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진보사상을 가진 사람을 물론 사실상 중도층까지 진보적인 방송 언론인 지식인등과 문화권력가들의 주장으로 인하여
동성애자에 대한 비판이나 차별 혐오는 굉장한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적 차별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남북 대치상황인데도 신념적 병역거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함) 자들에 대한 태도 역시 관대하며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데 꺼리낌이 없이 나서는 지식인도 많다

그런데 적어도 이땅에 천만 가까운 호남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 그것도  근 오십년동안 지속되어온 이 지독한 인종주의에 가까운 모멸과 차별 직장,결혼 등등 다방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나서서 비판하거나 호남을 옹호하는 지식인은 강준만 하나인듯 하다.

심지어 호남사람중에서도 말할만한 정치인 교수 문화권력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김욱교수 같은 사람만이 말을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은 무엇인가?
왜 호남의 유력인사들조차도 침묵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사회의 시스템 무언의 묵계의 정체는 무엇인가?

극 소수의 동성애나 신념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티브토론은 여러번 열리고 사회의 이슈가 되는데 왜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차별을 받고 설움의 눈물을 훔치는 이 상황에 대해서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가?

나는 분노한다
호남의 유력자들에게 먼저 분노한다
그들이 소위 사회의 기득권이 되었다고 호남인이 아닌것이 아니며 호남이 없이 그들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비록 부스러기라고 할지라도 호남이 존재하기에 호남몫이 있는 것이고 그들은 호남이기에 역설적으로 그 자리에 낄 수 있던 것이므로 호남에 빚을 진 것이다

그들은 일신의 안일과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위해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배신이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호남에 대한 배신이다
특히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호남의 국회의원들은 가장 나쁜 배신자들이다
그들은 침묵의 카르텔을 깬다하여도 받을 불이익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호남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당선도 쉬워질 것이다
( 혹시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있겠다)

다음으로 소위 정의를 팔고 약자를 팔고 차별을 팔아먹는 지식인들 문화권력자들에게 분노한다
위선이다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신상에 깃털만큼의 불이익도 없는 그런 일에만 목소리를 높이면서 생색을 내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 하면서 매명을 한다

이 사회의 카르텔은 동성애나 신념적 병역거부는 오히려 국민들의 시선을 엉뚱한곳으로 돌리기에 즐기며
 심지어 종북까지도 이용가치가 있으므로 어느정도는 용인한다

그러나 호남차별 문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의 혁명을 가져오고 현재의 카르텔의 붕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카르텔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남사람이나 기타 선지자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바로 영남패권과 그에 기생하는 사람들의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회의 노른자 파이를 잘라서 분배하고 있으며 각자의 몫에 만족하고 있으며 호남의 기득권자들 역시 비록 작지만
이거라도 어디냐고 감지덕지하면서 이 침묵의 카르텔에 동의를 한다
그러는 사이 호남의 민중들은 절규를 하며 마음의 생채기에 덧이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차별과 멸시와 소외는 시간이 가도 개선되지 않고 정부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 차별과 멸시는 호남출신의 정치인들과 자산가 대기업의 부장과 임원들에게도  설움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그들은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단호하게 그 부스러기를 거부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수모를 당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이 카르텔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듯이 그리고 오늘날 세게의 현실에서 배우듯이 강자의 아량이나 양보를 바라는 일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약자가 자신을 지키는 것은 강자와 싸워서 강자에게 데미지를 입힐정도의 싸움을 벌이고 협상을 통해 서로 양보를 얻어내고 타협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한 투쟁이나 증오나 강자의 아량에 기대는 것보다 가장 많이 얻어낼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