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념은 '효과에 대한 감각적 충격' 으로부터 탑재가능합니다

 
따라서 제스스로 또다른 개념을 탑재시키고자 한다면 제스스로 감각적 충격에 노출될만한 조건의 환경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방적 자세 또는, 행동반경의 끊임없을 확장은 상기, 또다른 개념 탑재를 실현시킬만한 방법론으로서
 잠재된 하이리스크는 필연입니다



 기득권 클라쓰에 대한 고정관념 중 가장 대중적인 그것이 바로,
 '기득권 클라쓰는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위해 개혁을 거부한다' 인데

 개혁을 거부하는것이 실은, 감각적 충격의 부재에 대한 대중의 그릇된 관심법 나부랭이에 불과함을 일러두면
 '기득권 클라쓰는 또다른 개념의 효과에 대해 감각적으로 충격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른 개념 탑재로서 '개혁' 의 필요성을 못느낀다' 가
 올바른 판단입니다



 첨언하자면,
 제3자가 또다른 개념 탑재로서 '개혁' 을 원하는건지 개혁을 빙자한 '나도한번 잡아보자' 로서 '쿠데타' 를 원하는건지 가름하고자 한다면
 전자는 기득권 클라쓰 자체에 대한 '열등감 또는, 분노' 를 품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기득권 클라쓰 자체에 대한 '열등감 또는, 분노' 를 품을수 밖에요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지요

 그둘이 '나도한번 잡아보자' 가 아니었다면 굳이, '쿠데타' 일으킬 필요성 못느낍니다
 진정, 또다른 개념 탑재로서 '개혁' 을 원했다면 국회의원 내지 사회 운동가로 살았겠지요

 그래서 그둘에게 '개혁' 의 수식어를 붙이지 못하며 실제로도, '않는' 겁니다
 그둘의 집권으로 인해 한국사회에 또다른 개념이 탑재되었나요?

 박정희의 트레이드마크인  '산업화' 의 개념은 일제시대부터 조선사회에 이미 탑재되었고
 전두환은 트레이드마크 자체가 없지요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산업화 실현'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며
 전두환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현상유지' 그이상 그이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