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문학과 지성사가 출간한 '사랑의 역사'(지은이 루이-조르주탱)의 서평과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보태 쓴 글입니다. 사랑과 역사에 대한 서평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사랑의 방식에 대하여 사회적 논쟁이 진행 중이다.

 


 

종교를 떠나 '동성애는 부자유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 때에 '그럼,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일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은 '동성애자'로 몰릴 것이 확실하다.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논란은 마치 '부계사회와 모계사회에 대한 논란'만큼이나 역사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 이성애와 동성애는 유럽 사회를 이끈 두 개의 대칭되는 문화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결국 '헤게머니'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문화의 주류(majority)에 의하여 비주류가 배척당하는 인류의 역사처럼 동성애는 이성애와의 '사랑의 방식'에서의 헤게머니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배척 당하는 것일 뿐이다.


 


올리비에 경, 그대에게 숨기지 않겠소. 왕관을 쓴 강력한 카롤루스를 제외하고는 여자에게서 난 어떤 인간보다 더 그대를 사랑하오. 하느님께서 우리의 화합을 바라시니, 그대가 원한다면, 그대와 함께하지 않을 성채도 국가도 큰 부락도 도시도 성의 큰 탑도 요새도 결코 갖지 않겠소.


 


무훈시(武勳詩) ‘롤랑의 노래’의 속편 격인 ‘빈의 지라르’의 한 대목으로 롤랑이 그의 친구 올리비에에게 전하는 말이다. 여인을 향한 어떤 남성의 고백이 이보다 절절할까.(서평 인용)


 


'사랑의 역사'에서는 이성애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불과 12세기 초에야 궁정 문화에 힘입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는 남녀 커플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되레 동성애 커플이 칭송받았다는 것이다.

 

12세기까지 이성애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라는 사실은 영감을 자극한다.


313년에 기독교를 승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플라톤의 학원을 폐쇄하여 고대의 그리스 철학은 기독교 사상으로 이어진지 800여년. 그러니까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800년 동안 '동성애는 여전히 '사랑의 방식'의 주류로 자리매김 되었다.천주교에서 동성애가 성황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12세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 첫번째는 제1차 전쟁 때만 '예루살렘을 수복(?) 했을 뿐' 이후 이어지는 원정에서 줄줄이 패배한 십자군 전쟁이 13세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기감을 느낀 천주교와 페스트 등의 창궐로 인한 민심의 교란 등으로 통치 차원에서 벌어진 마녀 사냥.



 

20세기 중엽 미국의 '매카시 선풍'이 '학자들까지 검열 대상'에 포함시켰다면 마녀 사냥은 성직자들을 중죄하는 영역에까지 손을 댄다.



 

12세기 중엽까지 어떠한 동성애도 억압받지 않았는데 프랑스의 신학자인 페트루스 칸토르가 신부들 간의 동성애 애정행각을 단죄하는 운동을 펼치게 되면서부터 동성애는 죄악시 된다.


 


미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불리우던 루즈벨트조차 '공산당 당원'이었고 (이 부분 기술은 인형사님의 지적처럼 정치적 공세로 근거가 부족하거나 실제적인 공산당원은 아니라 공산주의 친화적인 의미로 해석하는게 맞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당시 미국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정서적으로 '공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카시 의원'이 일으킨 '매카시 선풍' 때문에 미국은 확실한 반공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듯 '칸토르'가 단죄한 동성애 때문에 '동성애'는 이후 죄악시 되어 오늘날에까지 이른다. 가히 '칸토르 선풍'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말 그대로 칸토르 이전의 이성애는 후손을 낳고 개체 번식의 용도가 주였고 '사랑의 방식'은 동성애가 주류였다는 것이다.


 

 

사랑의 방식에 자유스럽고 부자유스러운 것이 있을까? 단지, 쾌락을 위한 것이라면 비난받아야만 하지만 자신의 심장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에 제한을 가하는 행위. 기독교는 그 것 하나만으로도 야훼의 단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야훼의 뜻을 훼절했으니 말이다.


 

 

매카시 선풍을 일으킨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의 가방에는 위스카 한 병만 달랑 있었듯 오늘날 한국에서 '칸토르 선풍'을 일으키는 종교인들의 마음 속에 '신심(信心)'은 없고 주머니 속에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의 명함'만이 가득차 있을 것이다.


 

 

피노키오님이 기술하신 것에 의하면 이덕하님이 '역사는 대게는 개혁으로 때때로 혁명으로 역사가 진보한다'라고 말씀하셨다는데 한그루 역사편에 보면, 역사는 주류에 의하여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타도어식 때려잡기'의 반동으로 인한 인간의 깨달음으로 흘러가는 것이라 기록되어 있으니 이 한국판 '칸토르 선풍'이 지나가면 이 사회는 또 한번 성숙해질 것이다.


 


 

결국, 아주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최근의 '동성애자를 때려잡자'라는 열기와 '빨갱이를 때려잡자'라는 작금의 사상검증 열기(?)는 양심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 그리고 그에 따른 행복추구권을 송두리채 부정하는 역사적 반동인데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진일보하기 위한 진통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