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표현에는 각자의 고유성/특수성이 녹아있습니다 이때,
 각자의 표현이 '우리의 표현' 으로 거듭나게하는 작업을 '객관화' 라고 하는데
 객관화의 대표적인 방법론이 바로, '정의(definition) 내리기' 입니다

 '정의' 를 받아들일때 A는 B다라는 정오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정의내리기' 가 아니라 '단정(decision) 짓기' 입니다
 그렇다면 '단정짓기' 아닌 '정의내리기' 이려면 어떠한 프레임으로 '정의' 를 받아들여야 하는가요?

 A를 B라고 하자라는 전제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별것없는 내용인데 제 스스로부터 자타의 '정의' 를 받아들일때 정오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여 왔었더군요

 이는 제게 '객관화' 의 개념이 부재해왔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디테일하게 설명드리자면,



 각자의 고유하고 특수한 담론에 생면부지의 타자를 초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의를 내립니다
 하지만 정의가 내려졌다고 해서 만인의 타자를 각자의 담론에 초대가능한것은 아닙니다

 정의를 구성하는 특정 개념 또는, 개념들이 타자의 문화권(=의식구조)에 부재하는 그것 또는, 그것들이라면
 그 문화권 내 타자는 결코, 그 정의를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예들어, 위생 개념이 부재한 아프리카 원주민의 문화권(=의식구조)에 예방접종에 대한 정의를 귀띔해주어봤자
 그것이 먹는것인가요? 라는 반응밖에 무어를더 기대하겠습니까?

 아마 그 원주민은 현대문명국가 위생시스템의 '효과에 의해 감각적으로 충격' 되지 않는이상 위생 개념이 탑재되기란 평생에 요원할 겁니다
 (모든 개념은 '효과에 대한 감각적 충격' 으로부터 탑재가능합니다)



 조선은 일본의 문물이 내뿜는 효과(들)에 대한 감각적 충격을 받고서야 비로소, '근대화' 라는 개념이 탑재되기 시작되었지요
 한그루님 ... ... 개념 탑재도 운칠기삼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