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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voj Žižek’s speech to Greece’s Coalition of the Radical Left (SYRIZA)

슬라보예 지젝의 그리스 급진좌파 연합(시리자) 토론회 초빙 연설

 

* 출처: <레프트> / 201264

http://www.left.gr/article.php?id=1985

 

I am honoured to be here, but ashamed that I don’t speak your language. So, let me begin: Late in his life, Sigmund Freud, the father of psychoanalysis, asked the famous question; “What does a woman want?” Admitting the perplexity, when faced with the enigma of feminine sexuality. And a similar perplexity arises today; “What does Europe want?”

 

이 자리에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만 여러분의 말을 할 수 없어 미안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꺼내보죠: 그의 생의 말기에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명해진 물음을 던졌습니다: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이 물음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수수께끼에 직면할 때의 당혹스러움을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사한 당혹스러움이 발생합니다: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

 

This is the question you, the Greek people, are addressing Europe. Because you know what you want, you want this guy to be your next Prime Minister. (Gestures to Alexis Tsipras sitting next to him.)

 

이것은 여러분 그리스 국민이 유럽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사람이 여러분의 다음 수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가리키는 몸짓을 함.)

 

Europe doesn’t know what it wants. The way European States and media relates to what is going on now in Greece, is, I think, the best indicator of what kind of Europe they want. Is it the neo-liberal Europe, is it the Europe of isolationist states or maybe something different?

 

유럽은 그리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모릅니다. 유럽 국가들과 미디어가 그리스에서 진행 중인 것을 얘기하는 방식이, 제 생각으로는, 그것들이 원하는 종류의 유럽의 최상의 지표입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유럽일까요, 그것은 고립주의적 국가들이나 아마 다른 무엇인가의 유럽일까요?

 

Critics accuse SYRIZA of being a threat to the Euro, but SYRIZA is, on the contrary, the only chance for Europe. Far from being a threat. You are giving a chance to Europe to break out of its inertia to find a new way.


비판자들은 시리자를 유럽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비난하지만 시리자는 반대로 유럽을 위한 유일한 기회입니다. 위협이기는커녕 말입니다. 여러분은 유럽에게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In his notes towards a definition of culture, the great conservative poet, T.S. Eliot, remarked the moments when the only choice is between heresy and non-belief. That is to say moments when the only way to keep a belief, to keep religion alive, is to perform a sectarian split from the main course.

 

문화를 정의하고자 한 글에서 위대한 보수주의자 T.S. 엘리어트는 이단이냐 비신앙이냐가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기에 관해 썼습니다.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종교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주요 진로로부터의 종파주의적 분리를 수행하는 것인 때 말입니다.

 

This is what happens today with Europe; only a new heresy represented at this moment by SYRIZA, can save what is worth saving in the European legacy; Democracy, trusting people, egalitarian solidarity. The Europe that will win, if SYRIZA is out-maneuvered is a Europe with Asian values and of course these Asian values have nothing to do with Asia, but with the clear and present tendency of contemporary capitalism to suspend democracy.

 

이것이 오늘날 유럽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 시기 시리자에 의해 대변되는 새로운 이단만이 유럽 유산에서 구제할 가치가 있는 것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람들을 신뢰하기, 평등주의적 연대. 시리자가 패배할 경우 아시아적 가치들을 지닌 유럽이 등장할 것입니다. 물론 이 아시아적 가치들은 아시아와는 관계없으며 민주주의를 유보시키고자 하는 동시대 자본주의의 분명한 경향과 관계있습니다.

 

SYRIZA is said to lack the proper experience to govern. Yes, I agree, they lack the experience of how to bankrupt a country by cheating and stealing. You don’t have this experience. This brings us to the absurdity of the politics of the European establishment; they bring the preach of paying taxes, opposing Greek clientelism and they put all their hopes on the coalition of the two parties which brought to Greece this clientelism.

 

시리자한테는 통치하는데 적합한 경험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죠, 동의합니다, 그들한테는 기만과 절도에 의해 한 나라를 파산시킬 방법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경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를 유럽 기성체제의 정치의 부조리함으로 끌고 갑니다; 그 정치는 그리스 클라이엔텔리즘에 맞서 납세를 설교하고 그리스를 이 클라이언텔리즘으로 이끌었던 두 정당들의 연합에 모든 희망을 겁니다.

 

Christine Lagarde, recently said that she has more sympathy for the poor inhabitants of the Niger, than for Greeks, and she even advised the Greeks to help themselves by paying their taxes, which, as I found a few days ago, she doesn’t have to pay. Like all liberal humanitarians, she likes the impotent poor who behave like victims, evoke our sympathy and bring us to give charity.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최근 그녀가 그리스인들보다는 니제르의 빈곤한 주민들을 더 동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납세하는 것에 의해 자신들을 도우라고 그리스인들에게 충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몇 일전 깨달았던 대로 그녀는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자들처럼 그녀는 희생자들처럼 행동하며 우리의 동정을 끌어내고 우리로 하여금 자선을 행하도록 하는 무능한 빈자들을 좋아합니다.

 

But the problem with you Greeks is that you suffer, yes, but you are not passive victims, you resist, you fight, you do not want sympathy and charity, you want active solidarity. You want and you demand a mobilization, a support for your fight.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인들이 처한 문제는 여러분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은 수동적 희생자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저항하고 투쟁하며 동정과 자선이 아니라 적극적인 연대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동원을, 여러분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원하고 요구합니다.

 

SYRIZA is accused of promoting leftist fictions, but it is the austerity plan, imposed by Brussels, which clearly is a work of fiction. Everybody knows that this plan is fictitious, that the Greek state, cannot ever repay the debt, in this way. In a strange gesture of collective make-belief, everyone ignores the obvious nonsense of the financial projection on which the European plans are based.

 

시리자는 좌파적 허위들을 촉진한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짜 허위적 짓거리인 것은 브뤼셀에 의해 부과되는 긴축 계획입니다. 모든 이가 이 계획이 허위적이라는 것을, 그리스 국가가 결코 이 방식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집단적 믿음-만들기라는 기묘한 몸짓으로, 모든 이들은 그 유럽 계획들이 기반하고 있는 재정 설계의 명백한 넌센스를 무시합니다.

 

So why does Brussels impose these measures on you? The true aim of these measures is not to save Greece, but of course to save the European banks.

 

그렇다면 왜 브뤼셀은 여러분에게 이 조치를 부과할까요? 이 조치의 진짜 목표는 그리스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유럽 은행들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These measures are not presented as decisions grounded in political choices, but as necessities imposed by neutral economic logic. Like, if we want to stabilize our economy, we simply have to swallow the bitter pill. Or, by tautological proverbial sayings, like you cannot spend more than you produce. Well, the American banks and United States as such, are a big proof, for decades, that you can spend more than you produce.

 

이 조치는 정치적 선택에 기반 해 있는 결정으로가 아니라 중립적 경제논리에 의해 부과된 필수적인 것으로 제시됩니다. 경제를 안정화시키고자 한다면 더 쓴 약을 삼켜야 할 뿐인 것과, 또는, 동어반복적 속담대로,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이거 원, 미국 은행들과 미국 자체가 수십 년 동안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커다란 증거였는데 말입니다.

 

To illustrate the mistake of austerity measures, Paul Krugman, often compares them to the medieval practice of blood letting. A nice metaphor, which I think should be radicalized, further. The European financial doctors, themselves not sure about how this medicine works, are using you as test-rabbits, they are letting your blood, not the blood of their own countries. There is no blood letting for the German and French banks. On the contrary, they are getting big transfusions.

 

긴축 조치의 잘못을 예시하기 위해 폴 크루그만은 종종 그것을 중세의 혈액 방출 처치와 비교합니다. 멋진 은유입니다만 저는 이 은유가 더 급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자신이 이 치료법이 들을지에 관해 확신하지 않고 있는 유럽 재정 의사들은 여러분을 시험용 토끼들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나라들의 혈액이 아니라 여러분의 혈액을 방출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게는 혈액 방출은 없습니다. 반대로, 그 은행들은 대량의 수혈을 받습니다.

 

So is SYRIZA, really, a group of dangerous extremists? No, SYRIZA is here to bring pragmatic common sense. To clear the mess created by others. It is those who impose austerity measures who are dangerous dreamers. The true dreamers are those who think that things can go on, indefinitely, the way they are just with some cosmetic changes. You are not dreamers; you are awakening from a dream, which is turning into a nightmare.

 

이래도 정말 시리자가 위험한 극단주의자들의 집단입니까? 아니죠, 시리자는 실용적인 상식이 통하게 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야기한 골칫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위험한 몽상가들은 긴축조치를 부과하는 이들입니다. 진짜 몽상가들은 약간의 표면적 변화들만으로도 경제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 방식대로 무한정 계속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여러분은 몽상가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악몽으로 변하고 있는 몽상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You are not destroying anything; you are reacting to how the system is gradually destroying itself. We all know the classic scene from cartoons, Tom and Jerry and so on: The cat reaches the precipice, but goes on walking, ignoring the fact that there is no ground under its feet, then it only starts to fall down, when it looks down and notices that there is nothing. This is all you are doing. You are telling those in power, “hey, look down!” and they are falling down.

 

여러분은 아무것도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시스템이 점차 그 자신을 파괴해가는 방식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톰과 제리> 등의 만화들에 나오는 고전적 장면을 압니다: 고양이는 벼랑에 이르지만 발을 디딜 곳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다가 아래를 내려 보고 허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서야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 헤이, 내려다 봐라고 얘기해 주고 있고 그들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The political map of Greece is clear and exemplary; In the centre, I hope you noticed it, there is, that, one big party, one party, with two wings, left and right, PASOK and New Democracy. It’s like, you know, Cola, which is Coca and Pepsi, an indifferent choice. The true name of this party, if you bring PASOK and ND together, should be something, I think, like NHMAD, New Hellenic Movement Against Democracy.

 

그리스의 정치 지도는 분명하고 범례적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만, 중앙에는 거대 정당 하나, 파소크(PASOK)와 신민당(New Democracy)을 좌와 우 양익으로 하는 하나의 정당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것은 서로 무차별한 선택지들인 코카와 펩시로 구성되어 있는 콜라와 같습니다. 이 정당의 진짜 이름은, PASOK ND를 하나로 묶는다면, 제 생각으로는 NHMAD, 즉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신 헬레니즘 운동 (New Hellenic Movement Against Democracy)같은 것일 듯합니다.

 

* 파소크(PASOK) - 그리스의 주요 중도좌파 정당인 범헬레니즘 사회주의 운동(The Panhellenic Socialist Movement) 의 약칭. 201256일 총선에서 제3당으로 밀려나기 전에는 그리스의 두 주요 정당들 중 하나였다.

 

* 신민당(New Democracy) - 그리스의 주요 중도우파 정당이자 두 주요 정당들 중 하나. 흔히 ‘ND’로 약칭한다.

 

Of course, this big party claims that is for democracy, but I claim they are for decaffeinated democracy. Like, you know, coffee without caffeine, beer without alcohol, ice cream without sugar. They want democracy, but democracy where instead of making a choice, people just confirm what wise experts tell them to do. They want democratic dialogue? Yes, but, you know, like in the late Plato’s dialogues, where one guy talks all the time, and the other only says, every ten minutes, “by Zeus, so it is!”

 

물론, 이 거대 정당은 민주주의를 위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들이 핵심 성분이 제거된 민주주의를 위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이 아다 시피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콜 없는 맥주, 설탕 없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민주주의 말입니다. 그것들은 민주주의를 원합니다만 사람들이 선택을 행하는 대신 그저 현명한 전문가들이 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을 승인하기만 할 뿐인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 현명한 전문가들이 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을 승인하기만 할 뿐인 민주주의 - 이것이 앞에 나온 클라이언텔리즘(clientelism)’의 의미이다.

 

And then, there is the exception. You, SYRIZA, the true miracle, radical left movement, which stepped out of the comfortable position of marginal resistance and courageously signaled your readiness to take power. This is why you have to be punished.

 

그것들 옆에 예외가 있습니다. 여러분, 시리자, 진짜 기적, 주변적 저항이라는 편안한 위치에서 뛰쳐나와 권력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용기 있게 선언한 급진적 좌파 운동. 이것이 여러분이 처벌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That is why Bill Freyja, recently wrote in the Forbes magazine, in an article with the title “ Give Greece what it deserves: Communism.” Here is a short quote:

 

“What the world needs, let’s not forget, is a contemporary example of communism in action. What better candidate than Greece? Just toss them out of the European Union, cut off the flow of free Euros and hand them back their old drachmas. Then, stand back for a generation and watch”. In other words, Greece should be exemplary punished so that once and for all, the temptation for a radical, leftist solution of the crisis will be blocked.”

 

그것이 빌 프레야가 최근 <포브스> 매거진에 그리스에게 그것이 바라는 것, 즉 공산주의를 주라는 글을 쓴 이유입니다. 짧은 인용문 하나를 봅시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작동하는 공산주의의 동시대판이다. 그리스보다 더 좋은 후보가 있을까? 그들을 유럽 연합으로부터 빼내고 자유로운 유로화의 흐름으로부터 꺼내 그들에게 그들의 옛 드라크마화를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서는 한 세대 동안 물러서서 지켜보자. 달리 말해, 그리스는 위기의 급진적인, 좌파적인 해결책의 유혹이 일거에 차단되도록 모범적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I know that the task of SYRIZA is almost impossible. SYRIZA is not the extreme left madness, it is the voice of pragmatic reason, counteracting the market ideology madness. SYRIZA will need the formidable combination of principle politics and rootless pragmatism of democratic commitment and readiness to act fast and brutally when needed. If you, SYRIZA are to be given a chance, a minimal chance to succeed, you will also need pan-European solidarity.

 

저는 시리자의 과제가 거의 달성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시리자는 극단적인 좌파 광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장 이데올로기 광기에 대항하는 실용주의적 이성의 목소리입니다. 시리자는 원칙주의적 정치와 민주주의적 참여의 뿌리없는 실용주의와 요구될 때 신속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려는 정신자세의 가공할 결합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 시리자에게 하나의 기회, 최소한의 성공 기회가 주어지려면, 여러분은 또한 범유럽적 연대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This is why I think, you, here in Greece, should avoid cheap nationalism, all the talk about how Germany wants to re-occupy you, destroy you and so on. Your first task is to change things here. SYRIZA will have to do the job, which the other guys should have done. The job of building a better, modern an effective state. The job of clearing the state apparatus from clientelism. It’s a hard job, there is nothing enthusiastic in it, it’s slow, hard, boring job.

 

이것이 제가 여러분이 이곳 그리스에서 값싼 민족주의를, 얼마나 독일이 그리스를 재점령하고 파괴하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온갖 얘기들 등등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첫 번째 과제는 여기서 사태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시리자는 다른 이들이 했어야만 했던 일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더 나은, 현대적인 - 하나의 유효한 국가를 건설하는 일말입니다. 클라이언텔리즘으로부터 국가장치를 빼내는 일말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에는 열광할 만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느리고 고되고 지루한 일입니다.

 

Your pseudo-radical critics are telling you that the situation is not yet right for the true social change. That if you take power now, you will just help the system, making it more efficient. This is, if I understand it correctly, what KKE, which is basically the party of the people who are still alive because they forgot to die, are telling you.

 

여러분의 사이비 급진 비판자들은 상황이 아직 진정한 사회적 변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러분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권력을 잡는다면 더 효율적이 되도록 시스템을 보조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바로 이해했다면, 기본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당인 KKE가 여러분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 KKE - ‘Kommounistikó Kómma Elládas’의 약칭으로 그리스 공산당을 말한다.

 

It is true, that your political elite demonstrated its inability to rule, but there will never be a moment when the situation will be fully right for the change. If you wait for the right moment, the right moment will never come. When you intervene, it is always immature. So, you have a choice: Either comfortable wait and look how your society is disintegrating, as some other parties of the Left suggest, or heroically intervene, fully aware of how difficult the situation is. And SYRIZA made the right choice.

 

여러분의 정치 엘리트가 통치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상황이 변화에 완전히 적합한 시기라는 것은 결코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적합한 시기를 기다린다면, 그 적합한 시기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개입은 언제나 성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몇몇 다른 좌파 정당들이 제안하는 대로 편안히 기다리면서 어떻게 여러분의 사회가 해체되어 가는지를 지켜보든가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완전히 자각하면서 영웅적으로 개입하든가. 이 지점에서 시리자는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Your critics hate you, because, I think, secretly, they know you have the courage to be free and to act as free people. When you are in the eyes of the public, those who observe you understand, at least for the flash of an instant, that you are offering them freedom. You dare do what they also dream about. For that instant, they are free. They are one with you. But it is only for a moment. Fear returns and they hate you again, because they are afraid of their own freedom.

 

여러분의 비판자들은, 제 생각에는, 은밀히, 그들이 여러분이 자유롭고자 하고 자유로운 사람들로서 행동하고자 할 용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증오합니다. 여러분이 공중의 눈앞에 있을 때, 여러분을 지켜보는 이들은 여러분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한 순간 동안은 압니다. 여러분은 그들 또한 꿈꾸었던 것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동안, 그들은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 순간 동안뿐입니다. 두려움이 되돌아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시 여러분을 증오합니다.

 

So, what is the choice that you, the Greek people, are facing on June 17? You should bear in mind the paradox that sustains the free vote in democratic societies: You are free to chose on condition that you are making the right choice. Which is why, when the choice is the wrong one, for example when Ireland voted against the European constitution, the wrong choice is treated as a mistake and you know, they want to repeat the voting, in order to enlighten the people to make the right choice. And this is why the European establishment is in a panic. They see that maybe, you don’t deserve your freedom, because there is a danger that you will make the wrong choice.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리스 국민이 617일에 직면하고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민주주의 사회들에서 자유투표를 유지시키는 역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한에서만 여러분은 선택의 자유를 갖습니다. 이것이 선택이 잘못된 것일 때, 예를 들어 아일랜드가 유럽 헌법에 반대표를 던졌을 때, 그 잘못된 선택이 실수로 취급되고 여러분도 아다 시피 그것들 [민주주의 사회들],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투표를 다시하기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유럽 기성체제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잘못된 선택을 행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유를 누릴만한 이들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There is a wonderful joke in Ernst Lubitsch, classical comedy, Ninoxka: The hero, listens carefully, visits a cafeteria and orders a coffee without cream. The waiter replies “Sorry, but we have run out of cream, we only have milk, so can I bring you coffee without milk?” So, in both cases, you get coffee alone, but I think the joke is a correct one. You know negation also matters. The coffee without cream is not the same as the coffee without milk. You are in the same predicament today; the situation is difficult. You will get some kind of austerity, but will you get the coffee of austerity without cream, or without milk? It is here that the European establishment is cheating. The European establishment is acting as if you will got the coffee of austerity without cream. That is to say that the fruits of your hardship will not profit only European banks, but they are effectively offering you coffee without milk, it is you who will not profit from your own sacrifice and hardship.

 

에른스트 루비취의 고전적 희극 영화 <니노카>에는 기막힌 농담 하나가 나옵니다: 주의해서 들어야 하는데요, 주인공은 한 카페테리아에 가서 크림 없는 커피를 주문합니다. 웨이터는 죄송합니다만 크림은 다 떨어지고 밀크만 남아 있군요. 밀크 없는 커피를 갖다 드려도 될까요?”라고 응답합니다. 두 경우 모두 여러분은 커피만 얻습니다만 저는 그 농담이 정확한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부정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크림 없는 커피는 밀크 없는 커피와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동일한 처지에 있습니다; 상황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동일한 종류의 긴축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크림 없는 긴축 커피와 밀크 없는 긴축 커피 중 어느 것을 원하나요? 유럽 기성체제가 여러분을 기만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입니다. 유럽 기성체제는 마치 여러분이 크림 없는 긴축 커피를 얻게 될 것처럼 행동합니다. 즉 여러분의 고된 노동의 결실은 유럽 은행들을 배부르게 할 뿐 아니라 그 은행들은 결국 여러분에게 밀크 없는 커피를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희생과 노고로부터 아무런 수익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In the very South of Peloponnese, around Mani, I was there, I know it, the so-called weepers; women that you hire to cry at funerals. They can do the spectacle for the relatives of the diseased. Now, there is nothing primitive about this. We, in our developed societies, are doing exactly the same. Think about this wonderful invention, I think maybe the greatest contribution of America to the world culture, the so-called can-laughter. You know, the laughter, which is part of their sound track on TV. Like, you know, you can go home tired, you put on TV some stupid show like Cheers or Friends and you just sit and the TV, even laughs for you. And, unfortunately, it works.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남쪽 끝, 마니 주변 지역에는, 제가 알기로, 소위 곡녀들이 있습니다; 장례식에서 곡을 하도록 고용된 여성들. 그녀들은 사망자의 친인척을 위해 그 구경거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행에는 원시적이라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발전한 사회들에서 사는 우리도 정확히 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에 미국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소위 녹음된 웃음소리(can-laughter)’ 라는 놀라운 발명품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도 아다 시피, 그 웃음소리는 TV로 방송되는 사운드 트랙의 일부입니다. 여러분도 아다 시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 TV를 키고는 <치어스> <프랜즈> 따위의 시시한 볼거리에 채널을 맞추고 그저 편안히 앉아 있기만 하면 TV가 여러분 대신 웃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효과를 냅니다.


That’s how those in power, the European establishment, wants to see, not only Greek people, but all of us: Just staring at the screen and observe how the others are doing the dreaming, crying and laughing. There is an apocryphal but wonderful anecdote about the exchange of telegrams between German and Austrian army headquarters in the middle of the First World War: The Germans sent a message to the Austrians; “Here, on our part of the front, the situation is serious, but not catastrophic.” The Austrians replied; “Here, the situation is catastrophic but not serious.”

 

그것이 권력을 쥔 자들이, 유럽 기성체제가 그리스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보고 싶어하는 방식입니다: 스크린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다른 이들이 꿈꾸고 외치고 웃는지 지켜보기나 하라. 일차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독일 육군 수뇌부와 오스트리아 육군 수뇌부 사이의 전신교환에 관한 출처불명이지만 기막힌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기, 전선의 우리 편에서는 상황은 심각하지만 파국적이지는 않음.” 오스트리아군이 답신했습니다: “여기, 상황은 파국적이지만 심각하지는 않음.”

 

This is the difference between SYRIZA and others: For the others, the situation is catastrophic, but not serious, things can go on as usual, while for SYRIZA, the situation is serious, but not catastrophic, since courage and hope should replace fear. So, what is ahead of you is to quote the title of an old song of the Beatles, “a long and winding road.” When decades ago, the cold war threatened to explode into a hot one, John Lennon wrote a song, you remember it, if you are old enough, “all we are saying is give peace a chance.” Today, I want to hear a new song all around Europe, “all we are saying is give Greece a chance.”

 

이것이 시리자와 다른 정파들 사이의 차이입니다; 다른 정파들에게는 상황은 파국적이지만 심각하지는 않아서 경제는 여느 때처럼 계속 굴러갈 수 있지만 시리자에게는 상황은 심각하지만, 용기와 희망이 두려움을 대체할 것이기에, 파국적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앞에 있는 것은, 비틀즈의 옛 노래 하나의 제목을 인용하면, “길고 구불구불한 길입니다. 수십 년 전 냉전이 열전으로 폭발할 위험이 있었을 때, 존 레논은, 나이든 분들은 기억하실 텐데,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평화에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유럽 도처에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에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는 새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Allow me just to conclude with a reference to one of your greatest maybe, the greatest classical tragedies, Antigone: Don’t fight battles, which are not your battles. In my idea of Antigone, we have Antigone and Creon. These are just two sects of the ruling class. This is, a little bit, like PASOK and New Democracy. In my version of Antigone, while the two members of the royal families are fighting each other, threatening to ruin the state, I would like to see the chorus, the voices of the people, stepping out of this stupid role of just wise comment, take over, constitute a public committee of people’s power, arrest both of them, Creon and Antigone and establish the people’s power.

 

여러분의 가장 위대하고 아마도 가장 고전적인 비극들 중 하나일 <안티고네>를 참조해서 결론을 내릴까 합니다: 여러분의 전투들이 아닌 전투들에서 싸우지 마십시오. <안티고네>에 대한 제 견해로는, 우리는 안티고네와 크레온 둘 모두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배계급의 두 분파들일 뿐입니다. 어느 정도는 파소크와 신민당도 그렇습니다. <안티고네>에 대한 제 해석을 내려 보자면, 왕가의 그 두 성원들이 국가가 파괴될 수도 있는 위기를 초래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는 동안 저는 합창단이, 민중의 목소리가 현명한 논평이라는 시시한 역할을 박차고 나와 민중 권력 공공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들 양자, 즉 크레온과 안티고네를 체포해 민중권력을 확립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Just allow me now to finish with a personal note. I hate the traditional, intellectual left, which likes revolution but the revolution, which takes place somewhere far away. This is why when I was young, the further away it is, the better; Vietnam, Cuba, even today, Venezuela. But you are here, and that’s what I admire. You are not afraid to engage in a desperate situation, knowing how the odds are against you. And this is what I admire. You know, there is also a principled opportunism, opportunism of principles. When you say the situation is lost, we cannot do anything, because we would betray our principles, this appears to be a principled position, but it’s really the extreme form of opportunism. SYRIZA is a unique event of how precisely that left -in contradiction to what the usual extra-parliamentary left does, that cares more if some criminals’ human rights are violated, than if thousands are dying- gathered the courage to do something. So I conclude now with a great honor to give the word to your future prime minister.

 

개인적인 얘기 하나만 더 하고 끝맺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혁명을 좋아하되 어딘가 먼 곳에서 일어나는 혁명만을 좋아하는 전통적인, 지식인 좌파를 혐오합니다. 이것이 제가 젊었을 때, 혁명이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았던 이유입니다; 베트남,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쿠바, 베네수엘라. 그러나 여러분은 여기 있고 그것이 제가 찬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형세가 얼마나 여러분 편에 있지 않은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절망적인 상황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제가 찬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원칙화된 기회주의, 원칙들의 기회주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이 진 상황이라고 말할 때, 원칙들을 배신하게 될 것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이것은 원칙화된 입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기회주의의 극단적 형태입니다. 시리자는 정확히 어떻게 좌파가 -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여부보다는 몇몇 범죄자들의 인권이 위반 되었는지 여부에 더 신경 쓰는 통상적인 의회 밖 좌파가 하는 것과는 반대로 - 무엇인가를 하려는 용기를 냈는가를 보여주는 독특한 사건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미래의 수상에게 마이크를 돌리는 대단한 영광과 함께 이만 제 순서를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