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 한편을 새로 소개하기 위해 여러 시집들, 잡지들을 뒤적여봤으나 선듯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많이 늦어졌다. 최정란, 처음 들어보는 분이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엇그제 배달된 詩 전문계간지

시와 문화>22호에서 처음 본 이름이다. 작품부터 만나보자.

      *     청춘전당포                 최정란

 

  그 골목에서 맡길 것이라고는 청춘뿐이다.

유리가 달린 널빤지 문을 힘주어 열고

미쳐 날뛰는 뜨거운 말고삐를 건네준다

아마도 길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형편은 곧 풀릴 것이고 남은 시간은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돌려받을 것이다

말갈기를 손바닥으로 길게 쓸어주고

거칠어지는 심장박동을 진정시킨다

손바닥만한 창구멍으로 지폐 몇장 받아쥐고

뒤돌아보지 않고 가장 멀리까지 걸어간다

(녹슨 수도관 같던 골목길이 헐리고

헐값에 내맡기고 다시 되돌려받지 못한

말발굽 소리 지평선 너머 아득하다

불타는 말고삐가 손바닥 깊이 파고든다)

 

*( ) 처리된 부분은 사족 같은 느낌이 든다. 02년 출발한 시인이니 신인인 건 맞는데

발상이 새롭고 무엇보다 패기가 있다. 여러 작품 가운데 비교적 짧은 것을 택했는데

두번째 작품을 보기로 하자.

 

 

                                          접선             



  깜빡, 깜빡, 공중에서 모스부호가 만난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 불 꺼진 앞,  뒤 베란다

담뱃불, 빛을 전송하는 두 남자

 

오늘도 별 일 없었느냐고

말없는 안부가 공중으로 오고 가지만

주차장에서 날마다 스쳐도

누구인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삶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선으로 연결되어 그물코처럼 당겨지는

난해한 삶의 조직에

한 점으로 심겨진 스파이들

 

깊은 밤  같은 시간 깨어있는 담배 하나로

잠든 가족에게 보여주지 못한

서로의 어둠을 나눈다

 

필터로 다 걸러내지 못한 한 개피의

남자라는 기호,

 

외로움의 코드로 해독되지 않는 난수표.

 

 

* 이 시인의 좀 더 마음에 와 닿는 다른 시들이 있는데 너무 길어 접어둔다. 시들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구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시인은 카프카의 잠언들을 몇개 말미에 인용하고 있는데 이 잠언들에서

이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을 읽어볼 수가 있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찌르는 종류의 책들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가 읽은 책이

우리를 강타해서 머리까지 깨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단 말인가?- 카프카

 

위에 인용한 글에서 책을 詩로 혹은 다른 예술작품으로 바꿔도 같은 내용이 된다. 필자도 카프카의 이 인용

문에서 새삼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작품이고 더구나 면식이 없는 시인이라 여기 소개하기 위해 <시와 문화> 편집인의 동의를 얻어냈다.

시를 음악처럼 예술분야에 포함시키느냐? 잠시 망설이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러시아에서는 소설가 혹은

작가는 예술가로 처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작곡가나 화가처럼 예술가 예우를 해주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