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논란이 되었던 구라성인님의 주장을 '정당화 시키는 논리'........ 나중에 시간나면 좀 정제해서 쓰지요.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말은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폭력의 부당성'을 말할 자격이 없는 지배층이 '도덕이라는 잣대'로 피지배층에게 내리는 도덕률이라는 독약이 든 잔과 같다. 이 말을 노빠들의 주장으로 대치 시켜보자.

 


'어떠한 경우에도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노빠가 닝구들을 지배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다. '새누리당 투표 안됨'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노빠가 도덕이라는잣대로 닝구들에게 도덕률이라는 독약이 든 잔을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결국, 닝구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닌 제3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내가 '닝구들의 투표 행위에 대하여' 특정한 선택을 강요하는 노빠들은 파쇼라고 비난하는 이유이다.



 

 

물론, 닝구들의 선택이 역사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박정희 지지가 그렇고 노무현 지지가 그를 반증시켜주지 않는가? 그러나 내 선택의 결과로 역사가 더 나쁘게 흘러가는 것은 내가 역사의 국외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 인과율에 의하면 말이다. 노무현을 선택하여 이명박이 당선되었고 그 결과 '복지담론'에 대하여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그 반증이다. 물론, 그걸 문재인이 또 가차없이 깨버려 역사 앞의 죄인이 될 범죄항목 하나를 더 추가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국어 시간에, 사전에서 '폭력'이라는 단어를 나쁜 단어라고 배운다. 그러나 국어 교육이 궁극적으로는 지배층의 논리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사전에 정의된 단어들이 철저히 지배층의 관점에서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1) '폭력'은 나쁜 단어에 불과한 것이다. 폭력은 그냥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

 

말콤 X는 마르틴 루터 킹과는 대조적인 흑인인권운동가이다. 마르틴 루터 킹이 '온건파'라면 말콤 X는 '과격파'이다. 말콤 X의 X는 '자신은 흑인인데 백인들의 조상의 성을 쓸 수 없기 때문'에 X라고 쓴 것이다. 그런 말콤 X는 마르틴 루터 킹에게 이런 비판을 했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평화적 시위를 허락 받았다. 그래서 기쁜가? 그 결과는 무엇인가? 흑인 인권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백인들이 지배하는 매스컴에 의하여 백인들이 얼마나 자비로운가?라는 것만 왜곡, 전파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정치판의 상황과 얼마나 같은가? 차별받는 호남인들은 표셔틀의 존재로만 의미가 있을 뿐 매스컴을 지배하는 노빠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적인지를 선전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가?



 

 

말콤X는 다음과 같이 폭력의 정당성을 이야기 한다.



"기독교가 미국에서 이룩한 가장 큰 기적은 백인 기독교도의 수중에 있는 흑인들이 비 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2천2백만이나 되는 흑인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맞서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기적이다! 백인의 꼭두각시인 흑인 지도자들, 목사, 학위를 이것저것 내세우고 다닌 학식있는 흑인, 그 외 가난한 흑인 동포들을 등쳐 먹으며 살쪄온 사람들에의해 지금까지 흑인 대중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테러의 본질에 대하여는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지'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브'의 정의가 정답이라는 판단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진정한 공격목표인 권력자들에게 결코 접근할 수 없다. 체첸 민족주의자들은 푸틴을 암살하려 하지만 크렘린궁의 경호망을 뚫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지하드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사살할 수 있다면 결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사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가지의 말을 결합해 보자. 만일, DJ가 생존하여 정치력을 발위하고 호남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물론 DJ 생존 당시에도 호남사람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만..) 그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호남 사람들이 있다면, 비록 차별 받는 상황이라도 내가 먼저 나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비판하겠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마치, 윌리엄 파브가 정의한 대목에서 호남사람들에게 정치적 목적은 최소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크렘린궁의 경호망을 뚫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며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사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유일한 대안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선거 테러'를 하는 것이다.

 


 


 

경게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 것은 노빠가 호남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기 떄문이지 '호남사람들이 반드시 정권을 잡아야 한다'라는 '선민의식', 즉 호남순혈론이라는 영남패권주의의 반대편인 호남패권주의적 발상은 선거 테러 이전에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내가 구라성인님을 흔쾌히 옹호하고 나서지 못한 이유는 구라성인님의 주장 중 일부가 '호남순혈론', 그러니까 영남패권주의를 넘어 호남패권주의의 창달을 기도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덧글)남의 선거 행태에 대하여 나 역시 결국은 '이래라 저래라'한 꼴인데 '노빠들의 주장'이 너무 한심해서 나도 잠시 금을 넘었다......


 


 


 

*1 : 나는 사전을 지배층의 지배 수단으로 피지배층을 억압하기 위한 단어를 정의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런 정의를 이미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정의를 내린 사람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이런 정의를 내렸을 때 수많은 인문학도 고수들에게 철저히 닦였으므로. 단 한 분만이 나에게 '단어의 정의'는 사회의 약속인데 그걸 임의대로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반칙이며 수많은 책들을 읽어볼 것을 권장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