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수는 훤칠하게 생긴 남학생 한명을 대동하고 나왔다. 처음 보는 여교수의 모습은 무척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을 주었는데

그렇더라도 내면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굽히지 않겠다는 강한 고집과 자부심 같은 것이 깊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그 흔들림 없는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가령 일주일 씩이나 계속되던 세미나 행사장에 타이페이의 중요한 한국문학 관계자 입장에서 그 행사

를 완전히 외면해버린 것만 봐도 그녀의 성격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타이완에 오셨으니 화렌을 한번 보셔야죠."

장숙영은 보일듯말듯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우리에게 말횄다.

"명준아! 네가 이 선생님들을 화렌으로 잘 안내해드려. 할 수 있지?"

데리고 온 잘 생긴 남학생이 두 말 할 수 있냐는듯 벌덕 일어서더니 우리에게 꾸벅 절을 했다.

"저는 문화대학 3학년생 진명준이라고 합니다. 훌륭하신 분들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렌은 제가 잘 모시도록 하겠습

니다."

 

 진명준이 바로 화렌 출신 학생이었다. 장교수는 미리 화렌 여행을 안내할 적격자까지 물색해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장교수

자신은 타이페이에 볼 일이 있어서 우리가 화렌에서 돌아오면 그때 따로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장교수와 간단한 점심을  함께

들고 정오 조금 지나서 우리는 화렌행 가치를 타기 위해 타이페이 역으로 향했는데 장숙영은 역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차츰 알게된 일이지만 장숙영은 당시 갓 출범해서 타이완 본성인(本省人)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하던 민진당(民進黨)의 열열한

지지자였다. 요즘 조금 기세가 꺽였지만 민진당은 대륙으로부터 타이완의 독립을 제1강령으로 주장한 세력이기도 하다. 장숙영

의 문학취향은 한 마디로 민중주의, 현실 비판을 담은 저항주의로 요약된다. 단순하게 말해 문학도 현실개혁 투쟁의 수단으로 효

용성이 있을 때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닌 그녀가 왜 이런 과격한?

견해를 갖게 된 걸까? 정확하게 진단하긴 어렵지만  타이완 원적자(原籍者)-고산족 혹은 산지족(山地族)으로 불리우는 원주민과

는 구별된다.-라는 그녀의 신분에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극우독재인 국민당 세력이 타이완에 입성하던 초기에 타이

완 주민들을 수만명 학살했다는 2.28사건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대륙과 직접 인연이 없는 장교수 입장에서 지배세력인 국

민당 정부에 원한을 갖는 것은 지식인으로 도리어 자연스런 일이다.

 

 화렌은 이미 타이완의 손꼽히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리석과 옥돌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화렌의 첫째로

꼽히는 명물은 험준한 산악지역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뚫어놓은 타이루거 협곡의 장관일 것이다. 이 불가능한 역사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인명을 바쳤다는 기록이 그곳 석비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화렌 출신 진명준은 여러모로 모범생의 여건을 두루 갗춘, 훌륭한 학생이었다. 잘 생겼고 예의가 바르고 한국말을 비교적 자유

롭게 구사하는 걸 보면 성적도 우수하다고 볼 수 있었다. 장숙영은 이 기특한 제자를 끔직히 아끼는 눈치였다.

 몇 해 뒤 진명준이 학업을 마치고 타이완 외교부 직원이 되어 신혼여행을 서울로 왔을 때 나의 집에서 하루밤을 묵은 일이 있는

데 진명준은 장교수가 자기 결혼 상대방이 마땅치 않다고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큰 곤경을 치렀노라고 내게 실토한 바도 있

다. 결혼 이후에도 그 일로 장교수님과 아주 뜨악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진명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작가 H와 나, 그리고 기자인 P, 세사람은 화렌에 도착해서 첫날은 진명준의 부모님이 계시는 화렌 인근 농촌의 농가에서 묵었

다. 시골 농민이 자기 집에 우리를 초대한 것은 대단한 배려이고 호의였다. 덕분에 예상치도 못했던 타이완 농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은 집은 새로 지어진 개량형 농가주택인데 ㄱ자 혹은 ㄷ자 형의 이층 건물로 침실과 거실 위주의 이층, 취사

실과 농기구 등 자잘한 세간이 배치된 일층 등으로 규모는 작지만 스위스나 스칸디나비아 농가처럼 매우 효율적인 구조를  갗

추고 있었다. H와 P는 그 효율적 구조에 몇 차례나 탄성을 터트렸다.

 

 진명준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그런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어디로 일을 나갔는지 흔적조차 보이

지 않았고 성격이 무척 쾌활한 그 어머니가 우리를 주로 접대했다. 명준의 어머니는 키가 작달막하고 가슴과 어깨가 떡 벌어

진, 전형적인 타이완 농촌여성의 모습인데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녀가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말을 명준에게

서 들었는데 무슨 가게인지 그건 말해주지 않았다. 명준의 어머니는 오토바이의 명수였다.  

 그 어머니가 새벽에 우리에게 대접할 신선한 오리고기를 구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으로 달려가던 모습을 마침 아들

과 산책길에 나섰던 우리는 보게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어머니는 시장에 들러 오리고기 등 요리재료를 잔뜩 구해 오

토바이에 싣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우리가 여전히 산책중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머니가 한 손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한손은 높이 들어올려 아들과 손님을 향해 흔들면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광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겠지만 명준의 그 키가 작은 어머니가 아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는 그녀의 눈길이

잠시도 아들에게서 떠날줄 모르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날 아침에 우리는 세숫대야 만큼이나 큰 양푼에 가득 담아온

오리고기 요리를 먹느라고 무척 애를 먹어야 했다.

"선생님들, 우리 명준이를 잘 가르쳐주세요."

어머니는 이런 말을 서른번도 더 했다. 나중에는 아들이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다.

"어머니, 그런 말 또 하시면 나는 다시는 집에 오지 않을 거에요. 정말이요."

그러자, 어머니는 펄쩍 뛰며 자기 입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이 몹쓸 주둥이, 아들아, 다시는 그런 말을 안 하마."

그 키 작은 엄마는 정말 두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그러나 우리와 마지막

헤어질 때는 아들 몰래 슬쩍 우리에게 다가와 입을 한손으로 가리고

"훌륭하신 선생님들, 우리 명준이를 잘 돌봐주세요." 하고 속삭이는 걸 잊지 않았다.

 

 오전에는 차를 빌려 타고 타이루거 협곡을 대강 일순하고 점심 후에 유명한 화렌 오룡차(烏龍茶) 거리로 나가서 오룡차

를 한상자씩 구입했다.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그 거리는 제법 번화하고 즐비한 차 가게들도 경기가 좋아 보였다. 포

장지가 그럴싸 해서 덩달아 한 상자를 구입했는데 이 오룡차 때문에 엉뚱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귀국해서 모처럼 서

제에서 품위있게 차를 시음한답시고 며칠을 줄곧 마셔댔는데 그만 불면증에 걸려 보름 가까이 생고생을 했던 것이다.

이 오룡차가 내포한 카페인이 커피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강한 것을 느꼈다. 중국인들은 오리고기, 돼지고기를 상식하

고 그 기름기를 씻어내기 위해 오룡차를 마시지만 씻어낼 기름기가 없는 나 같은 체질의 사람은 오룡차 시음 흉내를 함

부로 낼 일이 아니었다.

 

 오후 늦으막이 명준은 우리를 화렌 해안가로 안내했다. 안내했다기 보다 특별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그쪽으로 발길을

향했던 것 같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그 푸르른 코발트 빛갈의 바다를 보게 된 것이다.

한없이 조용하고 한없이 푸르른 그 아늑한 바다, 얕으막한 언덕 위에 서서 그 바다를 봤을 때 머리가 뻥 뚤린듯 모든 잡

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바다는 기기묘묘한 온갖 장관을 연출하는 타이루거 협곡 보다, 이상야릇한 몸치

장을 하고 코맹맹이 노래로 관객의 흥미를 끄는 山地族의 빈약한 공연 보다 훨씬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날 이후

나는 화렌 하면 으례 그 짙푸른 바다를 연상하게 되었다.

보통 그림에서 보는 남국 바다라면 물의 색채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르고 작열하는 태양으로 마치 강한 조명으

로 연출된 화면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것대로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 바다는 너무 뜨거워서 숨이 가쁘다. 화

렌의 바다는 빛이 강하거나 눈이 부시지도 않고 마치 구도가 잘 짜여진 정원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한다.

 

 타이페이로 돌아와 장숙영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물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바다가 참 좋더군요. 꼭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은 바다였어요."

장교수는 좀 의외라는듯 잠시 말을 잇지 않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으나 더 캐묻지는 않았다. 타이페이로 돌아온 우리

는 하루를 더 묵은 뒤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년인가 일년 반인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에는 장숙영이 서울에 나타나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 전화는 좀 뜻밖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약간 낮게 가라앉은 장숙영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대뜸 화렌의 그 푸른 바다가 생각났다. 나는 그 바다를 내게 보

여준 여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장교수의 전화가 뜻밖이라고 하는 것은 그녀에게 나 말고도 잘 아는

서울의 작가, 이를테면 인기작가 H 같은 인물이 몇 사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계속)