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0일에 서프에 올렸던 글입니다.

최근에 아크로에 서울대학교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오기에 예전 생각도 나고해서 제 블로그에 잠자고 있던 글을 끄집어 내와봅니다.



서울대 총장 발언과 서울대 출신들의 상황인식 (2005년 7월 20일) - 원문링크

칼융 님의 정운찬의 ‘원자재론’에 대한 몇 가지 잡설 이란 대문글에 댓글로  [서울대생]이란 이름으로 글을 남기신 분이 있어서 조금 심란한 마음에 글을 적어 봅니다. 이글은 [서울대생]님께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쓸까 합니다.
 
[서울대생]님께
 
저 역시 관악캠퍼스에서 82년부터 96년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학부, 석사, 박사까지 모두 마친… 아마 [서울대생]님의 선배 일겁니다.
 
흠…….
 
좀 많이 심란해 지는데…. 미국 생활 속에서 제 주변에서 제가 보고 들은 경험들을 조금 나눠 보겠습니다.
 
일단 전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쭉 자랐고 초중고등학교 역시 스팀으로 난방 되며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된 학교를 나왔습니다.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는 8학군 중에서도 최고의 명문을 나왔고요. 서울대에 입학해서도 일명 2류나 3류 대학 출신의 학생들과 거의 교류 없이 고등학교에서 최소한 반장 이상씩은 해 본 (지방 출신 동기들은 거의 학도호국단장 수준급이었고 여자 동기들도 마찬가지 수준이었습니다) 동기들과 대학생활기간 내내를 같이 보냈습니다.
 
[서울대생]님 말씀 마따나 정말 속으로 ‘천재구나!’ 라고 혀를 내두를 만한 동기들로부터 자극도 많이 받고 서로 선의의 경쟁도 하며 무난한 대학 생활을 마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왔습니다. (-.-;)
 
미국내에 한인 과학자들이나 교수님들중에 단연 서울대 출신들이 많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의외로 지방대나 2,3류 대학 출신 분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시는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제 경우 미국에서 경영대학원 공부도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명문대학들의 신입생 선발 기준도 자세히 접해 볼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우선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해보지도 못했을, 다시 말해서 한국식 학벌 체계에서 명함을 내밀 기회 조차 없었을 많은 분들이, 실력으로만 평가 받는 미국 학계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점하고 인정 받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얘기는 무슨 얘기겠습니까? 현재의 한국의 교육제도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고 있는 학벌체계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서울대생]님의 말씀마따나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서로에게 배우며 자극 받는 시스템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학계에서 서울대학교가 갖는 독소적인 역할은, 모든 가용자원을 빨아들이고 있으면서도 그 배정 받은 자원의 몫만큼의 프로덕트를 생산해 내지도 못하며 오히려 타 대학 출신의 다른 유능한 인재나 집단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설치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가령 지방대 출신의 박사가 서울대학교 교수 채용에 지원하면 서류 심사나 통과하겠습니까? 하지만 미국내에서는 아이비리그나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소에서 지방대 출신의 한국인 과학자들이 서울대 출신들을 따돌리고 faculty로 채용되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서울대를 못 나와도 오히려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서울대 출신들 보다 더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들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점은 이런 겁니다.
 
우수한 인재를 따지는 [원자재론], 이론 자체야 맞을지 모르지만 현재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총장이 주장할 내용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교수들의 업적 평가를 더욱 강화하고 조교수에서 철밥통을 차게되는 부교수로의 임용에 더욱 엄격한 심사를 실시하며,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연구 업적으로 외부에서 연구비를 따오지 못하는, 밥만 축내는 교수들에게 보다 불이익을 많이 주는 자기 혁신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솔직히 한가지만 더 얘기하죠. 매주 제가 몸담고 있는 Neuroscience 분야에서 한국에서 많은 논문이 나옵니다. 서울대 쪽 보다는 비서울대, 그리고 연고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시내 대학 보다는 지방대 쪽에서 논문이 더 많이 나옵니다. 특히나 지방대의 젊은 교수님들이 어려운 시설 여건과 인적자원 속에서도 아주 수준 높은 논문들을 국제 논문집에 실은걸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모교에 대한 걱정도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제 동기들 중에도 학부만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간 동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의 절반 정도는 되는 거 같네요. 뭐 저 역시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쳐서 제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동기들의 기본기와 창의적인 사고에 부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정운찬 총장님의 [원자재론]이 비난을 받는 건 이런 큰 맥락에서 이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서울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 지껄이지나 마시길’ 이란 표현은 자살에 가까운 표현이네요. [서울대생]님의 의견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첫번째 문장 하나 만으로도 님의 견해가 매도 당할 좋은 꺼리를 제공하는 거 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본문 내용과 상관은 없지만 제가 미국과 한국에서 오신 많은 서울대 출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 느끼는 고통에 가까운 심정을 하나 더 적어 볼까 합니다.
 
서울대 출신 분들에게 자부심이 있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절제와 노력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같은 대학 출신들끼리 친하게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좀더 가까이 교제 하는 게 어찌 보면 사람의 본능에 가까운 성향 일겁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접하는 서울대 출신 분들 중에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분들을 제외하고는 자기 전공 분야를 제외하고 세상을 보는 눈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하게 좁은걸 발견합니다. 더더군다나 맘이 아픈 건 그 시야가 조중동이 만들어 놓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게다가 사실까지 왜곡된 창문이란 점이죠. 그런데 그런 상태에 대한 자기 검증 장치가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가령 제가 업무차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면 거기서 제가 만나게 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서울대 출신에 미국내 최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시고 한국에 있는 그분들 친구분들도 전부 한국내 각계 각층의 파워엘리트들이죠. 그런데 열명중 아홉명은 철저하게 반노무현, 이것도 좋게 표현한거고 노무현 무시가 공통적인 태도입니다. 물론 조중동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장 오는 고위 공직자들이나 관리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굳어진 시각이기도 한데…….
 
뭔가 객관적인 자료나 이성적인 토론에 근거한 인식전환에 철저하게 거부감을 보입니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내 주변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라는 황당무개한 얘기가 근거로 들이대는 내용의 전부입니다. 아마 서울대 출신들에 대한 환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얘기가 믿어지시지 않으실겁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한국을 움직이는 파워그룹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상황인식이 어떻게 틀릴 수 있겠냐는 강한 믿음이 있는 거죠.
 
이 경우 제가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해 봅니다. 가령 <노무현과 그 주변의 인사들이 빨갱이이고 반기업적 정책을 펴서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이 얘기가 안 믿어지시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이 믿음에 강한 신뢰를 보인답니다) 제가 어떤 특별한 경제 정책이 하지 말았어야 된 정책이고 어떤 정책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면, (참고로 이런 식의 토론의 제 상대는 미국내에서 알아주는 저명한 경제 분석 관련 회사의 중역과 국제적인 경제 단체의 중요 연구원이랍니다) 이분들의 대답이 정말 걸작입니다. 쓸데없이 돈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실수 라는 겁니다.
 
한가지 더 얘기 할까요? 노무현이 잘못해서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거의 100% 입니다. 그럼 제가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한국의 국방비 지출 증가를 제외한 한국이 손해를 볼 내용이 뭐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하지만 그래도 결코 본인들의 입장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도 이전 문제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들어가면 점입가경입니다. 노통의 수도 중심 기능의 중부권 이전은 득표를 위한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절대 반대이고 과거사 청산 문제도 박근혜 대표를 노린 것이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거죠. 정말 답답하긴 하지만 제가 그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얘기는 다음과 같은 정도 입니다.
 
박정희 장군이 중심이 된 군부 쿠테타 세력이 정당성이 결여된 채 정권을 장악한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연이은 경제 계발 계획 (참고로 경제 개발 계획 자체가 사회주의 경제 원칙에 근거를 둔 좌파적인 경제 정책이라는 건 염두에 없나 봅니다) 을 추진해서 경제 성장이란 이슈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대전제를 군부가 집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인 쇼라는 이유로 거부하시겠습니까? 수도 이전과 과거사 청산이 현 집권 세력의 정치적 계산의 결과 일수도 있지만 국토의 균형 개발과 민족정기 수립이라는 대전제 자체가 부인되어서는 안되죠.
 
더 길게 얘기하지 않으렵니다.
 
서울대 출신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신이 특별히 선택 받은 계층이라는 엘리트 의식이 실제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끼리끼리의 동류의식에 갇혀서 부패한 형국이겠죠.
 
특정 사안에 대해 현 대통령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의 성안에 갇혀서 이성적인 판단이 결여된 채로 자신들의 서클에서 그 우수한 두뇌를 썩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맘이 아픕니다.
 
서울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시작한 글이 엉뚱한 끝 맺음으로 온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지나친 일반화의 측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계신 서울대 출신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희망해 봅니다. 읽으신 분들의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추신 
 
이 글을 쓴 목적은 특정 학교를 비하하거나 그 학교 출신을 단체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닙니다.
 
저의 경우 오히려 한 국가의 지도자 그룹을 집중적으로 배출하는 훌륭한 교육기관의 존재 이유와 그런 국가적 리더그룹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서울대학교는 이미 계급적 측면에서의 강남의 부유층 자제의 입학 비율이 심히 우려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고, 더 이상의 민주화의 성지나 개혁의 산실이 아닌 사회의 기득권층의 대를 이은 세습을 공고히 하는 기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정총장이 교육자로서 아무리 선의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하에서 더욱 고급 사교육을 받은 계층의 자녀에게 유리할 수 있는 새로운 입시제도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지도적 입장에 있어야 할 최고 교육기관이 오히려 시류에 편승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찬성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