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에서 소중한 의견을 주신 흐강님의 쪽글을 생깠던 이유가 바로 속편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if)흐강님의 의견에 따라 먼저 의견과 함께 답변 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관점의 변화가................... 나에게 생겨났다. 그 변화는 작게는 '한민족의 기질'이고 크게는 결국 인류의 기질에 적용되는 것인데 최근에 논쟁 중이라는 '인류는 진화 중인가? 아니면 퇴화 중인가?'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인간이 다른 동식물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복종에의 거부'라는 판단을 했고 그 판단 하에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라는 속언에 대한 보고서"(전문은 여기를 클릭)에서 한민족의 기질을 이렇게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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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조직적으로 항거를 할만한 힘과 역량을 상실당한 조선 민중에게는 체 게베라의 '복종에의 분노'라는 말처럼 순수히 복종하기에는 너무도 분노스러울 정도로 가혹적인 사회의 체제에서 당시 정권들의 정책들에 대하여 천천히 그러나 생명이 아깝기 때문에 결코 반항심을 겉으로 들어내지는 않는 그런 불복종, 그러니까 오늘날의 아나키즘 정신의 일부인 불복종이 조선 민중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체제에 대한 반역 행위였으며 그런 민중의 행위가 결국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는 속언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까?....하는 판단이 현재까지 일제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배우면서 내가 내린 판단이고, 나는 내 판단이 맞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반증으로,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참여율이 너무 낮다는데 있다는 것으로 이런 불복종의 오랜 습관이 이제 체질화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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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이런 결론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그 폭압적인 정권 앞에서도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순종하는 정말 종교에 가까운 '순수한 믿음'을 지는 지지층을 보면서 '과연 그 사람들에게 복종에의 저항감'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 복종에 대한 미국의 한 교수의 실험, 그리고 그 실험 결과를 책으로 출간한 책 안내문을 읽고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책 이름은 까먹었고 여기서는 책 안내문에서 읽은 내용과 그 실험 내용을 기술한 문화일보의 기사를 발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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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솝잡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것은 교육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질 상, 그리고 통계적으로 증명된 왼손잡이는 동성애자 비율이 많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후손을 보지 않기 때문에 유전이 되는 왼손잡이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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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내문 중에서 발췌)



인간을 돼지와 비유하면 불쾌하게 생각할 분이 계시겠지만 처음에 인류가 사육한 돼지들은 현대와 같이 '반드시' 뚱뚱한 돼지'만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돼지 사육의 목적'이 돈육의 획득에 있으므로 뚱뚱한 돼지가 상대적으로 돈육 획득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그래서 인류의 선택의 결과 오늘날 사육하는 돼지는 '뚱뚱한 품종'만 남아있게 되었다....라는 것이 정설이다.


만일, 이 인간의 돼지에의 선택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소수만이 부유할 뿐 대다수의 인류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 시점에 대비한다면? 상상하기조차 괴로운 생각들이 뇌리를 스칠 것이다. 즉, 우리는, 부유하지 않다면 '선택의 권한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선택 당하는 피조물'에 불과하게 되고 '선택의 조건' 중 으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순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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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 최신호에 게재된 실험은 1961년 미국 예일대에서 스탠리 밀 그램 박사에 의해 이뤄진 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20세에서 81세 사이의 남성 29명과 여성 41명을 심문자와 피심문자로 나눈 뒤 피심문자가 질문에 거짓말을 할 경우 심문자가 가상의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심문자 82.5%는 피심문자가 고통을 호소해도 지휘관의 강압 명령이 떨어지자 가상 고문기계의 전압을 최대치인 450V까지 올리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엔 전압높이를 가상으로 설정했는데 결과는 그때와 거의 비슷했다.

1972년 실행된 스탠퍼드대 짐 바아도 박사의 ‘모의 형무소’실험도 흥미롭다. 그는 통제와 억압, 권위와 복종 등에 관련한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기 위해 지원자 24명을 무작위로 골라 죄수와 간수의 역할을 각각 맡겼다. 모든 환경은 실제 교도소처럼 꾸몄다. 지원자들은 이곳에서 2주일 동안 각자의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누구든 본인이 원하면 즉시 그만둘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실험결과는 놀라웠다. 죄수복을 입은 사람은 스스로 죄인으로, 간수복을 입은 사람은 진짜 교도관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틀 만에 죄수들이 난동을 부리다가 진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3일째는 간수들이 난동자를 구타하고 독방에 넣기도 했다. 5일째가 되자 간수들은 스스로 새로운 체벌을 고안해 구타하기도 했다.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어 빼냈더니 그가 탈출한 것으로 착각, 밀고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결국 이 실험은 집단광기와 폭동, 교도관들의 성적인 폭행 등으로 6일 만에 중단됐다.

인간의 이성과 선한 의지가 얼마나 빨리 마비되고, 환경에 철저하게 지배받는지 알 수 있는 실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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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시론에서 발췌(전문은 여기를 클릭)



사실, 위의 결론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내가 포스팅한 "고바야시 시게오의 ‘지의 윤리’"(전문은 여기를 클릭)에서 암시적으로 증명이 된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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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사고실험만으로도 종의 이익을 위해 개체의 이익을 희생하는 특성이 유전적으로 진화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유전자를 가진 A형 레밍과, 반대로 개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유전자를 가진 B형 레밍이 있다고 치자.

 

 

개체수가 늘어 서식환경이 악화하면 A형 레밍은 집단의 존속(종의 보존)을 위해 해안절벽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뛰어드는 반면 B형 레밍은 자기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자연히 무리 가운데 살아 남는 것은 B형 레밍이고, 그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진다(고바야시 시게오 ‘지의 윤리’) <한국일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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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유머 버젼'으로 표현할 때 '중국은 한사람이 지배하기 힘든 크기여서 친구를 만들어 공동 지배를 할 수 밖에 없어 중국은 친구를 만드는 개념에 익숙하지만 한반도는 한사람이 지배하기에 딱 맞는 크기여서 나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적으로 만드는 개념에 익숙'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적으로 만드는 기준은 복종과 불복종. 거기에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


생존법칙을 적용한다면 불복종을 하는 사람들은 거세되어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또한 잦은 외세의 침입은 그 외세에 항거하는 사람들은 죽지만 그 침입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은 살아남는 일이 반복됨으로서 '기질적'으로 침입에 복종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내가 이런 커다란 생각의 고리를 바꾸어사고한 연유는 이미 말한 한나라당에 대한 복종에 가까운 민심과 최근에 불거진 신입사원들의 연봉 삭감에 대한 사회의 반향의 미적지근함이다. 그 미적지근함을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CPE라는 법안이 상정되었을 때의 프랑스 대학생들의 반발과 비교한다면 한국의 대학생들은 거의 노예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CPE 법안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2년이 경과되기 전까지는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에 반발한 프랑스 대학생들은 결국 CPE를 무산시킨다.



 

당시 프랑스의 실업률이 (최소한 통계 기준으로)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인 20% 가까이 되었고 그래도 사회복지 제도가 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PE에 반발한 반면 우리나라는 비슷한 악법인 신입사원의 초임을 깍는(것이 왜 악법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라 판단하여 세세는 생략한다) 시도에도 여론은 미동하지 않고 있다.



이 끔찍한 복종심은 오랜 역사 속에서 단련되어 왔고 그나마 저항하던 사람들은, 마치 훌쭉한 돼지는 인류에게 선택되어지지 않아 사라진 것처럼 이 저항하던 사람들은 한민족이 만들어낸 조직들 속에서 거세되어져 점점 사회 전체가 복종에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복종에 대하여, 한민족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니 굳이 '민족성' 운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수 년전부터 일요일날 출근하는 봉급쟁이의 비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그 복종의 정도가 심해져 가고 있으니 글쎄?



2:8의 사회에서는 땃 세 종류의 인간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선택하는 자, 선택 당하는 자 그리고 버려지는 자.


'조선팽이는 맞아야 돈다'라는 복종심...... 우리가 좀 먼저 시작했을 뿐,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범인류버젼은 '사람은 맞아야 한다'가 아닐까? 아마도 신자유주의의 끝자락에서는 체 게베라가 울부짖은 '복종에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류가 지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최소한 현재 시점에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게르만 민족처럼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릴 어떤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택하는 자, 선택 당하는 자 그리고 버려진 자.



소수의 선택하는 자와 버려지지 않기 위하여 생존의 각축을 벌릴 무리들..... 그 현실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있고 한반도에서는 그 것이 현재 진행형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