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돌핀님이 피타고라스를 언급하셨길래 제 블로그에 썼던 피타고라스 관련 글을 자펌 형태로 올립니다.>>

 

 

"그 법칙을 대중에게 알리지 말라"(주*1)


인류 최초로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학문은 무엇이었을까? 현재까지(*2) 필자의 지식 범위로만 판단한다면 정답은 '수학'이다. 그리고 '수학'의 '피타고라스 정리'가 바로 인류 최초로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학문이다.


물론, '인류 최초로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학문이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파타고라스의 정리'에서 '정리'라는 단어의 의미가 말해주듯, 파타고라스는 단지 이집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던 공식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불과하다.



피타고라스


나일강은 해마다 특정 기간이 되면 범람한다. 범람하면서 그동안 땅주인들이 그어놓은 구역 표시
까지 모조리 지워버린다. 그래서 해마다 범람 후에는 수많은 토지 분쟁이 일어나는데 이 토지 분쟁 때문에 이집트 지배층은 골머리를 썩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법칙을 발견하는데 그 발견으로 인하여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이 일어나도 더 이상 토지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이 토지 구역을 다시 정하는 것은 철저히 이집트 지배층의 '권한'이었고 범람한 후에 지워진 토지 구역을 말끔하게 재생시켜 주민들이 토지분쟁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었고, 그 결과 이집트 민중들은 이집트 지배층이 무슨 요술이라도 쓰는 것으로 착각하였고(주*3) 따라서 이집트 지배틍을 두려워 복종하였다. 파라오 무덤에 '그 법칙을 대중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새긴 것도 무리가 아니다.(주*4)

 


피타고라스


고대 문명 사회에서 '피타고라스'가 일군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 권위와 세력이 다른 학파를 압
도하고도 남았다. 파타고라스 학파는 우주를 숫자로 해석했는데 예를 들어, 1은 우주, 2는 지구, 3은 하늘 4는 땅 등, 숫자로 우주 삼라만상을 해석했다.(주*5)

 


피타고라스


이렇게 자연수를 가지고 우주를 해석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어 윤회설을 도입하는데 그런 피타고
라스 학파에게 있어 무리수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후 여러 학파들에게 영향을 주는데 특히 학문보다는 종교학파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아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학파'로 보는 것이 맞다. 이 이유는 바로 이집트에서 피타고라스가 증명해낸 공식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영향일 것이다.


이렇게 종교적 학파로 변질(?)된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큰 난리가 난다. 그 것은 파타고라스 학파 중 한 학자가 간단한 도표를 가지고 '무리수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그러나 무리수의 존재는 '신성모독'으로 여겼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자들은 이 무리수의 존재를 증명해낸 학자를 우물로 끌고가 그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 '수학' 때문에 살인이 일어난 것이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최소한 성서 해석에 있어 의미심장한 수에 관한 정의들을 남겨놓는다. 그 의미심장한 수에 대한 정의는 성서에 있어 구약과 신약의 '변곡점' 역할을 한다. 또한,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개신교에서 구약을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개신교가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이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성서를 통독하신 분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구약에서 나오는 다윗의 자손이 육백육십육명이다. 다윗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의 '직계 조상' 아닌가? 그런데 다윗의 자손의 숫자인 '666'은 바로 요한 계시록에 '뭍으로 나온 악의 상징들인 짐승의 숫자'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들은 악마의 후손들이며 예수는 악마의 상징이라는 말인가? 우연의 일치라고 치기에는 다른 역사적 사실들이 이 '우연의 일치'를 부정한다. 이 부분은 예정론과 예수의 말씀 중 '나는 성서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서를 완성시키러 왔다'라는 말씀을 상기시킨다면 예수의 안배라고 볼 수 있으며 '성서에 한마디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야훼의 말씀'을 어기고 성서를 마구 훼손시킨 천주교나 개신교에 대한 응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 하나씩 풀어가보자.


피타고라스


'수학의 정의' 중에 '완전수(Perfect number 또는 complete number)'라는 것이 있다. 완전수는 임의의 자연수가 자신이 가지는 약수 중에 자신을 제외한 약수를 전부 더한 합이 자신의 숫자 크기와 같은 수를 의미한다. 현대 수학에서 완전수는 그저 하나의 정의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우주 삼라만상을 해석하는데 숫자를 활용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완전수는 아주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의에 의한 완전수는 6과 28이다.

 


숫자 6

약수 : 1, 2, 3
약수의 합 : 1 + 2 + 3 = 6

 


숫자 28

약수 : 1, 2, 4, 7, 14
약수의 합 : 1 + 2 + 4 + 7 + 14 = 28


숫자 6과 숫자 28 이외의 완전수가 더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성서는 물론 인간 세상에서 6과 28은 아주 중요한 숫자이다.

 


우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결정체가 6각형이다. 또한 한 때 기적의 물이라 불리웠던 육각수도 그 결정 구조가 '6'각형이다. 또한 야훼(주*6)는 6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였다.(주*7) 위에 언급한 것처럼 다윗의 자손이 666명이며 신비의 상징이며 훗날은 마녀들이 흑마술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씌여진 솔로몬의 심벌도 '6'각형이다(주*8)

숫자 28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우선 여성의 멘스 주기가 28이다. 여성의 멘스는 생명과 관련 있는 숫자이니 결국 28은 생명을 의미한다.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에서는 28일까지 새로 태어난 아이를 신생아라고 하며 28일이 지나면 영아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9'라는 숫자를 기피하기 때문에 '흔히 28살을 넘기지 말고 결혼내야 한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28살에 결혼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저 유명한 현대의학의 기초를 닦은 히포크라테스가 주창한 신체 리듬,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한 교수가 수년 간의 임상실험을 거친 끝에 밝혀낸 '바이오 리듬(흔히 PSI 지수라고 한다)'에서 감성리듬(Sensitivity Rhythm)의 주기가 28일이다.

 


피타고라스


수학의 정의 중에 친구수(friendly number)라는 것이 있다. 찬화수라고도 불리는 친구수는 역시 피타고라스에 의하여 발견, 정의 되었는데 바로 두 숫자가 서로 자신의 약수 중에서 자신을 약수로 하는 약수를 제외하고 모두 더하면 상대방의 약수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완전수가 '정의의 의미로만 기록된 것'에 불과하다면 이 친구수도 '정의의 의미로만 거록된 것'이지만 아직도 많은 수학자들이 친구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 친구수는 원주율인 파이를 구하려고 '슈퍼 컴퓨터'까지 동원하거나 또는 소수(素數-1과 자신의 수만을 약수로 가지고 있는 숫자)를 구하려고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주*9)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실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이차함수 도표를 고안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듯, 흔히 친구수는 데카르트의 친화수로 부른다. 데카르트는 9,363,584과 9,437,056라는 친구수 중에 가장 큰 수를 찾았다, 그런데 훗날, 나폴레옹 군대에 의하여 발견된 '마제타석' 그리고 그 것에 의하여 이집트 상형문제가 해석이 되는데 데카르트보다 수십세기 전에 이미 이집트 인이 먼저 발견된 것이 기록에 남겨져 있다.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친구수는 바로 220과 284이다. 220의 약수 중 자신(220)을 제외한 모든 약수를 더하면 284가 된다. 거꾸로 294의 약수 중 자신(284)를 제외한 모든 약수를 더하면 220이 된다

.

 


피타고라스는 이 친구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친구는 제 2의 나인데 친구와 나의 관계는 220과 284의 관계와 같다."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친구수는 피타고라스가 말한 친구수의 생각과 함께 성서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우연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는 우연이다.


에스라 8장 20절 : 느디딤 사람 중 220명을 데려왔으니…’

창세기 32장14절 : 야곱이 에서를 위해 염소와 양을 보냈는데 그 수가 각각 220마리였다.

느헤미야 11장18절 :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의 도합이 284명이었느니라.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구약에서는 '6'을 완전한 숫자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서구 문명에서는 7을 완전한 숫자로 표시하고 있고 '7'을 lucky seven이라고 한다. 왜, 성서에서 명기된 것, 그리고 피타고라스가 주장한 것처럼 6을 완전한 숫자로 생각하지 않고 7을 완전한 숫자로 생각할까?

 


그 것은 바로 기독교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다. 지금도 발생되고 있지만, 초기 기독교는 말 그대로 이단과의 전쟁(주*8)의 연속이었다. 그 이단과의 전쟁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저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이다. 이 삼위일체론은 수많은 논박 끝에 '아우구스티누스'(주*9)의 승리로 귀결되는데 그 결과 다른 입장을 견지한 기독교 학파들은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처형되거나 또는 박해를 피해 피난을 가서 숨어버렸다.(주*10)

 


삼위일체의 요체는 바로 이렇다.

 


"동서남북 4방위에, 성자와 성신 그리고 성령의 3요체"

 


결국, 4방위의 4와 3요체의 3을 합한 숫자 7이 완전한 숫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그 것이 현대까지도 서구문명에서는 '럭키 세븐'이라는 풍습(주*11)으로 내려져 온 것이다.

 

 

피타고라스


초기 기독교의 전래 과정에서 수많은 '특징적이고 전통이 더 오래된' 이교도를 개종시키면서 기독교에서는 그 이교도들의 신앙이나 신화들을 성서의 교리에 흡수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성모 마리아인데 천주교의 변명과는 달리(주*12) 성모 마리아는 이집트의 바다의 신을 모델로 신격화 되었다. 그런 초기 기독교의 전래 과정에서 생긴 역사적 사실을 들어 개신교가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 '용감한' 개신교조차도 삼위일체설을 부인할만한 특정한 근거가 없거나 또는 지혜가 없어 궁색한 변명, 그러니까 삼위일체가 이단논박의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설명은 하지 않고(아마도... 천주교로 신도들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은 아닐까?) '신약에는 없지만 구약에는 있다'는 궁색한 변명만 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13은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 것은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가 예수와 예수의 열두제자의 합인 '열 세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3일은 불길한 숫자이고 또한 그 최후의 만찬이 있던 날이 금요일이어서 특히 13일의 금요일은 '아주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것은 명백히 신성모독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기록에 있듯, 예수와 열두제자가 최후의 만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는 전도 행위 중에 대부분 열두명 제자와 함께 다녔다. 그러면 예수의 전도 행위가 불길한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생각해 보자.

 


"왜 예수는 제자를 열 두명을 두었을까?"

 


성서에서는 예수의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왜 예수가 열두제자를 두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예수와 열두 제자를 합친 숫자 13이 6과 7의 더하기이며 6은 구약성서에서 완전한 숫자, 그리고 7은 그 이후에 완전한 숫자로 자리매김하면서 6이 오히려 악마의 숫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을 상기한다면 예수가 열두 제자를 둔 이유가 추론이 된다.


물론, 신의 아들인 예수의 깊은 속을 인간의 아들에 불과하며 그 인간의 아들 중에서도 명백히 으뜸이 아닌 필자가 헤아리는 것 역시 '발칙한 행동'이며 신성모독이겠지만 말이다.


13이라는 숫자가 6과 7의 결합이며 예수를 뺀 열두제자는 6 + 6의 조합이다. 즉, 예수는 예수의 말마따나 '성서를 완성시키로 온' 그러니까 성서 역사에서 자신을 '과도기적 인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이러한 것에 예정론을 더한다면 '신의 아들'인 예수가 훗날 6이 악마의 숫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리 없었으며 따라서 예수는 숫자로 6+7과 6+6으로 자신과 제자들의 조합을 생각한 것이며 결국 후대에 이르러 '원래 신의 뜻은 저버린 채 자구에만 매달릴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하여'(주*13) 제자를 열두명을 둔 것이다.

 

 


주*1 : 여기서 나오는 피타고라스 관련 언급은 '재미있는 수학의 역사'(얼마 전에 재미있는 시리즈로 베스트셀러가 된 유소년용이 아닌 꽤 오래 전에 나온 번역본)에서 읽었는데 그 책을 읽은 기억을 살린 것이다. 또한, '13'이라는 숫자가 왜 불길한 숫자인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수와 12제자의 합이 13'이라는 것과는 다른, 필자의 고유 해석임을 명기한다. 참조로 필자의 꿈 중 하나가 나중에 현업은퇴를 하면 '성서를 패러디' 해보는 것이 꿈이다. 비록, 그 패러디의 대가로 영혼은 지옥의 유황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할지언정.

 

물론, 나는 성서를 '패러디'한 것으로 지옥에 가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다른 죄 때문이라면 모르지만. 성서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

용한 기독교를 조롱해 주었으니 오히려 잘했다고 상찬 받지 않을까?


주*2 : 지금 유적 발굴이 한참인 수메르나 중국의 은나라는 제외한다. 그 개략은 알고 있지만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없다.

 

주*3 :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에 파라오 앞에서 파라오 측의 마술사와 지팡이로 뱀을 변화시켜 이기는 '요술 장면'이 나오는데, (성서의 표절 논쟁에서 성서의 기록 부분에서) 이를 당시 주술이 앞섰던 바벨로니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이 '요술 장면'을 이집트 민중들에게 대한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해도 반감을 가지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해석한다.

 

 

주*4 : 이집트의 논밭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논밭이 직사각형의 나열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것은 바로 이런 역사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토지 구획의 정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당시 풍속도 등) 문화들의 영향 범위를 추론할 수 있다.

 

 

주*5 : 숫자의 우주 삼라만상의 할당은 기억에 의한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주*6 : 야훼는 천주교식 발음이다. 개신교에서는 여호와라고 한다.

 

 

주*7 : 미몹의 음냐리님은 창조론을 비판한 글을 최근에 올렸는데, 이 창조론은 구약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첨언한다. 음냐리님의 비판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대부분의 흠냐리님의 주장은 내가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맞다'라고 판단하니까 말이다.


주*8 : 이단과의 전쟁. 그러니까 현대의 천주교건 개신교건 배우는 교리는 '야훼의 말씀'을 제대로 반영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현재 배우는 교리는 역사 그대로 '종교 논쟁의 승리'의 귀결이며 역사가 승자 위주로 기록되어 있듯, 천주교건 개신교건 배우는 교리는 '종교 논쟁의 승리'를 배우는 것이다.


주*9 : 중학교 때 배운 아우그스티누스의 수필 중 '그들은 어디에 갔는가, 당신들의 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술회는 바로 이 이단논박 후 승리한 그의 승리감에 도취된 상태에서의 자비심, 그러니까 일종의 악어의 눈물 아닐까?


주*10 : 얼마 전에 논란이 되었던 영화 '다빈치의 코드'의 역사적 기원점이 된다.

 

주*11 : 서구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네입클로바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우연히 잎사귀가 네 개 달린 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해서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 위로 총알이 날라갔다는 설에서 기원이 된다.


주*12 : 개신교의 주장대로, 천주교 신자인 내가 판단하기에도 성모 마리아의 동상을 성당 내에 세운 것은 명백한 이단이다. 반대로 제사 지내는 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개신교는 배타적인 그들의 속성 때문이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단이 아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