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나 강성 야권지지자들 입장에서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어쩌면 전두환이 미친척 대선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일 것 같습니다. 런닝맨들이 영남친노들을 비판하는 주된 혐의가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했다 혹은 복무했다" 인데, 영남패권 잔당도 아니고 영남패권주의 그 자체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모습은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운 일인 것이 사실이죠.

제가 지난번 총선 때 '차라리 새누리당이라도 찍자' 면서 호남의 역투표론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노들의 전횡을 막기 위한 극약처방의 차원임을 분명히 밝혔었죠. (저는 여전히 당시의 제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친노들의 전횡을 막는 것도 결국은 영남패권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으로 생각돼서이지, 만약 이것이 뒤집히면 수단과 목적이 되바뀌는 낭패가 될 수 있죠. 마치 정규직노조가 밉다 해서 전경련에 박수쳐주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박근혜 지지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논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쇠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어음과 돼지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현찰"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거라고 봅니다. 사실 런닝맨들이 민통당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도 결국은 "쇠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는 현찰"을 보여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친노들에게 장악당한 민통당이 내미는 건 그냥 어음도 아니고 '부도가 거의 확실한 불량'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새누리당이 내미는 약소한 현찰앞에서 고민스럽지 않다면 솔직하지 못한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박근혜를 지지해? 너 수구 ㅅㅂ'하고 편하게 내뱉을 수 있는 단순무식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요즘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의 화두에 나름 진정성있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해서, 그게 얼마나 신뢰성 있는 것일지 믿기지 않습니다. 마치 삼성그룹 비서실이 공정 사회를 부르짖는 꼴을 구경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저는 새누리당의 정체에 대해서 "전경련 여의도 출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솔직히 박근혜가 내미는 현찰은 '위조지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즉 김종인이 아니라 이한구가 새누리당의 본 모습인거죠. 결국 "불량어음과 위조지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이번 대선때 호남이 처한 딜레마입니다. 아마도 이대로 진행되면 호남의 결속도 과거와 비교해 현저하게 떨어지리라 예상합니다. 정동영 당시보다 더 떨어질거에요.

어찌돼었든, 현재 분위기로는 내년 2월에 박근혜가 취임선서를 하는 꼴을 구경하는건 90% 이상의 확률로 현실화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남은 시간동안 민통당이 '쇠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현찰'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면 아직은 해볼만한 게임일텐데 그런 기대는 애저녁에 접었습니다. 안철수에 기대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은데, 문국현2가 바로 안철수가 보여줄 수 있는 맥시멈이죠. 보나마나 '나를 추대하라'면서 찌질대다가 판 접을겁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반전의 계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죠. 오로지 "경기 불황에 여당이 승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선거의 법칙만이 유일합니다. 그마저도 지난 총선 패배에 뭔가 교훈이라도 얻은게 있어야 가능한거지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명박 5년 동안 참 지루하게 견뎠는데, 아무래도 5년을 더 견뎌야할 거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끔찍한 단어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괴로운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앞은 보이지 않네요. 오늘 박근혜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출마선언 했다죠?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한 장소를 골랐네요. 박근혜의 참모들 장난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