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의 관악을 여론 조작 사건, 통진당의 비례대표 경선의 부실과 부정, 통진당 중앙위 폭력사태, 이석기와 김재연의 사퇴 거부 등 일련의 통진당 사태로 경기동부라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 “주사파와 종북”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상규가 백분토론에서 시민논객의 북한 3대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면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 타령을 하고, 임수경은 탈북자를 비하하고 북한인권 운동을 변절이라고 막말을 하는 사건이 더해지면서 종북논란은 더욱 격화되고 있습니다. 또 이해찬은 YTN 라디오에 출연해 앵커 김갑수의 임수경 막말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와중에 사전 질문과 다르다며 갑자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국가관을 문제 삼아 이석기와 김재연의 제명을 요구하고, 이해찬과 박지원은 임수경을 감싸고 돌면서 매카시즘으로 신공안정국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최근 통진당 사태로 촉발된 종북 논쟁이 여야간, 진보-보수간의 이해가 엉키면서 그 본질이 희석, 왜곡되는 듯하여 저의 의견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1. 우리 사회에 주사파, 종북주의자는 있는가

통진당 사태로 주사파와 종북주의가 수면으로 올라오고 그 실체에 대해 일반 국민들도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석기, 이상규, 김재연 등 경기동부의 주사파들은 주사파에 대해 부정하거나 아니면 답변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기들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 주사파가 어디 있느냐고도 하고,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이 미미할 뿐 아니라 우리 체제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건해서 무시해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 주사파가 없으며, 그 영향력을 무시해도 될까요? 저는 주사파는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며, 그들은 특유의 조직력으로 일정 정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제가 이들을 우려하는 것은 진보진영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이것이 건전한 진보-보수의 생산적인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남북관계와 북한인권 개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내의 주사파와 종북주의자의 존재(범민련, 한총련, 통진당 구당권파 등)는 북한 정권이 남한 내 자기들 지지세력으로써 대남전략의 호응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오판을 하게 하고, 북한 정권의 선전선동의 소재로 이용되어 북한 민중들을 오도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보면 알 수도 있거니와 과거 민노당 시절의 당권파들의 해온 패악질은 진보진영에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민혁당 사건, 일심회 사건, 왕재산 간첩 사건이 안기부의 조작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도 한 증좌가 되겠지요. 군자산의 약속으로 이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접수할 것인지의 계획도 이미 드러나 있구요.

저는 80년대 대학시절에 NL(주사파) 학생운동그룹이 어떠했다는 것을 경험한 바가 있고, 그 이후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선후배, 정치권 인사들이 현재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골수 주사파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으며, 주사의 색채는 엷어졌으나 동정적 시각은 여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내부 조직력과 결속력은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하며, 한총련을 통한 재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어 헌신성과 생명력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상입니다. 비록 소수일지 모르지만 현안을 돌파하고 추진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저는 이들의 저돌성과 무모함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비민주적 방법론, 비현실적 현안 분석, 종북적 지향성이 진보진영의 가치를 훼손하고, 보수진영의 먹이감으로 전락해 건전한 진보/보수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반대합니다.



2. 내가 경험한 주사파

제가 주사파를 처음 대면한 것은 80년대 중반 복학을 하고 난 뒤의 후배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2년간의 세월 동안 학생운동권의 지형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주사파(NL)가 운동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후배들도 주사논리를 푹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주사파의 교본이었던 김영환의 “강철서신”을 그 때 보았으나 생경하기도 과격하기도 하거니와 이성적으로 선뜻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후배들에겐 사상적 무장이 덜 된 것으로 보여졌는지 자주 논쟁이 붙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쟁들은 생산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주사파 후배들은 10분 정도 내리 주사파 논리를 쉴틈없이 쏟아내지만 정작 본격적인 토론에서는 바닥이 드러나고 사고의 유연성은 찾아볼 수 없고 독선적, 강압적 논리로 일관하더군요. 팜플렛(강철서신이나 주사파 논리를 복사한 유인물)을 보고 외운 주체사상만 계속 되풀이 할 뿐이었지요. 자기들도 자기가 외우고 저에게 설파하는 그 주사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기사 그 주사논리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주사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이 멀쩡한 청춘들을 이렇게 기계적인 존재들로 만들어 놓았는지 기가 차더군요. (주사파)운동권의 지도부에 대한 분노와 원망과 함께 아마 이 때부터 저의 주사파에 대한 반감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과 제가 충돌한 대표적인 것이 사회구성체 논쟁이었을 것입니다. 남한 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했던 80년대 중반의 운동권 내의 사상논쟁 중의 대표적인 것이었죠. 남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개혁(혁명)의 방향과 방법, 제휴세력의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운동권 내에서는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사파들은 남한 사회는 “식민지 半봉건 사회”라고 규정하고 남한은 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半봉건세력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죠. 80년대 중반의 남한 사회가 미국의 식민지 상태였고 자본주의화 되지 않은 半봉건 상태였던가요? 저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고, 따라서 주사파의 운동방법론에도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현실과 다른 이런 주장을 했을까요? 그 의문은 시간이 조금 지나 풀리더군요. 북한의 남한 해방론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고, 북한이 남한 사회를 그렇게 규정하였기 때문이었죠. 북한은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켜야 무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남한 해방(통일)의 명분을 찾기 위해 남한 내 혁파할 존재인 봉건 세력이 가상으로라도 필요했기 때문에 “식민지 半봉건 사회”의 규정이 필요했던 것이었죠. 한마디로 자기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실과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연한 사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운동논리로 80~90년대 사회운동을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하고 사회운동의 동력을 현저히 떨어뜨렸지만 이들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2012년까지도 그 여파에 진보진영이 씨름한다는 것은 주사파가 얼마나 진보진영에 해악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상 철학적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여전히 80년대 주사논리를 고집하고 있으며, 사회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이 정의이고 선이라는 독선과 오만에 빠져 그들의 행위가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 사이비 종교와 다단계 회사가 연상됩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자들이 교주와 종교단체에 몸과 마음, 그리고 재산을 모두 바치고 헌신(?)하는 것을 자기 신앙의 공고함의 증표로 생각하듯이 이들도 20대의 청춘을 바치고 곤궁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이 땅의 민중을 위하는 고난과 희생이라고 자기 위안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비 종교의 신자가 종교의 계시와 교주의 말이 적중하지 않더라도 이 사이비 종교집단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이미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상태라 이것(사이비 종교와 종교단체)마저 없다면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기 때문에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듯이 주사파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주사논리와 자기 조직을 떠날 수 없다고 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가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가끔 이들의 말로가 적군파의 형태를 띠지 않을까 걱정해 본 적이 있습니다. 현실과 유리된 자기 세계에 갇혀 자기 믿음과 사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믿음과 사상을 펼치는데 어떤 방법도 정당하다는 그들의 생각의 일단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자기 실체가 드러나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하면, 그들의 무모함이나 사고의 경직성을 볼 때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단지 제 우려로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3. 진보진영의 암적 존재 - 임수경과 운동경력을 훈장으로 행세하는 자들

임수경이 탈북자 백요셉에게 “변절자 XX, 북한인권운동의 폄하, 국회의원에게 감히..”라는 표현으로 막말을 던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임수경은 1989년 방북해서 김일성과 만나고 북한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이 마치 자기가 통일운동에 지대한 기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단한 업적을 쌓은 인물로 생각하는 소영웅주의에 빠져 생활해 왔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1989년 임수경의 방북이야말로 통일운동에 역행하고 진보진영의 입지를 좁힌 무모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을 변화시키거나 남한 대중들을 북한(북한 정권이 아님)에 대해 우호적 입장으로 전환시키지도 못했으며, 진보진영의 통일론을 급진스럽게만 보였을 뿐이라고 생각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임수경의 방북이 남한 내에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냈다기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임수경의 의도와 달리 남한의 실상을 북한 민중들에게 알리는 긍정적 소득은 있었다고 봅니다. 임수경의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과 거침없는 행동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남한 사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준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요. 임수경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북한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북한 체제와 비교된다고 합니다. 세상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임수경은 전혀 의도하지 않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임수경은 자기 자신의 존재와 행위로 만들어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진중권은 앞으로 임수경은 큰 쓰임이 있을 거라고 했던 것인가요? (진중권은 이런 의미로 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

임수경의 방북은 사회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투철한 사명감으로 통일운동의 선봉이 되고자 했던 것보다 철없는 20대의 치기어린 소영웅 심리의 작동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방북 이후에 방북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제대로 없었다는 점과 수감 이후 통일문제나 북한인권문제에 천착한 실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김일성과의 만남과 “통일의 꽃”이라는 과거의 경력을 훈장으로 삼아 명망가로서 여기저기 이름만 내밀었을 뿐 특별한 학문적, 대내외적 활동이 없었다는 것이 그 증좌입니다.

임수경처럼 자질과 자격이 되지도 않으면서 과거 운동경력을 훈장 삼아 훈장질(?)하려는 인물들이 진보진영에서 많이 보이고 이들이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들을 이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보수의) 기득권층과 다를 바 없는 기득권층의 형태를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상, 철학적 진화도 없이 과거 80년대의 어쭙잖은 주사논리만 고집한 채, 변화된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실질적 사회개혁에 노력하기 보다 과거의 운동경력만을 훈장 삼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계 입문(국회의원)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층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들은 민주주의를 외치고 소통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권위적 사고로 굳어 있고 민주적 마인드가 부족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가부장적 가족관계나 비민주적 조직운영, 다양성의 부정과 선과 정의의 독점, 형평성과 일관성의 결여가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것은 저의 선입관이나 편견 때문일까요? (보수의)기득권층 대부분은 그래도 현재에도 자기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망을 채워가려 하지만, 이들 운동경력을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그런 노력조차도 없으면서 과거 경력만으로 울궈 먹으려 드는 것 같아 더 기득권층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들이 우리 진보운동을 망쳐 놓은 장본인으로 진보진영의 암적 존재로 봅니다. 이들의 퇴출이 통진당 사태와 임수경 막말 파문을 계기로 빨리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4. 매카시즘인가, 역매카시즘인가

이해찬이나 민통당은 박근혜가 국가관이 의심되는 사람은 국회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새누리당이 이석기와 김재연을 제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매카시즘의 부활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저도 박근혜가 국가관을 빌미로 국회의원을 검증하겠다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해찬이나 민통당이 주장하는 매카시즘의 부활이라는 것에도 동조하기 힘듭니다.

저는 이해찬의 비난은 매카시즘을 활용한 역매카시즘이라고 보여집니다. 매카시는 자기의 경력을 의심받자 국면 전환을 위해 공산주의 혐의자를 색출하는 마녀사냥을 벌입니다. 지금 이해찬은 매카시의 개인적 이유와 유사하게 YTN의 앵커 김갑수와의 전화 인터뷰 도중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던 사건을 변명하고 민통당 당대표경선의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고자 현 정국을 매카시즘 부활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의 공세도 보수진영에서 현 정국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통진당 사태와 민통당 국회의원들의 경솔함이 불러들인 것이고 새누리의 공세가 전혀 근거 없지도 않아 무조건 매카시즘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온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경기동부의 비민주적 정당운영, 구민노당의 핵심인물들의 간첩단 사건 연루,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가 북한의 3대 문제에 대해 빙빙 돌려 답변을 회피하거나 질문 자체를 사상검증이라고 역공하는 모습, 임수경의 탈북자와 북한인권운동에 대한 폄하 막말, 최재성의 정제되지 못한 귀족탈북자 발언 등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보수진영에서 그냥 넘어가기 힘든 것이었죠. 그리고 조중동이나 새누리의 공세는 과거의 공안정국에서 보여준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한 것과는 달리 상당히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분위기도 새누리의 공세의 영향 이전에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사건들에서의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과 새누리의 공세가 이 분위기를 강화시키기는 하였겠지만.


5. 진보진영은 현 정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저는 진보진영이 현재의 수세적 국면을 진보진영의 정화의 기회로 삼고 정공법으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동부, 전남연합 등 주사파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그들도 자기 민낯을 대중들에게 보여 당당히 심판(선택)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들이 민주적 절차를 수용하지 못하고 당파적 이해를 우선한다면 과감히 축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축출의 방식은 물리력 등의 강제가 아니라 그들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대중들의 외면을 통해 진보진영에서 격리시켜야 하겠지요. 박근혜의 국가관을 빌미로 한 사상검증식 강제적 제명에 대해서는 사상의 자유를 위해 강력하게 반대해야 하겠지만, 비민주적 행위와 그 결과에 따른 비례대표에 대한 자격심사는 진보진영도 새누리와 공조해야 된다고 봅니다.

주사파와의 선명한 결별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고 진보진영의 제세력을 함께 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주사파를 제외한다면 좌파적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다 하더라도 한 정당 내에서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고 외연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검증된 명망가를 표면으로 내세우되 지역 생활정치에 밝은 실무자 그룹을 주축으로 하여 민통당과 차별화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낮은 단계의 좌파적 정책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대중의 반응을 조급히 기다리지 말고 대중과 함께하는 지역 밀착형의 구체적 정책을 제안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을 해 나가면서 외연을 넓혀 가야 합니다. 10년 이상의 먼 미래를 바라보고 보수진영(새누리당)을 적으로서 규정하기 보다 경쟁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건전한 보수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각 전환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