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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면 안쓰고 사시는 분 있나요?
진짜나 ; 이기(selfish-ness)(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지 않는 사안에 대한 무관심함 또는, 무심함) 를 있는그대로 표출하며 사시는
용자 여기 있나요?
진짜나로 살기시작하는순간 그냥, 혼자가 되는건데 혼자 사실만한
용자 여기 있나요?
자신을비추는 거울속의나(가면)가 진짜나의 이기를 인정하지 않는순간부터, 거울속의나(가면)와 진짜나간의 지리한 싸움은 시작됩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난 이기를 극복할수 있어! 진짜나, 너는 악마야 악마!'
주변을 돌이켜보면 이기의 흔적이 조금도 티나지 않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의료봉사에 평생을 헌신하시는 이름모를 의사선생님들
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지 않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는 이름모를 의사선생님들
저 섹시돌핀, 이름모를 의사선생님들을 존경하지만 선망하지는 못하고 않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삶에서 '낭만(浪漫) ; 질펀한 물결에서 느껴지는 감상' 이 체험되지는 않거든요
분명 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지 않는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가면(거울속의나) 이지 진짜나 ; 이기가 아닙니다
저는 다른 종류의 가면(거울속의나)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제옆에 계시는 가족, 연인, 친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가면(거울속의나)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 연인, 친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일반보편의 사람들을 선망하고 있습니다
일반보편의 삶에서 '낭만(浪漫) ; 질펀한 물결에서 느껴지는 감상' 은 얼마든지 체험되거든요
그래요! 선망은 존경에 없는 '낭만' 이 있어요
누구의 가면(거울속의나) 이 더 옳고 더 그른가요?
진짜나 ; 이기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숨쉬는데 그 면전에서 가면(거울속의나) 의 시비를 가리는게 무슨 의미인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대로 대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진짜나 ; 이기를 박박 긁어 완전히 지워낼순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추어 존대로 대하는 당신이 무례한 그들과 똑같지는 않아요
예의를 갖추어 존대로 대하는 당신의 가면(거울속의나)은 무례한 그들의 가면(거울속의나)보다 100배는더 '낭만' 적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제게 논리보다 더 우선순위는 '낭만' 입니다
논리로 따지면야 예의를 갖추어 존대로 대하는 당신이나 무례한 그들이나 똑같아요
근데 제게 논리보다 더 우선순위는 '낭만' 이니, 존대로 대하는 당신이 무례한 그들보다 제게만큼은 더 우선입니다
2012.06.30 04:54:39
참사랑님
맞아요 사실, 논리도 낭만도 '가면' 의 일종이지 진짜나=참나는 아니지요
진짜나=참나는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며 남을 의식하지 않아요
그래서 고승들이 진짜나=참나를 찾으려고 산속에 홀로들어가 수양했던거 아니겠어요?
제가 아크로에서 글쓸때 나도 진짜나=참나는 아니지요
글쓰면서 회원님들을 의식하니까요
저는 누군가를 완전히 알수 없어요
그이를 알려고 하는순간 그이는 저를 의식할테니까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진짜나=참나' 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우리는 평생, 우리의 가면을 벗을수 없어요 저도모르게 남을 의식할테니까요
우리는 남에의해 긍정적으로 의식되는 맛을 알기 시작해요
칭찬, 사랑, 우정, 믿음, 신용 등등
그래서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싶고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싶죠
그 맛이 삶의 맛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저를 긍정적으로 의식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아가,
세상에 나혼자만 있다면 무슨 맛으로 살죠?
맛은 거짓이에요 그치만,
삶의 전부이기도 해요
맛을 포기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기도 하죠
2012.06.30 05:14:20
^^
조견오온개공!
^___^
아래 글의 쓴이는 참 참하고 이쁘시네요~!^^(이것도 다...공하다라는...말씀)
역사의 증인 충청일보
![]() |
| 부처님의 공사상(空思想) | |
| 버들잎은 푸르고, 꽃은 화사하고 붉고, 참새는 짹짹, 까마귀는 까악까악 우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실체성(實体性)이 있을까····. 그것들은 확실히 되풀이 된 감각으로 하나의 조건반사(條件反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일체 모든 상념(想念)은 공(空)인 것이다. 지식과 경험을 쌓아 복잡한 기억의 심층(深層)에서 발효(醱酵)하는 자아라는 관념도 실체는 없는 것이며 가공(架空)의 관념이다. 그리고 후천적 기억층의 어둠을 타파(打破)하고 진공(眞空)을 구하여 정진하는 곳에 “불교”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자아(自我)는 공(空)인 것이다. 비록 오늘날 인연이나 업력(業力)으로 인하여 천만 상(千萬像)이 차별지어 온갖 물상이 숨쉬는데 그 근원을 철저히 분석구명(分析究明)하고 보면 모두가 원래 공(空)이 된다. 그러고 보면 자아(自我)라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것이며 생사(生死)도 없고 어리석은 자도 없는 것이며 진공평등(眞空平等)이 된다. 이 이치는 한때의 방편(方便)으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니고 원래 법(法)의 실상(實相)이란 것이 아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세상의 희, 로, 애, 락 이라는 것도 똑바로 보면 봄의 들녘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고 풀잎에 반짝이는 아침 이슬 같은 것이며 꿈결 속에 노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랴····. 그러므로 절대적인 바른 눈으로 철저히 보면 천지만상(天地萬像) 그대로가 본래 공(空)인 것이다. 이 공(空)의 이치를 깨닫고 보면 몸은 비록 생사(生死)의 가운데 있다 해도 생사를 초월하여 생사에 어두운 미아(迷兒)가 되지 않으며 열반의 고요한 경지에 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조견(照見)하는 것이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는 말은 일체의 고액을 제도한다는 것인데 고(苦)에는 사고(四苦)와 팔고(八苦)라는 것이 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은 세상에서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이며 사고의 첫째가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와의 이별, 애인과의 이별, 자식과의 이별, 형제간이나 친구들 등등의 이별의 괴로움이니 이보다 더한 괴로움과 슬픔이 어디 있으랴.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존자(阿難尊者)같은 존자도 부처님 곁에 이십여 년을 시봉하다 부처님이 열반하시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 통탄하고 통곡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미 아라한(阿羅漢) 지위에까지 이른 아난이 보통사람과 같이 통곡을 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랴 짐작이 가며 공자님도 서른두 살에 죽은 제자 안희(顔回)의 죽음에 “하늘이 나를 버리는 구나.”하며 땅을 치고 통곡하였다 한다. 인정이 있으면 반드시 와서 씨앗을 내리고(有情來下種), 인연 있는 땅에는 그 씨앗이 열매를 맺어 태어나네(因地果還 生)라는 오조(五祖) 홍인(弘忍)의 글귀가 있듯이 인연이 깊은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별의 괴로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으며 이 이별의 장이 시로 소설로 연극 등으로 예술의 극치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동서고금이 같으며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정한 이치를 되뇌면서도 이별의 고통은 아픈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 | |
| 기사입력시간 : 2012년 05월29일 [18:56: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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