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social Darwinism”이라는 용어를 “사회 진화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박노자에 따르면 이것은 일본에서 수입된 번역어다.

 

‘사회진화론’이라는 일본식 용어의 영어 원어는 Social Darwinism인데,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것이 바로 ‘사회진화론’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박노자, 『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63쪽)

 

어쨌든 위에서 인용한 책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박노자는 “사회 진화론”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나는 “social Darwinism”을 “사회[적] 다윈주의” 또는 “사회[적] 다윈론”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social evolutionism(사회 진화론)”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다윈이 진화론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두 용어가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social Darwinism”과 “social evolutionism”을 동의어로 쓰는 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둘을 구분해서 쓰는 학자도 많은 것 같다.

 

“social Darwinism”은 다윈의 진화론 특히 적자생존을 들먹이며 온갖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인종주의나 복지 제도 철폐론 등)를 주창하는 것을 가리키며 Herbert Spencer가 대표적인 사상가다. 반면 “social evolutionism”은 사회가 진화한다는 사상을 뜻하며 심지어 마르크스도 사회 진화론자로 분류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가 원시 공산주의,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단계를 밟으며 진화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Darwinism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evolutionism

 

 

 

설상가상으로 다윈의 제자인 허버트 스펜서는, 가난한 계층과 민족들 즉 스펜서가 보기에 생물학적으로 덜 진화한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 개량가들이 진화의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고 적었다. 사회 다윈주의(다윈은 이런 식의 설명을 전혀 원하지 않았으므로, 사회 스펜서주의라고 해야 한다.)의 학설은 당연히 존 D.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같은 대변인들을 끌어들였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은 덜 진화한 사람들의 번식을 말리는 이른바 우생학(인간 개량학)을 통해 인간의 진화에 도움의 손길을 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티븐 핑커, 『빈 서판』, 46쪽, 김한영 옮김)

 

Worse, Darwin’s follower Herbert Spencer wrote that do-gooders would only interfere with the progress of evolution if they tried to improve the lot of the impoverished classes and races, who were, in Spencer’s view, biologically less fit. The doctrine of Social Darwinism (or, as it ought to be called, Social Spencerism, for Darwin wanted no part of it) attracted such unsurprising spokesmen as John D. Rockefeller and Andrew Carnegie. Darwin’s cousin Francis Galton had suggested that human evolution should be given a helping hand by discouraging the less fit from breeding, a policy he called eugenics. (Steven Pinker, 『The blank slate』, 16쪽)

 

나 역시 스티븐 핑커와 마찬가지로 스펜서 류의 사상을 사회 다윈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윈이 무덤 속에서 얼마나 억울해 하겠는가? “사회[적] 스펜서주의” 또는 “스펜서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요컨대, “social Darwinism”이라고 불리는 사상을 칭하고 싶다면 “사회 스펜서주의” 또는 “스펜서주의”라는 용어를 쓰고, 원문에 “social Darwinism”이라는 용어가 있는 글을 번역할 때에는 “사회 다윈주의”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글의 주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김한영 씨는 위에서 인용한 구절을 참으로 거시기하게 번역했다. “follower”는 “제자”보다는 “추종자”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do-gooders would only interfere with the progress of evolution if they tried to improve the lot of the impoverished classes and races, who were, in Spencer’s view, biologically less fit”는 완전히 엉터리로 번역했다. 또한 “이런 식의 설명”이라는 번역도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 정책과 관련된 당위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