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자들의 상식
 

혁명적 공산주의자부터 미국 민주당 지지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조류의 진보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견해를 소개해 보겠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가난은 순전히 사회 구조 탓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가난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탓이라고 볼 것이고, 페미니스트들은 여자가 가난한 것은 가부장제 탓이라고 볼 것이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지독한 가난이 세습되는 것은 복지 제도가 부족한 탓이라고 볼 것이다.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난의 희생자를 비난하는 짓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린다면 사람들이 혁명이나 개혁의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개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지배 계급 또는 엘리트가 가난이 개인 탓이라는 생각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퍼뜨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면 사회 체제에 주목하기보다는 가난한 개인의 특성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불평등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 또는 가부장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어서 불평등 체제가 지속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가난이 순전히 개인 탓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현 체제에서도 누구나 노력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체제 개혁을 위해 단결하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두 설명 모두 옳을 수 있다 –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
 

많은 학자들이 “가난은 사회 탓”이라는 설명과 “가난은 개인 탓”이라는 설명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두 설명 모두 옳을 수도 있다.

 

“가난은 누구 탓인가?”라는 질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왜 미국인의 10% 정도가 빈곤선 이하로 사는가?”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왜 미국인 A는 빈곤선 이하로 살고 미국인 B는 부자로 사는가?”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이 때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사회 구조적 요인을 분석할 수 있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적 요인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를 탓하는 것은 곧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것을 뜻한다. 만약 사회를 탓하면서 동시에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북유럽이나 서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미국보다 복지 제도가 훨씬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가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미래의 미국 사회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더 나아가 북유럽의 복지 제도보다 더 강력한 복지 제도가 가능하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더 강력한 복지가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의 한 단면이다.

 

 

 

 

 

두 설명 모두 옳을 수 있다 – 환경 요인과 유전자 요인
 

진보주의자들이 개인적 요인을 따질 때에는 보통 환경 요인만 따진다. 부자의 자식이 부자가 되는 이유는 많은 유산을 물려 받고,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 받기 때문이며 유전자 요인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환경 요인이 작동하면 유전자 요인은 작동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도 두 가지 설명이 모두 옳을 수 있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은 사람들과 유산을 사실상 전혀 물려 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 왜 대체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은 사람들이 더 부자로 사는지를 설명할 때에는 당연히 환경적 요인에 의한 설명이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유산을 전혀 물려 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 왜 어떤 사람들은 신분 상승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지를 설명할 때에는 유전자 요인에 의한 설명이 중심을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IQ의 유전률(heritability) 연구에 따르면 IQ의 유전률은 매우 높다. 그리고 IQ는 학업 성적과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으며 학업 성적은 나중에 버는 돈과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유전자 요인이 가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연구를 그냥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할 때가 많다.

 

 

 

 

 

개인적 요인을 따지는 것이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인가?
 

요인 분석은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일이다. 반면 비난은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하는 일이다.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짓이라며 개인적 요인을 분석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일종의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졌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각 교권들 사이의 경계를 존중한다면, 그리하여 요인 분석이 항상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이 타고난 유전자 때문에 IQ가 낮을 확률이 높고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을 때에는 가난하게 살 확률이 높다고 하자. 이것은 개인적 요인 중에서도 유전자 요인을 고려한 설명이다. 나는 이런 설명이 옳다는 것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몹시 싸가지 없는 사람이어서 온갖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그가 정신병질(psychopathy) 유전자를 타고 나서 그렇다는 가설을 제시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가 학대를 당해서 그렇다는 설명을 제시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사회가 범죄를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어떤 설명이 옳은지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을 비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이 정신 지체자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 원인이 어떤 것이든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심각한 정신병에 걸렸다면 그 원인이 유전자 때문이든, 환경 때문이든, 사회 때문에든 어느 정도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차에 주목하는 이유 – 진화 심리학적 설명
 

학계에서는 개인적 차이보다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하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개인적 차이 특히 지능과 인간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진보주의자들은 그 이유가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주된 이유는 그런 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지난 만 년 동안 인류 사회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기술적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사회 체제에서도 그 변화는 엄청났다. 하지만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기 전의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기술도 사회 체제도 사실상 정체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일생을 보내는 수십 년 동안에도 많은 것이 바뀐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백 년 안에는 사실상 전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한 우리 조상들은 사회 체제의 변화에 무관심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현대 사회학자들이 몰두하는 사회적 요인 분석에 별로 관심이 없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 차이의 경우에는 어떨까? 당시에도 지능이 높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지능이 낮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도 당시에도 더 게으른 사람도 더 부지런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더 착한 사람도 더 악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결혼하는 것이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한 인간이 이런 개인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자수성가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착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사실상 재산이라는 것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재산은 부족의 영역 즉 땅이었는데 이것은 부족 공동 소유였으며 개인 재산이 아니었다. 이동 생활을 했기 때문에 물려줄 만한 집도 없었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라고는 활이나 옷가지 같은 것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며칠이면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 조상의 경우에는 가문이 지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침팬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수컷 침팬지가 서열의 사다리를 오를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과 성격이다. 즉 힘 세고, 머리 좋은 침팬지가 친구를 더 잘 사귀고 싸움도 더 잘 해서 서열의 사다리를 더 잘 오를 수 있다. 반면 하이에나 같은 종에서는 어머니의 서열이 자식의 서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런 사회 체제에서 지위는 거의 순전히 자수성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진화한 우리 조상들이 자수성가의 측면 즉 지능, 성격 등에 주목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신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신화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어차피 인구의 일부는 가난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미국 같은 사회에서 모두가 미친 듯이 노력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명제를 “모두가 미친 듯이 노력한다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명제는 “모두가 미친 듯이 노력하지는 않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미친 듯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미친 듯이 노력하지는 않는다”는 가정은 합당한 가정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적어도 수학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중은 이 신화를 믿는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대중은 대체로 지능이 유전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미친 듯이 노력한다고 아무나 서울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대중은 타고난 재능 즉 유전자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되며 이것을 노력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행동 유전학의 발견과 잘 부합한다.

 

사회학자들은 막대한 유산을 받은 사람과 빈털터리로 출발한 사람 사이의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대단한 발견이라고 볼 수 없는 뻔한 사실이다. 대중은 유전자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타고난 재능에 대해 믿어왔다. 20세기의 학계에서는 이런 믿음을 반동적이라며 거부했다. 하지만 유전자 요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온갖 행동 유전학 연구 특히 입양 연구와 쌍둥이 연구로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입증되었다. 이런 면에서, 사회학자들이 무식하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휘둘린다고 보는 대중의 순박해 보이는 믿음이 사회학 박사들의 이론보다 더 나은 것 같다.

 

 

 

 

 

빈 서판론의 해악
 

개혁과 혁명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20세기의 과학은 빈 서판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유전적 개인차가 상당히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개인차가 어떤 사람이 가난해지는 정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물론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렇다고 이야기 속의 타조처럼 땅 속에 머리를 파 묻고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 문제를 정확히 파헤치려면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개인적 요인 중 환경 요인과 유전자 요인을 모두 정확히 따져야 한다. 개인적 요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것을 사회 구조 탓이라고 주장하거나, 유전자 요인을 무시하고 환경 요인만 강조하려고 한다면 정확한 분석으로 이어질 수 없다.

 

세상을 왜곡된 시각으로 본다면 그 의도가 좋더라도 잘못된 해결책을 내 놓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빈 서판론자의 걱정과는 달리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면 설명과 비난을 구분할 수 있다. 즉 유전적 요인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사회 구조적 요인을 무시한다면, 또는 환경 요인을 무시하고 유전적 요인만 강조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지배 계급이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자는 원래부터 똑똑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정당하게 부자가 된 것이다”라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노동자가 주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내 추측이 맞다면 인간은 개인차에 주로 주목하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개혁이나 혁명을 바라는 사람들은 사회 체제에 대한 분석과 더 나은 체제에 대한 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전적 요인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 빈 서판론도 여러 가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첫째, 과학과 이성의 후퇴. 빈 서판론자들은 말도 안 되는 근거들을 대면서 20세기 행동 유전학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무시하고 있다. 행동 유전학의 많은 명제들이 탄탄한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궤변을 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빈 서판론자들은 궤변을 펴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가 인기 있는 궤변 덩어리 중 하나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쓰디쓴 진리를 거부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즉 몽매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몽매주의나 반과학주의에 반대한다.

 

둘째, 재능의 차이를 무시한다면 무고한 사람을 게으르다고 비난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빈 서판론자들이 퍼뜨리는 신화 즉 유전자 요인은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믿는다고 해 보자. 그 사람이 같은 기회를 줬는데도 결과가 나쁜 사람을 본다면 순전히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나라면 재능이 떨어져서 노력을 했음에도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고 볼 것이다.

 

셋째, 멀쩡한 체제를 비난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기계공학과에 여학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학과에서 성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선천적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준다면 결과가 똑 같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믿는다면 결과가 다르다면 평등한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할 것이다. 그러면 무고한 사람을 비난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아이들의 취향이 짓밟힐 수 있다. 어떤 부모가 인간에게는 타고난 재능과 취향이 없다고 굳게 믿는다고 하자. 그런 부모는 장난감 자동차보다는 인형을 더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딸의 취향을 무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무시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기 더 쉬울 것이다.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