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패턴이 통제되는 원리원칙을 구하는 것이라 이전 글에서 일러두었습니다 예들어,
 어릴때 감정적으로 반응했을 일들이 나이가 들면서는 한번더 두번더 고려해보게 됩니다

 이는 감정적으로 반응해봤자 솔루션은 커녕 자기자신만 더욱더 답답해지는 '패턴' 에 대한 학습 때문이지요
 즉 결국, 그 일들에 대한 '이해' 는 감정적 반응을 통해서는 결코, 달성될수 없다는 원리원칙을 구하기에 이릅니다 이른바,
 실패의 패턴에 대한 이해를 달성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성적으로' 라고 강조해대지만 솔까말,
 이성이 절대적으로 도움되서가 아니라 감정적 반응보다는 손톱만큼이라도 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손톱만큼이 모이고 모여, 현상을 관통하는 패턴에 대한 원리원칙을 수집,
 수집된 원리원칙들에 대한 체계빌딩에 이르게 되지요

 그 빌딩 레이어의 겹이 두터워지면 두터워질수록 '이해' 의 폭/깊이가 제고된다는 것이고 소위, '진보'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오늘도 진보, 내일도 진보 ... ... 영원히 진보? 그 끝은 어디인가?

 진보의 의미를 모르면 진보의 '끝' 을 물어보는 어리석음의 늪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끝' 을 알고 싶어서 '이해' 를 통해 '진보' 하기 시작했나요?

 '끝' 을 알고 싶으면 그냥, 자살하면 됩니다
 그것만큼 '끝' 을 확실하게 알만한 방법론도 없지요

 우리가 매일 아크로에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는것 ... ...
 끝장을 내기위해 쏟아내는게 아니라 어제보단 더 이해된 오늘, 오늘보단 더 진보된 내일을 소망하기에 쏟아냅니다

 더 나아짐에 대한 회의, 더 진보됨에 대한 회의 ... ... '끝' 을 알려고 하는순간 더 나아짐과 더 진보됨에 대한 회의감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겁니다

 초지일관 더 나아짐과 더 진보됨에 정진하는 누군가가 그저, 어제보단 더 나아진 오늘, 오늘보단 더 진보된 내일을 소망할때 말이죠



 p.s. : '끝' 을 알려고 하는 제자신을 발견할때면 그건, 정말 '끝' 을 알고자 해서가 아니더랍니다
          다만, 현재가 무척이나 지루하고 지리하니까 '끝' 을 알려고 할뿐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