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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탈린그라드 전투(주*1)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이탈리아와 일본이 주축이 된 '주축국 연합'에 계속 고전하던 영국, 미국 그리고 프랑스가 중심이 된 연합군이 전쟁의 흐름을 역전 시킨 계기가 된 전투가 세 개 있다고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 첫번째 전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드웨이 해전'이다. 미드웨이 해전은 전투에 참여한 미군의 전력이 일본군에 비하여 현저히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승리하였고 이후 태평양에서의 해상권을 미국이 거머쥐는 계기가 되게 한다.


두번째 전투는 '사막의 여우'로 우리에게 친숙한 독일군의 롬멜에게 '사막의 생쥐'로 불리운 몽고메리가 승리를 거둔 '알 알라메인 전투'이다, 이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서 자원의 보고인 중동 지역을 수호할 수 있었다.


세번째 전투는 소련의 독재자로 유명한 '스탈린'과 러시아어로 '길거리'라는 이름의 '그라드'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된 스탈린그라드이다. 지금은 볼고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스탈린그라드에서 러시아군은 독일군에게 극적으로 승리를 한다.


독재자 스탈린과 또 다른 독재자 스탈린의 자존심 싸움으로도 유명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동부 전선에서 계속 밀리던 소련이 추스릴 시간을 주었으며 그 이후 소련의 반격이 시작이 된다. 독재자 스탈린은 이 승리가 얼마나 기뻤는지 도시 이름 자체를 자신의 이름을 딴 '스탈린그라드'로 명명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의 흐름을 연합군 쪽으로 바꾸게 했다는 의의 말고도 최소한 두가지 점에서 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흥미를 준다.


첫번째는 우리가 군대에 입대해서 각개 전투 시간에 배우는 '시가지 전투'가 이 전장에서 처음 선을 보인다는 것이다. 소련군은 다락방에서 독일군은 거실에서 총싸움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전투 방식은 그 이후로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발전해 왔다.


두번째는 그동안 군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소련군을 현대적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전에는 소련군은 장교조차도 그 복장이 서로 틀렸다고 하니 소련군의 낙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데 냉전 시절의 우리가 영화나 기록 사진에서 보는 소련군 복장은 이 스탈린그라드 이후에 제정된 것이라고 한다.



스탈린그라드 전쟁은 그동안 여러 전투에서 연속적으로 참패를 해서 소련(러시아) 국민들의 구겨진 자존심 및 애국심을 일거에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스탈린이 그렇게 철혈독재를 오랜 기간 동안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리를 통한 소련 국민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 러일전투


1905년 5월 28일, 서유럽의 신문들의 톱기사로 일제히 '세계 최강의 러시아 발틱부대가 일본에게 참패하다'라는 뉴스를 보도했다. 그만큼 러일전투 중 대한해협에서 일어났던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 함대와 일본의 함대가 격돌은 세인은 물론 군사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전번인 학익익진법을 응용 구사한 일본 함대에, 당시 세계를 제패한 영국을 러시아에서 제압할 정도로 세계의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발틱함대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일본은 일약 열강의 반열 위로 오르고 러시아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3. 탄넨베르그 전투


러일전투에서 망신을 당한 러시아 군대에게는 십년이 채 안지난 1914년 또 다른 망신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것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싸운 탄넨베르그 전투이다
.


이미 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는 당시 열강들의 군대에 비해 '현대화 되지 못한' 오합지졸의 성격을 띄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탄넨베르그 전투에서의 독일에의 참패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투의 결과를 낳는다.


전투에서 지휘관과 작전이 전투의 승리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무능한 지휘관 및 무모한 작전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탄넨베르그 전투에서 삼소노프 장군과 란넨캄프 장군은 서로 협동을 하지 못하고 반목한 결과 백만이 넘는 러시아 군을 몰살시키는 참패를 낳게 한다.


4. 사라진 애국심 그리고 레닌의 10월 혁명

러일전쟁의 참패에 이은 탄넨베르그 전투에서의 참패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애국심이라는 것을 앗아가 버렸다. 이미, 유럽에서는 가장 낙후된 나라 중 하나인 러시아에서 러시아 국민들은 그나마 남은 애국심이라는 것을 두 전쟁의 참패에서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틈을 타, 1917년 레닌은 10월 혁명, 그러니까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지구촌에서 처음으로 맑시즘을 정권의 기반으로 하는 공산정권을 세운다.


5. 왜,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낙후되었을까?


유럽 국가들 중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토양을 역사적 투쟁을 통해 길러왔다.


영국의 경우에는 '마그나 카르타'를 기본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내분과 혁명을 통해 시민 의식이 발달했으며 그 결과 유럽에서 포르투칼-스페인=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었다.


반면에 프랑스는 수많은 계몽학자들의 계몽에 의하여 시민의식이 성장을 하였고 그 결과 루이 13세부터 이어지는 전제정치를 타파하고 결국 프랑스 혁명을 통해 시민 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어쩌면 독일이 히틀러라는 독재자에게 국민들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역사에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처럼 역사를 시민들이 이끌어 왔던 것과는 반대로 반대로 독일은 19세기 중반까지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독일은 '철혈재상'이라는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황제 등 지배층에서 '민족주의'를 제고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을 단결시켰고 그 결과 일약 서구의 강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런 서구 유럽과는 반대로 러시아는 나라 설립부터 봉건제를 도입하였고 시민의식이 낙후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설립이 동로마제국이 망하면서 그 제국의 왕자가 탈출하여 세운 나라가 러시아이고 따라서 러시아는 처음부터 종교적 색채와 봉건적 색채를 띄고 나라를 건립하게 된다.


6. 카테리나 여제


이러한 러시아의 낙후에 러시아의 개혁을 서두른 것이 바로 카테리나 여제이다. 카테리나 여제는 러시아의 발전을 위하여 당시 서유럽 각국에서 학자와 문인을 초빙하여 선진 문화를 수입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 디드로도 초빙 인사 중 한명이었다.


디드로....


영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백과사전을 프랑스어로 편찬하는 작업을 하다가 두번이나 감옥에 투옥되기도 한 프랑스의 계몽학자 디드로가 편찬 완료한 백과사전과 그의 계몽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유명한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는데 문제는 디드로가 유물론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카테리나 여제는 이 디드로를 초빙 인사 중 추방시키려고 작심을 했지만 정작 본인이 추방시킬 경우 다른 초빙 인사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를 내세웠다.

 

7. 권위에의 논증과 유사권위의 논증


논리학에서 '권위에의 논증' 방법이 있다.


'권위에의 논증'은 자신의 주장의 합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방면의 권위자 또는 권위있는 기관을 인용하는 것인데 이 때 발생하는 오류를 '권위에의 논증 오류'라고 한다.


반면에 '유사권위의 논증'은 예를 들어, 유명한 탈렌트에게 의사 가운을 입힌 다음 시청자에게 어떤 의약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광고에서 탤런트의 인기를 권위로 환치시켜 결국 의사의 권위를 유도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오류인 논증 방법이다.


8. 권위에의 논증 또는 유사권위에의 논증 때문에 바뀐 역사


유물론자인 디드로는 카테리나 여제 앞에서 오일러와 신학 논쟁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논쟁에서 오일러가 낸 공식이 이 글 처음에 보인 공식이다.


수학에서는 엉터리 수학 역사의 유래라고 불리워지는 이 오일러의 엉터리 공식을 내놓은 오일러는 대수학자답게 기침을 한번 하고는 디드로에게 논증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계몽학자인 디드로는 대수학자인 오일러의 명성과 권위에 눌려 처음보는 이 공식에 겁을 먹고는 줄행랑을 친다.


사실, 디드로는 수학을 따로 공부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수학에 나름대로 식견이 있었다. 그런데 오일러의 '권위'와 너무도 이상한 공식에 그만 기가 질려 줄행랑을 쳐 자신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간 것이다.


만일 그 때 디드로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오일러의 공식의 의미를 차분히 따져 물었다면 신의 증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엉터리 공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디드로는 러시아에 계몽 사상을 널리 전파하여 러시아가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이 될 사태는 면했을 수도 있다.


결국, 디드로는 수학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운 오일러의 명성에 눌려, 또는 수학자와의 권위와는 전혀 관계없는 공식을 오일러의 권위에 눌려 패한 것이니 '권위에의 논증 오류' 및 '유사권위의 논증 오류'에 패배한 것이다.

디드로가 줄행랑을 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러시아는 최소한 더 현대화된 군전력으로 인하여 러일전쟁에서의 승리 내지는 탄넨베르그에서의 승리를 했을 터이며 그 결과, 레닌이 혁명을 일으킬 여지는 없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레닌의 혁명은 스위스 수학자 오일러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Who knows? God only knows.



주*1 ) 여기서 나오는 전쟁사들은 지금 책이 없어져 저자 이름은 기억을 못하지만 육사 교수가 쓴 '역사를 바꾼 현대사 100선'에서 읽은 것을 기억해서 쓴 것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