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한번 해볼까요?

우선 독립운동.

 

독립운동에 '양반상놈의 반상서얼이 있었다'는 것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양반 출신의 독립군이 상놈 출신의 독립군의 빰을 때리면서 '감히, 상놈 주제에 독립운동을 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어느 분이 대학원에서 석사연구논문으로 발표된 적이 있으니 구해서 보라..고 했는데 게을러서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런 사실들은, 안타깝게도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적 당연성을 담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좌파학자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이론은 좌파적 관점입니다.)의 통계자료야 왜곡으로 찰철넘치고 그리고 그런 좌파학자의 논리를 사상의 기저로 삼는 뉴라이트의 변태성은 참으로 짜증납니다만 나라를 빼앗시고도 그놈의 양반/상놈의 반성서얼을 따진 역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적 당연성 여부를 떠나 현대에서도 차별천국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찬란한 정신승리의 역사적 계보일지도 무르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급하겠습니다만 독립기념관에 걸려 있는 사진 중 '명백한 역사를 왜곡한 사진'이 있습니다. 그런, 참으로 진영논리에 의한 역시기술은 물론 잘못된 역사기술....을 두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물론, 일본의 역사 왜곡은 분노를 넘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예로, 명성시해사건의 진실을, 그들은 가르치지 않으니까요..)고 방방 뜰 자격이 되는지.....

 

 

아래 글은 우리나라의 역사왜곡의 '상징'인 독립문에 대한 것으로 '부숴야 한다'는 표현 상의 레토릭입니다. 사실을 알자...를 강하게 표현한 것... 왜냐하면 민족 역사의 수치도 우리 후손에게 교훈으로 남겨줘야 하니 부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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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인 독립문과 독립신문.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을사오적 중에 으뜸으로 치는 이완용.


독립문과 독립신문 그리고 이완용. 역사의 전개 상 관계가 없을 이 역사적 사실과 유적 그리고 인물이 실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내세웠을 때고 이 독립문과 독립신문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립문에 보면 앞쪽과 뒤쪽에 각각 한글과 한문으로 독립문(獨立門)이라고 써있는 현판이 있는데 그 것을 '편액(扁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편액은 바로 매국노 이완용의 작품입니다. 또한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초대 회장이며 또한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한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서는 이런 사실을 '삭제한 채' 우리가 배우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국노의 으뜸으로 손꼽는 이완용이 어떻게 독립문과 독립협회에 관여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일제는 우리의 수치스러운 역사적 사실이지만 역대 정권들에서 통치 수단의 용도로 반일감정을 부추키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을 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완용과 독립문은 따로 떼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이완용을 편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완용은 실제로 친일파가 아닙니다. 이완용은 2년간 주미공사를 역임했고 독립문 편액의 힘찬 글씨체에서도 볼 수 있듯, 이완용은 한문과 영문은 잘해도 일본어는 잘못했습니다. 그런 이완용의 결과적인 매국행위는 그가 친일파이거나 또는 매국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의 속성이 결과적으로는 매국행위를 한 것입니다.(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천박한 현실주의자... 뼈속까지 친미파라는 이명박과 이완용의 속성이 아주 쏙 빼닮았습니다.)



문제는 그가 자유주의자이고 현실주의자이지만 당시의 지식인들과 권력자들만큼이나 '국제 정세'를 몰랐다는데 있습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바로 독립협회와 독립문입니다. 이 독립협회가 만들어지고 독립문이 세워진 동기가 바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고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한 창나라와 일본 양국이 세운 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일본은 '청나라는 조선에게서 조공을 받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삽입했거든요?


'청나라는 조선에게서 조공을 받지 않는다'



정묘호란의 치욕 당시 조선과 청나라는 '군신관계'를 맺게되며 그동안은 비공식적인던 조선의 명나라에의 조공은 조약에 의하여 공식화 되었습니다. 그런 조공은 결국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것인데 바로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나라가 조선에게서 조공을 받지 않는다'라는 조약은 바로 조선의 청나라에서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합니다.



결국, 조선의 독립을 일본이 도와준 것인데 과연 이 것이 전부일까요? 그런데 조선의 독립을 갈망했던 이완용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읽고는 감격에 차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지고 이후 이완용은 친일쪽으로 급선회합니다.


그런데 이 것이 전부일까요? 과연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하여 순수한 마음에서 '조선이 청나라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을까요? 일본의 야욕은 그 후 1905년 미국과 맺은 가쓰라 테프트 조약에서 들어납니다. 가쓰라 테프트 조약은 미국이 필리핀에 대한 영향권을 일본이 인정하는 반대 급부로 미국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영향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을사늑약 등 조선은 패망의 길을 걷습니다.


한편으로는 매국노라고 가르치는 이완용.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독립문. 매국노가 세운 독립문.


가쓰라 테프트 밀약이 맺어질지도 모르고 값싼 감상에 빠져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항을 보고 울었다는 이완용. 그리고 그가 세운 독립문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지금 팽배해져 있는 '값싼 민족주의의 물결'을 생각해 봅니다. 올곧은 민족주의를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북한과의 진정한 대화 및 교류 그리고 나아가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의 일환으로 좋은 시절이 오면 815 광복절에 '우습지도 않은 남북 축전' 대신 독립문을 부수는 행사가 벌어질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마치, 베를린 장벽이 부수어 없어졌던 것처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