원주의를 주창한 종교학자 맥스 뮐러의 말을 개신교(및 천주교) 신자들이 그 의미를 알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He who knows one, knows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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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