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ynet.tistory.com/1815 의 논의와 함께..

원래 한국의 결혼문화가 (미국에 비해) 허례허식이 많기는 했지만, IMF이전 근까 평생직장 개념이 있을 때는 잘만 결혼을 했잖아요. 그 시절의 결혼풍속도는 잘 모르지만 그때는 남자가 지금처럼 집과 결혼식 비용 대부분을 치뤄야 하는 구도가 아니지 않았나요?

게다가 혼수로 열쇠 몇개 바리바리 챙겨 가야한다는 말은, 사자 돌림의 잘나가는 전문직(=특히 사시패스한 남성)에게 여성이 시집가는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였거든요. 그런 잘난 남자와 결혼하려면 신부측에서 그정도 재력은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 그게 우리 사회에서, 특히 상류층에서 작동했던 룰이었고, 또 당연시 되는 결혼문화였죠.

근데 이런 룰이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때는 돈과 권력 중 더 우월한 가치가 "권력"이었거든요. 군사정권의 독재로 정치권력의 힘이 비대칭적으로 커져있었기 때문에, 재계는 언제나 정계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가 돈보다는, 그 돈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을 더 높게 쳐주는 인식이 뿌리내려 있었죠.(=반면 지금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돈이 최고인 시대가 되었죠. 재계가 정계를 압도하는 시절이고, 그래서 삼성에 입사하는 게 가문의 영광인 시대가 되버렸죠. 오히려 사시패스한 이들은 로스쿨 졸업생들과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해야하는 형편으로 내몰렸고..)

소위 말하는 고시패스=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그런 거죠. 그 말뜻을 그대로 풀어보면 (니가 고시를 패스함으로)돈보다 더 우월한 권력을 쟁취했다는 말일 건데, 그 권력의 쟁취=사회적인 신분상승으로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돈보다 권력이 더 우월한 현실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었죠. 그래서 유수의 부자집 따님들이 집안은 하나도 볼 것 없는 정말 개천에서 용난 예비권력자들에게 열쇠 몇개 준비해서 시집가는 일이 흔했고, 그 시절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의 소재도 그런 게 참 많았습니다. 고시패스 하기 까지 힘들게 뒷바라지 해준 착하디 착한 여친사마를 찬 나쁜놈(=주로 이종원이 이런 역할로 많이 나왔죠..ㅋㅋ)에게 그 여주가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얘기..그 과정에서의 전형적인 신파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었죠. 아무튼 우리 사회의 풍경이 (IMF이전 까지만 해도)분명히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게 IMF를 거치고,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남성들의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게 되면서..(=Dj이후 정치권력이 민주화 된 것과 맞물려 이때 부터 돈이 최고인 사회로 변모해가죠.)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그 비정규직 자리에 (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가정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게 됐죠. 그러면서 남성들은 그 줄어든 정규직의 일자리를 놓고 더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려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학벌과 스펙이 쳐지는 이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좋은 정규직 일자리=좋은 학벌과 스펙의 공식이 자리잡게 되면서 하킴님이 이해못하시는 그 자식에게 올인하는 극성스런 대한민국 부모2.0(=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건국 이후로 늘 뜨거웠지만, 386운동권 세대가 486으로 변하면서, 근까 지금 우리 사회의 주축이자 부모세대가 되면서 나타나는 지금의 뒤틀린 교육열을 구분하여 2.0으로..)들이 출현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세계화의 파고와 신자유주의의 공습은 더욱 심해지고, 이제 사회의 저성장 기조와 첨예한 양극화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이 되버렸죠. 그래서 88만원 세대라는 조어가 나오고 희망고문이나 열정노동의 착취라는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그 현실이 하도 갑갑하니까 우리 사회에 또 멘토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중이죠. 그게 이 암울한 시대를 망각하기 위한  젊음에게 투여하는 기성세대의 아편인지, 뭔가 진정성을 갖고 젊음을 위로하기 위한 기성세대의 진지한 노력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아무튼 이준석의 말마따나 그게 별로 답이 될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현실 위에서, 지금 우리 세대의 결혼풍속도가 뿌리내려 있는 거겠는데..

이렇게 놓고 보면 하킴님이 위에 적어논 그 새로운 공식이 당연한 거겠죠. 우선은 돈이 최고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돈을 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당연한 거고..

근데 모든 여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비정규직 알바나 공순이가 아닌, 곧 경쟁에서 남성들을 제치고 대기업이나 전문직 혹은 교사나 공무원 자리를 획득한)알파걸은 아니기 때문에, 결혼적령기 기준으로 남녀성비에서 여성이 부족하다는 현실과, 여전히 가정부양의 책임이 남자에게 더 무겁게 주어지는 사회적 습속까지 고려하면, 여성들이 남자의 경제적 조건을 저런 식으로 따지는 게 이해못할 바는 아니겠죠.

근데 그 기준이 집과 결혼비용으로 까지 무겁게 부과된 것은, 우선 물가가 올라 돈은 값어치가 없고 임금은 안오르는데 부동산은 거품이 잔뜩 껴서 대개의 비정규직 직장을 가진 남성의 월급을 평생 모아도 내 집한칸 마련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현실 때문이겠죠. 앞서 말했듯, 대개의 여성들은 알파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맞벌이를 해도 자신은 비정규직, 그것도 남성보다 훨씬 낮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그것도 결혼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붙어있는 게 힘든 경우가 많죠. 곧 고용의 불안정을 상수로 계산해 두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그리게 되면 남자가 집한채 해오고(=이것을 기본 베이스로 깔아도 우리 사회의 불문율인 좋은 정규직 일자리=좋은 학벌 및 스펙의 공식 때문에 자녀 밑에 투자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부모2.0 모두가 극성스럽게 올인하고 있는데 나만 안할 수가 없는 거죠. 근데 그 돈이 어마어마 합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자식 밑에 들어가는 돈 빼면 아끼고 아껴서 겨우 보험 한개나 들려나? 문화생활 따위는 생각할 수 조차 없죠. 그러니 결혼을 안할려는 거고, 자식을 안놓을려는 겁니다. 딴 이유가 아니라..)나서야 인생설계가 겨우 가능해 지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 최소한의 물질적인 조건이 안갖춰지면 결혼해봐야 맨날 싸우겠죠. 사랑의 유효기간이 영원한 것이 아닌 바에야, 결국 돈 문제 때문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경우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실제로 그런 커플들이 너무나 많아 한국의 이혼율이 전세계를 통털어 킹왕짱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누구도 결혼과 출산을 쉽게 생각할 수가 없는 거죠. 평생직장이 있고, 물가가 안정적이었던 예전에는 사고치고 나면 결혼부터 하고, 그러고 나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현실이었는데..이제는 대책없이 싸지른 것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애 밑에 들어가는 돈이 감당이 안되서 자기 마누라 노래방 알바까지 보내야는 현실이 오고 맙니다. 이게 비관적인 상상이 아니라, 저와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 중 일부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럼 여성들이 순전히 먹고사니즘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건가? 저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욕구가 없는 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뒤틀린 욕구가 더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연하고, 여성의 성이 고도로 상품화가 되면서, 하킴님이 제시한 위의 조건에서 남성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심하게 부과된 반면, 여성에게는 이뻐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근까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스스로가)훌륭한 상품이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이 굉장히 심합니다. 빈부격차를 불문하고, 어려서 부터 그 요구를 당연하게 내면화하고 자란 세대가 오늘 결혼적령기에 있는 바로 그 여성분들입니다. 그래서 여성분들 중에는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잘 가꿔서, 결혼시장에서 경제적 능력이 있고 외모나 조건이 좋은 남성과 자신의 가치를 교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죠. 우리 사회가 그것을 부추기고 있고, 또 예쁘고 매력있는 여성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남성들이 그 뒤틀린 문화를 용인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 세대는 하킴님이 말한 그 조건을, (남성들 조차)개인적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어느정도는 다 납득하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남성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알파걸이 된 여성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이렇게 하면 저는 하킴님의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책과 씨름하며 보내느라, 연애든 뭐든, 청춘이 누릴 수 있는 낭만과 유희를 또래 여성분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희생했다는 거겠죠. 그렇게 경제적 안정을 이룬 후, 남보다 한 발 늦게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그렇다면 (어짜피 동시대를 살았던 그)알파걸이 내면화하고 있는 가치 중에는, (남자의 경제적 조건 보다는)(어린 시절 순정만화를 보며 꿈꾸었던)매너좋고 잘생기고 지성과 교양을 갖춰 대화까지 통하는, 소위 백마탄 왕자님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더 강하겠죠. 하지만 그 기대치는, 소위 엄친아에 속하는 결혼시장에 나와있는 동일연령대 남성들의 기대치와는 현격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그 엄친아 남자들이 바라는 것은, 똑똑하고 돈잘버는 알파걸이 아니라, 이쁘고 섹시하고, 약간은 백치미 까지 있는 그런 여성이거든요. 대개의 남자들은 그런 여성에 환장하기 때문에, 이 알파걸이 결혼시장을 암만 둘러봐도 마땅한 결혼상대자를 찾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괜찮은 남자가 없어 결혼 못하겠다고 말하는 알파걸들이 널렸습니다.

그럼 이게 알파걸들 만의 얘기냐? 그것도 아니죠. 가난하고 못배우고 내세울 것 없는 (중)하층계급의 여성들도 마찬가집니다. 이들에게는 먹고사니즘이 최우선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자의 경제적 조건을 가장 우선적으로 본다는 거지, 이들 역시 "(어린 시절 순정만화를 보며 꿈꾸었던)매너좋고 잘생기고 지성과 교양을 갖춰 대화까지 통하는, 소위 백마탄 왕자님"을 욕망하는 것은 매한가집니다. 근데 솔까말 그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뭔가 다 부족해도 한가지 좋은 게 있다면 그거 보면서 연애하고 함께 사는 게 보통의 경우였었는데, 높은 교육열, 또 활발한 사회진출로 인해 여성들의 자의식이 뚜렷해져서,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거죠. 한가지 좋은 게 있어도 두가지 나쁜 게 있으면, 아니 한가지 나쁜 게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남자들이 단박에 까이는 세상이 왔습니다. ㅎㅎ 곧 우리 어머니 세대가 공유하고 있던, (여자가 어느정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금제가 풀려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 남자와 가치관이 맞는가 안맞는가가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본주의화가 심화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될 수록 (계층을 불문하고)(맘에 드는 배우자가 없다는 이유로)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자연스런 사회현상으로 정착하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하킴님이나 게타빔님이나 다 맞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사회현상의 어떤 부분을 더 부각해서 보고 있는 지의 초점이 엇갈려 있는 것 뿐이겠는데, 그것 때문에 얼굴 붉힐 이유는 없는 거죠.


덧:

ㅎㅎ 아 저도 두분 대화를 보면서 금제를 깨고 잠시 끼여들었는데, 자숙하는 맘으로 다시 잠수모드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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