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체사상 관련책들을 읽어본게 아주 오래전이고, 그마저도 김일성 일대기나 이런 저런 주체사상 요약집이 전부라서 '본격 주체사상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단지 주체사상은 그렇게 만만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 몇가지 당연(?)해보이는 듯한 전제들에 무심코 동의하고 넘어가면 이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아주 어렵겠다는 인상은 받았었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최고학부를 다녔던 사람들까지 줄줄이 맛이 가서 이상한 짓들을 할 수 있었겠죠. 

주사파의 대부라는 김영환씨가 전향을 했다지만, 황장엽 출판기념회에 가서 '인간중심철학'에 대한 찬사를 여전히 늘어놓고, 그 훌륭한 사상이 임자 잘못 만나서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건 괜히 그러는게 아닙니다. 저는 김영환씨가 주체사상 자체로부터 전향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김정일을 반대 할 뿐, 주체사상을 구성하는 주요 이론들은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지 않나 싶네요. 

제가 느끼기에는, 주체사상중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이 바로 '사회정치적 생명론'입니다.  너무나 그럴듯하고 지당해보여서 많은 분들이 무심코 '맞는 말이네' 하고 동의하고 넘어가는 부분이죠. 그런데 그 논리를 인정하고 넘어가는 순간, 이후의 논리전개는 치밀하고 정밀한 일사천리입니다. 수령론까지 이르러도 '맞는 말 아니야?' 하게 된다는거죠.

아래는 접근이 금지된 어느 북한사이트에서 긁어 온  '사회정치적 생명론'에 대한 요약입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주체사상은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은 육체적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생명을 가지고 사는 존재라는것을 밝히였다. 육체적생명이 생물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라면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고유한 생명이다.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밝히신바와 같이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고유한 생명이다.

육체적생명은 생물유기체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며 사회정치적생명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이다. 육체적생명은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밖의 다른 생물학적존재들도 다 가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사회정치적생명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한것이다. 사람은 다른 생명물질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적존재인것으로 하여 사회정치적생명을 가지고있다.

사회정치적생명은 본질에 있어서 사회정치적자주성을 의미한다.

사람의 본성은 무엇보다도 자주성에 있다. 자주성으로 하여 사람은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으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살며 활동한다. 자주성이 없으면 결코 사람의 유기체를 타고났다고 하여도 사람이라고 할수 없다. 자주성을 잃으면 목숨은 비록 붙어있어도 사회정치적으로는 죽은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자주성을 사회적인간의 생명이라고 한다.

자주성을 사회적인간의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사회정치적자주성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으로 예속되여있으면 그 어떤 자주적인 생활에 대하여서도 말할수 없다. 사회정치적자주성은 사람이 자주적인 사회적존재로서 살며 발전하는데 있어서 그 무엇과도 대비할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정치적자주성을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생명, 사회정치적생명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 산다는것은 사회적집단의 평등한 주인으로서 자주적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행사하면서 산다는것을 의미한다. 개별적인 사람들은 정당이나 국가, 사회정치단체를 비롯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사회정치적집단의 평등한 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행사할 때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있다고 할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의 평등한 성원으로서의 자주적권리를 지니고 실천적으로 행사할 때에야 비로소 자주적인 사회적존재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빛내이며 산다고 할수 있다.

주체철학에서 사회정치적생명이라는 말은 단순히 순수 개인적인 명예나 정치적직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와 집단의 평등한 성원으로서 보장받는 정치적권리와 존엄과 결부되여 쓰는 개념이다.

사람의 자주성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자주적인 사회정치적집단의 성원으로 되지 못하고 자기의 사회적존엄과 가치를 짓밟히는 사람을 두고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 산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사회와 집단의 한 성원으로서의 응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자기의 자주적요구를 실현하면서 사회적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빛내이며 사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것은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적권리가 있는가, 그것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가 못하는가에 의하여 대표된다.

이로부터 사회정치적권리, 사회와 집단의 한 성원으로서의 자주적권리를 지니고 행사해나가는 사람은 사회정치적생명을 지니고 사는것으로 되며 사회와 집단의 버림을 받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사람은 육체적생명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로 된다.



이런 황당한 논리전개에 대한 비판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간에게는 사회적관계만이 존재할 뿐, 사회적생명같은게 있을리가 없다.  자주성 의식성이라는 교묘한 말로 정작 더 중요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노예의 논리이다' 입니다.

인간이 타인들과 사회적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육체적 생명'을 보존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리 없습니다. 만약 불리하다면, 인간은 언제든 기존의 사회적관계를 끊을 수 있어야만 하는거죠. 애국심찾고 민족찾는 것도 각자가 그것을 통해 '육체적 생명의 유지, 번식의 성공과 후손 돌보기' 등과 같은 인간 고유의 동물적 본성을 구현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지, 나라와 민족 그 자체가 인간들 각 개개인 삶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도 안돼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타인들과 사회적관계를 맺을건가 말건가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유불리를 따져서 결정해야할 인간의 자유이고, 그런 각자의 자유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사회적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합의와 그것에 동의하는 계약'만이 남아있을 뿐이죠. 만약 누군가가 일체의 사회적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지리산이나 어디 태평양 무인도에서 혼자 살겠다 결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반론으로 제기될 수 있는 국방같은 헌법상의 의무같은건 차후에 논의)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인간에게는 '육체적 생명'과 동급의 '반드시 지켜야할 또 다른 생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전제하며 전개되는 이론은 그 밑바닥부터 결코 올바를 수가 없고, 그것을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하겠습니다. 시닉스님이 '주체사상은 수렵채집사회에나 잘 들어맞는 사상'이라고 말씀하신건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고 봅니다. 

주사파들에게 제가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건. '사회정치적 생명' 같은건 님들이나 소중하게 잘 간직하면서 살기를 바란다입니다. 애먼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려고 애쓰지 마시고요. 주사파들은 당연히 그렇고, 여전히 '인간중심철학'을 설파하고 다니는 '전향했으나 전향하지 못한'  김영환씨와 그 주변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