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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황제는 당나라의 이세민 아닌가요? 저 평가는 '기독교 관점(기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소 들어간거 같은데...
저는 당나라의 이세민을 최고의 황제로 뽑겠습니다. 고구려를 침략한 괘씸죄가 있기는 하지만서두....
전혀 기독교 관점이 들어가지 않았지요
그냥 선교사들에게 배웠고 그 자신은 철저한 성리학 신봉자라 합니다
실제로 저 정도면 중국많이 아니라 세게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이세민은 정통성이 취약합니다
그리고 강희제와는 비교가 불가능하지요
그가 황제가 된 시기의 당과 강희제가 황제가 된 시기의 청을 비교하면 말이 안되지요
와이에스가 그 책 정관정요를 읽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정관정요 솔직이 별거 없습니다
그거보다 일본의 소설 불씨가 훨 더 필요한 책입니다
좌우간 강희제가 없을때 정관의 치가 유명했고 정관의 치는 강희제에 이르러 빛을 잃어버립니다
최고의 황제를 논할때
1. 절대적 평가
정통성
제도와 문물의 정비
영토확장과 안보
경제력 신장
백성들의 생활안정
문화발전
2. 상대적 평가
주변국가 상황
황제의 권력기반
다른국가나 세게사와 비교등등인데요
강희제는 역대 세계 어느나라보다 부강한 중국을 만들었고요
절대적 평가에서도 이세민보다 앞서고
상대적 평가에서 여섯살에 올라서 열여섯에 자신의 소신을 실천한 것을 보면 게임끝입니다요
이덕하 / 저 글이 중국 역사학자들의 저서에 근거한 것인지, 또 그것과는 무관하게 실제로 저 내용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정확한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단언은 못합니다만), 중국 역사학자들 일반이 덕하님이 생각하듯 그렇게 막장은 아닙니다. 무슨 북한학자들처럼 여기듯이 여길 일은 아닙니다.
사실 20세기 초중반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님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자학'성이 강합니다. 예컨데 중국고전문헌(대학이니 중용)등의 작성연대를 어지간하면 의심하고 후대로 깍아내리려고 했던 경향이 아주 강했습니다. 이런 경향이 불식된 건 여러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진 20세기 후반 이후의 일입니다.
편견이나 자문명중심주의로 치자면, (덕하님이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구미학자들이 여느 문명권 학자들에 절대 뒤지지 않아요.
사족 : 저 문제의 글에서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강희제의 종교적 관용성이 당대 유럽인들에게(적어도 일부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은 그 당시 라이프니츠가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과 나눈 편지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라이프니츠에겐 '놀라운 일'로 비춰졌습니다. 강희제야말로 플라톤적 철인왕이 분명하다고 추켜세웠을 정도니 말 다했죠.
강희제 비판
1. 나라를 재건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이용한 것이지 실제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님.(이세민과 대비됨)
2.文字之獄 (문자의 옥)으로 금서정책을 펼치고 한학자들을 대거 제거하여 문화의 후퇴를 가지고 옴. 대명세 옥고에서는 명나라 연호를 쓴다고 해서 그 관련자들을 전부 사형시킴.(역시 이세민과 비교됨) 뭐, 한족부흥이라는 것이 '반정부'를 넘어 '반체제'이니 이해는 되지만 하여간 아님.
3.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후세를 잘못두어 제가에 실패했다는 비야냥을 받음(역시 이세민과 대비됨. 가만... 이세민도 마찬가지던가? 몰겠다.. 잘못썼으면 누군가가 지적하겠지... ^^;;;)
문자의 옥은 강희재 때 일어난 사건이고 고계는 원말 명초의 시인인데 잘못 적으신 듯.
그리고 양기는 후한말 시인이고..... 흐음.... 나머지는 검색해 보니 서분도 원말 명초 그리고 장우(장약허)는 당나라 시인....
옮겨 적으신 내용이 강희재의 일대기를 그린 무협소설가 김용이 쓴 녹정기...를 말씀하신거 같은데 거기서 명나라 시조 주원장의 인물됨의 옹졸함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했던 내용이 나오는거 같음. 강희제가 러시아 국경 지역에서 생사를 다투던 모험은 정말 일품이었음.(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나도 헷갈리...)
하여간 문자의 옥은 강희제 때 사건으로 수백년 전 주원장과는 관련이 없는 사건입니다. 링크된 자료는 잘 읽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949
내가 설명이 좀 부족했군요.
"문자지옥" 흔히 '문자옥(文字獄)'이라는 의미는 중국 왕조의 '사상통제정책'을 의미합니다. 즉, 특정 시대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사'이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작년인가 중국의 한 작가가 중국정부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때 '현대판 문자옥'이라고 비판이 일어났었지요.
나는 문자옥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文字之獄 (문자의 옥)으로 금서정책을 펼치고 ... --> 문자옥이 명사로 사용됨
반면에 칼도님은 문자옥에 대하여 쪽글로 이렇게 쓰셨죠.
문자(文字)의 옥(獄)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 고유명사로 사용됨.
이 쪽글에 대한 저의 리플에서 설명이 잘못되었습니다.
문자의 옥은 강희재 때 일어난 사건이고 --> 강희제 때의 '문자옥'은.... 어쩌구 저쩌구... 썼어야 제대로 된 표현입니다.
즉, 문자옥은 특정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통제를 위한 역대 중국 왕조에서의 사상억압정책을 말하는 '명사'입니다.
따라서 님의 표현도 이렇게 바꾸어야 맞는 것입니다.
아울러 명태조는 ‘문자의 옥’이라는 것까지 일으켰다 --> 명태조 때의 문자옥은 --> 명태조 때의 사상통제정책의 예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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