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쓸 만큼 한가하지 않지만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 한심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시간을 좀 내 글을 써봅니다.


요즘 ‘종북주의’란 단어가 최고의 유행어가 됐군요. 종북주의란 북한을 추종한다는 뜻이겠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려고 관동군에 입대해 독립군 소탕했던 부역자들도 친일파라 부르고, 미국 없으면 큰 일 나는 줄 알며 미국의 전쟁에 우리 군인을 기꺼이 받치는 미국추종 세력도 친미파라 부르는데,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을 얼마나 추종하기에 친북도 아닌 종북이란 말로 불릴까요? 


내가 ‘주사파’란 단어를 듣기 시작한 게 한 20년 남짓 된 거 같고 ‘종북주의’란 단어를 듣기 시작한 게 한 10년 정도 되는 거 같네요. 내가 남한 내에 주사파나 종북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자신도 “도대체 어떤 자들이 말로만 듣던 주사파고 어떤 자들이 종북주의자들일까?” 상당히 궁금해 하며 관찰해 봤습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관찰한 이유는 사상의 자유가 있는데 종북주의가 잘 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려 깊게 운동을 한 사람들이 그리 단순하게 주체사상이나 종북주의에 빠진다는 게 이해가 안 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래 관찰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100%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나도 운동권에 있었고 아직도 주변에는 소위 북한간첩으로까지 낙인찍힌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관찰에 의하면 자기 스스로 주사파나 종북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직 한사람도 못 봤습니다. 남한 내에 주사파나 종북주의자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과연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한테까지 숨기려고 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주체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봤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주사파로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모두 ‘그 사상을 추종하는 파’ 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부르면 한 사람이 열 개 이상의 파로 불릴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시대에도 박정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데, 그들 모두를 ‘박정희파’ 또는 ‘시월 유신파’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종북주의’란 용어에서는 더욱 더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종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종북주의’란 용어를 쓰는 메카시스트의 기준에 의하면 당연히 종북주의자라고 불려야할 사람들조차도 친일파들이나 친미파가 일본이나 미국을 추종하는 것 보다 훨씬 덜 북한을 추종한다는 점입니다. 추종하기보다는 비판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겁니다. 대체로 북한의 권력의 세습이나 특정정책 등에 대해선 비판 또는 비관적이고, 인권에 대해선 그들도 확실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신중함이 남한의 인권을 짓밟았고 아직도 짓밟고 있는 자들이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 보단 차라리 나아 보입니다). 단지 차이점은 권력의 세습 등 북한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고립된 상태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싸우는 북한의 특수성은 감안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한 같으면 벌써 사라졌다는 거지요).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장점은 장점대로 인정하자는 입장입니다.


결론은 수구파들이 수구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 부르듯이 ‘종북주의’란 조어(造語) 자체가 수구파들의 보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번 종북주의 바람몰이가 진보당의 부실선거 사태 때문에 시작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한 사회의 뿌리 깊은 사상적 병리성 때문에 생긴 겁니다. 수구세력들이 선거전부터 색깔론을 들고 나왔었거든요 (이 논점에서는 수구세력이라 하면 진중권이나 유시민 등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말하지만 우리의 사상이 순수하게 중립적으로 형성됐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차도 존재하겠지만 어떤 사회의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거기에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이 작용합니다. 어떤 집단의식을 갖는 사회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상이 결정되거나 적어도 영향을 받습니다. 반동수구사상이 다른 사상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의식은 반동수구사상에 편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대다수인 사회가 우리 사회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집단사상폭력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명박을 비롯해 수구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은 용납 못 한다”고 했는데, 한심한 소리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뭡니까? 정의하고는 거리가 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친일부역도 하고 친미부역도 하는 기회주의 아닌가요? 그걸 정체성이라고 수호하자고 헛소리를 하니 웃기는 거지요. 해방후 친일부역세력들이 항일세력들을 지속적으로 거세하고 권력을 쥐는 과정을 안다면 이 사회의 사상의 편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알게 됩니다. 반민특위가 미군정의 비호로 친일부역자들에 의해 오히려 빨갱이로 몰리며 몰락하는 과정을 안다면, 특정사상을 가지면 법에 위반된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남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성장과정에서 사상의 형성이 어떻게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는지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이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세력은 허위로 만들어진 종북세력이 아니라 사상적 편향과 컴플렉스에 빠진 사상적 폭력세력 또는 사상적 병리집단입니다.


이제 올바른 진보세력은 이렇게 까지 된 이상 사상적 억압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상의 문제와 북한문제를 정면돌파해야합니다. 지금까지의 수세적 입장을 버리고, 친일부역세력들의 지배가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지, 왜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하는지, 친미든 친북이든 왜 사상의 자유가 보장돼야하는지, 세습이든, 핵이든 인권이든 북한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명확히 밝히고 공세적인 입장으로 나와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반역자들이 오히려 큰 소리치는 꼴사나운 세상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