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진화한 심리 기제가 망가졌다면 오작동할 수 있다. 사람의 뇌에 철봉이 박히거나 치매에 걸리는 경우 뇌가 망가진다. 이 때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마약이나 알코올 때문에 뇌가 일시적으로 교란되어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이런 뻔한 오작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상적인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작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수컷 새를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종의 암컷과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서 수컷 앞에 놓으면 수컷이 그 암컷과 교미를 하려고 기를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수컷의 뇌에 철봉이 박힌 것도 아니고 치매에 걸린 것도 아니고 술이나 마약을 한 것도 아니다. 그 수컷의 뇌는 정상이며 어떤 면에서는 아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번식의 측면에서 보면 헝겊 조각으로 만든 모형과 짝짓기를 하겠다고 애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 새 수컷의 뇌 속에 있는 짝짓기 관련 심리 기제의 진화론적 기능은 같은 종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지 모형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 심리 기제의 목적은 번식이지 과학자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오작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때로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모형이 그 종의 암컷과 너무나 달라 보여서 수컷 새가 정말 바보 같아 보인다.

 

 

 

뻐꾸기는 다른 종의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그러면 그 둥지의 새는 졸지에 뻐꾸기 새끼의 “양부모”가 되어서 열심히 키운다. 이 경우에도 그 양부모의 뇌 속에 철봉이 박힌 것도 아니고 술을 한 잔 걸친 것도 아니다. 뇌는 정상이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위와 비슷한 의미에서 오작동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

 

그 양부모의 뇌 속에 있는 자식 사랑 관련 심리 기제의 진화론적 기능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을 먹여 키우는 것이지 뻐꾸기의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런 종류의 오작동을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TV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게 되면 군침을 흘린다. 남자들은 TV에서 젊고 예쁜 여자가 옷을 벗으면 발기를 하기도 한다. 군침이나 발기와 관련된 심리 기제는 먹을 수도 없는 TV 속 음식이나 섹스할 수도 없는 TV 속의 여자를 위해 작동하라고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TV 속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군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군침과 관련된 기제는 “TV 속의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생각과 관련된 기제와는 별 상관 없이 작동하는 것 같다.

 

 

 

대체로 어떤 심리 기제가 진화한 환경과 상당히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될 때 그 심리 기제가 오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모형과 교미를 하려는 그 새가 진화할 때에는 주변에 과학자들이 없었다. 인간이 진화할 때에는 주변에 TV가 없었다.

 

뻐꾸기 양부모의 경우에는 자신의 둥지에서 뻐꾸기 새끼를 만날 확률이 매우 작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격 기제를 제대로 진화시키지 못한 듯하다.

 

 

 

나는 인종주의가 이런 종류의 오작동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조상은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게 살았던 것 같다. 양쪽 모두 집단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집단 간에 심각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진화했다면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분하고, 다른 집단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증오하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많이 쓰는 표현에 따르면 외부인 혐오(xenophobia, 외부인 공포증)가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 혐오와 우리 집단에 대한 충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집단-사랑 기제와 다른-집단-증오 기제가 현대 사회에서는 애국심,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의미에서 오작동이다. 그런 기제의 진화론적 기능은 가까운 친족들로 이루어지진 수십 명 규모의 자기 부족에 충성하고 다른 부족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친족 선택의 관점에서 볼 때 자기 민족 구성원과 다른 민족 구성원을 나누는 것, 또는 자기 인종 구성원과 다른 인종 구성원을 나누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친족 관계가 등차 수열을 이룰 때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는 등비 수열을 이루기 때문이다.

 

2(형제자매)의 근친도: 1/2 = 0.5

4촌의 근친도: 1/8 = 0.125

6촌의 근친도: 1/32 = 0.03125

8촌의 근친도: 1/128 = 0.0078125

10촌의 근친도: 1/512 = 0.001953125

12촌의 근친도: 1/2048 = 0.00048828125

......

(모든 형제자매는 full sibling이며 아무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10촌이 넘는 친척의 경우에는 그 친척을 도와도 자신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민족 또는 국가 또는 인종의 사실상 모든 구성원은 10촌이 넘는 지극히 먼 친족 관계여서 사실상 친족이 아니다.

 

 

 

근친상간은 유해 열성 유전자(deleterious recessive gene)로 인한 유전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이 때문에 근친상간을 회피하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진화한 듯하다.

 

이 때에도 근친도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관습 중 하나였던 동성동본 금혼은 비슷한 이유 때문에 적응적이지 않다. 동성동본이지만 10촌이 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근친도가 너무 낮아서 유해 열성 유전자 때문에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동성동본이 아닌 사람의 경우와 사실상 다를 바 없다.

 

10촌이 넘는 친족은 사실상 친족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근친도가 낮다. 따라서 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포괄 적합도에 사실상 도움이 안 된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해도 자식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사실상 높아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분류하여 감싸도록 만든다. 또한 근친상간 금혼은 그런 사람들을 “친족”으로 분류하여 결혼을 금한다. 인종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외부인 혐오 기제와 만나게 되듯이 동성동본 금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근친상간 회피 기제와 만나게 될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오작동은 진화론적 기능에 비추어볼 때 오작동이라는 말일 뿐이다. 나는 “인종주의가 오작동이기 때문에 나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친족이 아닌 아이를 입양해서 정성껏 돌보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의미의 오작동이다. 하지만 누가 이런 고귀한 행동을 오작동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겠는가?

 

내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는 진화론적 설명(정확히 말하자면 “가설”)과 상관이 없다. 인종주의가 진화한 심리 기제가 작동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인종주의가 진화한 심리 기제가 오작동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덕하

201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