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씨가 종북 사상 검증 논란과 관련하여 글을 한 편 썼다.

 

"넌 유대인이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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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씨는 초-중학교에서 아이들이 유대인 학생에게 “너는 유대인이지?”라며 괴롭히는 일과 여러 사람들이 국회의원에게 “너 종북이지?”라며 몰아붙이는 것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그는 "북조선의 핵무장 등에 대한 생각을 다 밝히라"는 식의 사상검증 (?)을 당한 것 놓고, 진중권씨는 "국민을 대표하는 공직자라면 국민적 의구심이 가는 사상에 대해 다 밝혀야 한다"고 평하는 등 꼭 ", 너는 종북이지? 너는 김씨 왕조 팬이지? , 다 밝혀라!"와 같은, 너무나 국민적인 (?)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어렸을 때에 줄곧 당해온 일까지 회상하면서, "국민적인" 유사 종교재판에 대해 제 나름의 소회를 밝혀볼까 합니다.

......

좌우간, 제가 이상규씨의 지지자로서 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너는 유대인이지?"/"너는 종북이지?"와 같은 수준의 우리들의 대중적인 정치문화에 대해서 한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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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좌파국제주의자로서 좌파 민족주의자들을 지지할 일은 없지만, 그들이 오늘날 한국에서 제 어렸을 때의 쏘련에서의 유대인들처럼 "공격 받는 소수자"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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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대인을 박해하는 사회에서 유대인은 소수이며 경멸과 박해의 대상이다. 남한 사회에서 김일성주의자는 소수이며 경멸과 박해의 대상이다. 따라서 남한의 종북 논란을 보고 박노자 씨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박노자 씨는 “너는 유대인이지?”라고 괴롭히는 것이 잘못이라면 “너는 종북이지?”라고 괴롭히는 것도 잘못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이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첫째, -중학생과 국회의원은 엄연히 서로 다르다. 예컨대 국회의원의 의도적인 논문 표절 행각이 드러났을 때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초등학생의 의도적인 컨닝 행각이 드러났을 때 자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초등학생은 그냥 초등학생일 뿐이다. 반면 국회의원은 정치의 뜻을 펼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정치적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것이 어떻게 초등학생에게 자신의 출신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둘째, “너는 유대인이지?”는 출신 성분을 밝히라는 요구다. 반면 “너는 종북이지?”는 정치적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다. 출신 성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면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표를 주지 않거나 비판, 비난, 조롱하는 방식 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유권자와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셋째, “너는 유대인이지?”라는 질문은 질문 받는 사람의 과거 행적과 무관하다. 그냥 유대인이기 때문에 또는 유대인이라는 의심을 받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다. 반면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들이 “너는 종북이지?”라는 질문은 받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예컨대 NL 계열에서는 탈북자와 새터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했다.

 

NL은 탈북자와 새터민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나?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29

 

넷째, 어떤 사람이 유대인인지 여부에 대한 정보는 민주적인 사회를 위해 별로 필요하지가 않다. 오히려 인종 또는 민족에 대한 그런 정보는 부당한 차별에나 필요할 뿐이다. 반면 중대한 쟁점에 대한 어떤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정보는 민주적인 사회를 위한 토론이나 투표에 큰 도움이 된다.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투표할 수 있다.

 

 

 

저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지만, 자유주의자인 여러분들이 정말 국보법의 마수에 언제 걸릴지도 모를 소수자들을 "몰이"하는 것을 즐기려 하십니까? 차라리 그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을 즐기기 위해 국보법 철폐 투쟁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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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는 NL의 사상과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지 말란 말인가? 지금 진보 진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 비NL 진영에서 NL 비판을 자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실질적인 법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NL 정치인에 대한 질문이 결국 그 정치인이 감옥에 가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나는 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정치 논쟁을 회피한다면 진보 진영과 진보 정당은 계속해서 NL의 헛발질에 발목이 잡힐 것이다. 그들이 부당하게 탄압 받고 있다 하더라도 질문할 것은 하고 비판할 것은 해야 한다.

 

 

 

과연 박노자 씨는 온 국민이 어떤 정치인에게 “너는 나찌지?”나 “너는 친일(친일본제국주의)파지?”라는 질문으로 닦달할 때에도 “너는 유대인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반대할까?

 

박노자 씨는 히틀러의 나찌 독일이나 20세기 초반의 일본 제국주의와는 달리 북조선 체제에는 뭔가 특별한 면죄부가 있어서 그 옹호자를 닦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나찌 독일이나 일본 제국주의나 북조선 체제나 지독한 악이다. 따라서 그런 악을 옹호하는 정치인을 투표나 비판을 통해서 솎아내려는 시도를 비난하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이상규씨 등이 좌파민족주의자인지 아닌지 그들과 관계없는 저로서는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종북"으로 폄하되어지는 옛 "NL"식의 좌파 민족주의는 정말 대한민국에 퍼져 있는 여러 내셔널리즘들 중에서는 최악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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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민족주의니까 별반 차이가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찌의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민족주의도 똑같은가?

 

나는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도, 정당 결성의 자유도,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도, 투표권도 없는 사회와 그런 것들이 있는 사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용어를 좌파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그 둘 사이의 차이가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크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히틀러의 나찌 독일이나 스탈린의 구소련이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북조선이나 지독한 독재 국가라는 점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지독한 독재 체제는 현재 남한의 상당히 민주화된 체제와는 엄청난 대조를 이룬다. 왜 이런 차이를 무시하려고 하는 것일까?

 

 

 

"국민적 의구심" 따위를 들먹이고 "국민"과 같은 용어들을 애용하는 진중권 교수를 보시지요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국민"들 사이에 "국민"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평생 씻겨지지 않을 상처를 입은 한국 국적 선박의 인도네시아계 선원들 같은 사람들은 들어 있지 않을 것이잖아요. 광동성 동완 (東莞)시 같은 수출공단에서 한국계 기업의 공장에서 죽어라고 일하고 폭력, 폭언 당하고 쥐꼬리 만한 임금을 받는 중국 民工들도 "국민"은 아니거든요. 진중권 교수와 같은 "국민 논객"들에게는 한국 "국민"의 이름으로 해외 곳곳에서 초인적인 노동의 과정에서 천천히 죽임을 당하는 그 수백만 명의 타자들은 과연 "우리 국민"만큼이나 중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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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씨는 “국민”이라는 말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진중권 씨의 생각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진중권 씨는 민족주의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해왔으며 이주노동자를 옹호하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다. 잠깐만 검색해 봐도 이런 문제에 대한 진중권 씨의 입장을 알아낼 수 있다. 진중권 씨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그냥 “시민”이라는 뜻으로 쓴 듯하다.

 

게다가 도대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무슨 대단한 특권이라도 누린다는 얘긴지, 아예 시민들이 나서서 이른바불법체류자를 신고하는 섬뜩한(?) 일을 하는 시민단체까지 결성되어 있다.

[! 한국사회] 천국이 그대들의 것이니라 / 진중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8920.html

 

 

 

21세기 남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북조선 옹호가 이상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북조선이 지독한 독재 체제이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이 케인즈주의가 한창이던 수십 년 전 서유럽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가? “신자유주의 모범생”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

 

"우리 민족의 명예와 문화를 지키는" 북조선에 대한 옹호론적인 태도는, 많은 한국인들의 혈통주의나 탈식민지적 콤플렉스와 공명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對서방 금융 유입과 상품 수출에 올인하는 "신자유주의의 모범생" 한국에서는 실은 극소수의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은 개인 경쟁/성공의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에 갇힌 다수의 한국인에게는 가족과 "전체"를 우선시하는 북조선 사람들은 거의 외계인 (?) 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북조선 정권에 대한 옹호론적 시각도 그만큼 이질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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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노자 씨를 대체로 좋아한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나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학자로서의 그의 열정은 본받을 만하다. 그런 만큼 이 글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박노자 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에 소개된 박노자 씨의 이상한 이야기만 보고 박노자 씨를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글은 박노자 씨의 글 중 최악으로 보인다. 어쩌면 어릴 적에 박해 받았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진보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박노자 씨의 글에서 배울 것이 많이 있다.

 

 

 

이덕하

2012-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