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시사저널 사태 때 썼던 글입니다. 지금은 중앙일보가 (최소한 형식적으로나마) 독립 운영되는 언론이지만 한 때는 삼성 그룹의 언론사였다는 점에서 '삼성'이라고 적는게 맞습니다. 그 때의 일이니까.

이 글을 올리는 이유..... 시닉스님 말씀대로 한겨레의 박원순 시장 승리 원인... 운운을 그대로 믿는 '꼴톨'이 바로 저였고... 얼마 전에는 또 한 극우신문에 낚여서.... 평소의 바램대로 '신문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은 집에만 있으면 흐뭇한데 출퇴근을 하러 승용차에만 올라타면 기분이 나빠진다."


"반면에 고 정주영 회장은 출퇴근을 하러 승용차에 올라타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집에만 도착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왜냐하면, 고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집에 있는 '삼성표' 가전제품들을 보고 흐뭇하게 생각하다가 출퇴근을 하기 위해 승용차에 올라타는데 그 차가 바로 현대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대표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고 정주영 회장은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갔다가 자신을 압박하듯 다가오는 삼성표 가전제품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다."


현실과는 어느 정도 동떨어졌을지라도 삼성과 현대의 산업군을 놓고 적절하게 풍자한 이 유머는 술자리에서 안주용으로 가끔 회자된다.


삼성과 현대의 제품 포트폴리오 및 그 역사는 우리나라의 산업의 현주소와 역사를 대변한다. 삼성의 제품군은 경소단박(輕小短薄)이 주종이며 현대의 제품군은 중후장대(重厚長大)가 주종을 이룬다.


한 때 현대가 독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국민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지는 중후장대(重厚長大)의 현대는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삼성은 지식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현대를 압도하게 된다. 지식화 사회에서 보다 더 많이 필요한 제품들은 중후장대한 것보다는 경소단박의 상품이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회전되니 말이다.


그런 기업 문화의 차이일까? 삼성은 일찌감치 언론에 손을 뻗쳤다. 아무래도 중후장대한 제품은 최종 소비자(end user) 시장이 아니지만 경소단박한 제품들은 최종 소비자 시장이기 때문에 언론을 보유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리라.


삼성이 가진 언론은 전두환 시절 방송 통폐합으로 강제로 빼앗겨 지금은 KBS2가 된 그 전신인 TBS(동양방송)과 중앙일보였다. 그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의 첫번째 '먹이'는 '미원'이었다.


한국의 경쟁 기업 역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미풍과 미원의 기업의 사활을 건 사투'는 어쩌면 이 때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모른다. 1969년 미원과 미풍(주 *1)이 조미료의 원료인 아노신산 소다를 밀수하다가 적발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동양방송은 미원의 밀수 사건만 보도하고 미풍의 밀수 사건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더우기 동양방송은 미원이 지원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더 이상 미원이 후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더우기 중앙일보는 미원의 해명광고조차 실어주지 않았다. 이에 미원이 항의를 했고 미원은 동양방송의 편파 보도와 중앙일보의 광거 거부를 항의하는 광고를 동아일보에 실었다.


훗날, 인구에 회자되기를 고 이병철 회장의 숙원 사업이 세가지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미원을 미풍이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이며 두번째는 당시 동양방송이 현 문화방송을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세번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미원 때문에 미풍은 조미료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넘은 적이 없으며 동양방송은 시청률에서 문화방송에 뒤져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광고 없이 방송이 되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어쨌든, 오늘날에 와서는 미풍이 그렇게 악착같이 밀었던 '다시다'가 친환경제품이자 웰빙 제품으로 각광받으면서 조미료 시장의 점유율이 바뀌었지만 미풍과 동양방송의 고전은 '일등 삼성'의 자존심을 상처내기에 충분했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의 두번째 먹이는 바로 현대였다. 한국 재벌의 1,2위를 다투던 삼성과 현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에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는 적극적으로 현대 공격의 첨병으로 나섰다. 두 재벌 총수의 화해로 극적으로 봉합된 이 사건을 계기로 비록 얼마 되지 않아 TBS는 KBS에 통합되는 비운을 맞이했지만, 언론없는 설움을 톡톡히 당한 현대는 노태우 정권 때 문화일보를 창간하게 된다.


반대로 삼성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당한 적이 있다. 박정희 독재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1970년대 말 동아일보가 삼성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삼성의 용인에버랜드 개발로 야기된 지역주민에의 폭력행사를 고발했고 삼성은 동아일보에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고 이병철 회장의 식탄까지 거론하며 삼성 타격에 총력을 기울였고 특히 동아일보가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는 의미에서 백지광고 신문 발행을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삼성은 사회로부터 '악마의 화신'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삼성에 대한 동아일보의 치열한 공격은 박정희를 쏘아 죽인 총탄과 함께 사라진다.


시사저널 사태 포스팅을 읽으면서 삼성가의 언론인 동양일보와 중앙일보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 언론을 동원한 왜곡 편파 보도를 넘어서 이제는 경영진까지 삼성맨으로 바뀌어 그 결과 이런 사태를 빚게 되었다는 소식은 필자를 우울하게 한다.


한국 언론에서 경영과 편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가? 하는 것 때문에 우울하고 이 것이 단지 경영과 편집의 문제를 넘어선,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함께 이 사회가 극우쏠림 현상의 한 단면인 것 같아 더욱 우울하다. 만일, 지금이 노무현 정권 초기였다면 시사저널 사장이 삼성맨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무모한 짓을 태연하게 벌릴 수 있었을까?


사실, 삼성의 언론 개입은 시사저널과 같은 오프 매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것은 박정희 정권 초기에 있었던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과 그 사건을 호도하려는 국회, 그리고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일권에게 똥물을 투척한 김두한 의원의 똥물 투척 사건에 대한 인터넷 기록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카린 밀수 사건'을 검색어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검색되는 웹 싸이트가 차고 넘쳤지만 지금은 몇 개의 언론사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검색 결과를 보면서 사카린 밀수 사건을 웹 싸이트에 올려놓은 네티즌들을 따로 조사해서 삼성 취업 때 불이익을 준다는 모종의 압력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한다.


사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은 김두한 의원의 똥물 투척 사건의 처리 결과에서부터 나타났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김두한의 처리 문제를 놓고 박정희 측근에서는 소위 '충신파'와 '권력추종파'로 나뉘었는데 박정희가 권력추종파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김두한 의원은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그 이후로 고문의 후유증으로 김두한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으니 말이다.


즉, 정경유착을 하는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리더인 국회의장을 향해 기개 높게 일갈한 김두한이 같은 사람이 고문으로 죽어갔으니 그 누가 감히 충신의 고언을 했으리요? 물론, 충신이라면 목숨을 걸고 고언을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언론 왜곡사의 시작은 삼성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리고 박정희 정권이 급격히 타락의 조짐을 보인 것은 삼성과 관련있는 정경유착에서 한 기개 있는 의원의 몰락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니 오늘날 한국의 이상한 풍토의 고착은 삼성으로부터 연유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판단일까?


주 *1 : 미원은 지금은 대상으로 이름이 바뀐 회사의 이름이자 조미료의 상품명이고 미풍은 지금은 CJ로 바뀐 제일제당의 조미료 상품명이지만 이 글에서는 '미원과 미풍'으로 대비시킨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