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을 비롯한 효과적인 피임 수단은 최근에야 개발되었다. 인간은 콘돔이 없는 환경에서 진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콘돔과 관련하여 매우 부적응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콘돔 사용은 대체로 번식에 방해가 된다. 이것이 진화 심리학계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콘돔 사용이 적응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Tooby & Cosmides는 어딘가에서 콘돔 사용이 적응적이라고 해석한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콘돔 사용이 적응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생각은 대충 이렇다:

 

번식 성공은 자식을 얼마나 많이 낳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번식에 성공한 자식이 얼마나 많으며 그 자식이 번식에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식을 아무리 많이 낳아도 손자를 볼 수 없다면 말짱 헛짓인 것이다. 만약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무작정 자식을 많이 낳는다면 자식의 수에서는 남들보다 앞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들 중 상당수가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며 어른이 되더라도 경쟁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결국 손자, 증손자, 고손자 등을 기준으로 보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응적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어떤 부부는 콘돔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략 1년에 한 번씩 평생 20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 중 15명은 죽었으며 살아 남은 5명도 영양과 보살핌 부족으로 경쟁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자. 반면 다른 부부는 콘돔을 사용하여 평생 6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 중 1명은 죽었으며 살아 남은 5명은 영양과 보살핌이 상대적으로 좋아서 경쟁력이 높다고 하자. 결국 콘돔을 사용한 쪽이 번식 경쟁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복지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선진 산업국에서는 가난한 부부가 자식을 20명을 낳아도 보통 19명 이상 살아남는다. 예컨대 어떤 선진 산업국의 사춘기 이전 사망 확률이 부잣집의 경우에는 1%이고 가난한 집의 경우에는 5%라고 하자. 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5배의 차이가 얼마나 끔찍한지 열변을 토할 것이다. 하지만 번식 성공에 대해 따지는 냉정한 진화 심리학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집에서도 95%는 살아남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것이다.

 

어떤 가난한 부부가 자식을 20명 낳았는데 19명만 살아남았다고 하자. 어떤 부잣집에서는 3명만 낳았으며 3 명 모두 살아남았다고 하자. 누가 번식에 더 성공한 것일까?

 

 

 

물론 그 부잣집 자식 3명이 가난한 집 자식 19명에 비해 더 경쟁력이 있어서 번식을 훨씬 더 잘한다면 결국 손자수로는 부잣집이 승리할 수도 있다. 19/3배 즉 6.3배 이상 더 잘 번식하면 된다.

 

하지만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 자신의 부모처럼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전략을 쓴다면, 그리고 부잣집 자식들이 자신의 부모처럼 콘돔을 사용하면서 3명만 낳는 전략을 쓴다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콘돔을 사용하면 심지어 부자 부부가 가난한 부부에 비해 번식 경쟁에서 훨씬 뒤쳐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식의 경쟁력의 경우에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더 똑똑하고, 건강하고, 힘 세고, 잘 생기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더 잘 번식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그런가? 지위가 높은 남자가 지위가 낮은 남자에 비해 더 잘 번식할까?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많은 산업 사회 문화권에서는 가난한 부부가 부자 부부에 비해 자식을 훨씬 더 많이 낳는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번식 경쟁력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번식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된 복지 국가에서는 무작정 많이 낳는 것이 가장 유력한 번식 전략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낳아도 국가에서 어느 정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물은 어느 환경에서도 번식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생물은 적응-실행자(adaptation-executer)이지 적응도-최대화자(fitness-maximizer)가 아니다.

 

진화 심리학의 개념적 기초

John Tooby and Leda Cosmides

한국어: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44

영어: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bussconceptual05.pdf

 

 

 

이덕하

201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